벼슬살이

열하일기(上) 中, 장대기(將臺記)에서 p316

by 김양훈
그 허물은 다름 아닌 눈에 있는 것이다...
마침내 높은 자리에 이르면
그제야 두려운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땐 외롭고 위태로워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이 얼마나 큰지를 모를 것이고, 산해관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제도를 알지 못할 것이며, 관 밖의 장대를 보지 않고는 장수의 위엄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중략>…. 한참을 바라보다가 내려오려 하는데 아무도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다. 벽돌 쌓은 층계가 높고 가팔라 내려다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지경이다. 하인들이 부축하려고 해도 몸을 돌릴 곳조차 없어 몹시 허둥지둥하였다. 서쪽 층계로 먼저 간신히 내려와서 대 위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니, 모두 벌벌 떨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올라갈 땐 앞만 보고 층계 하나하나를 밟고 오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걸 몰랐는데, 내려오려고 눈을 들어 아래를 굽어보니 현기증이 절로 일어난다. 그 허물은 다름 아닌 눈에 있는 것이다.


벼슬살이도 이와 같아서, 위로 올라갈 땐 한 계단 반 계단이라도 남에게 뒤질세라 더러는 남의 등을 떠밀며 앞을 다투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높은 자리에 이르면 그제야 두려운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땐 외롭고 위태로워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뒤로 물러서자니 천 길 낭떠러지라 더위잡고¹⁾ 내려오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 법이다. 이는 오랜 세월 두루 미치는 이치다. -고미숙 외 2인이 엮고 옮긴, 박지원 著 열하일기(上) p316


[옮긴이 註]

1)더위잡다 : 의지가 될 수 있는 든든하고 굳은 지반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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