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H. 로렌스의 「유럽사 이야기」 p291~293
황제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서
사람들이 지치기 시작하듯이
교황의 권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항거하기 시작했다.
교황들은 지고한 종교적 명령을 기독교 세계 전체에 적용하려 했다. 이를 위해 교황이 보통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신에 가까이 서 있으며 하늘나라로부터 직접 성스러운 비밀과 명령을 받았다는 점을 믿게 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지속시키기 위해 종교 속에 신비와 경이로움이 존재해야만 했다.
보통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아서는 안 되었다. 오직 사제만이 크나큰 비밀을 지닌 채 신과 보통사람들 사이에 있어야만 했다. 이것이 카톨릭교회의 기독교 세계 통치 방식이었다. <성서>는 신비롭고 성스러운 책으로 보통사람들은 볼 수가 없었으며 설사 보더라도 읽을 수가 없었다. 라틴어로 씌어 있었기 때문이다.
천국의 문이 열리고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을 때 묘지에 덮어둔 묘지석이 굴러가는 이야기를 사제들이 때로 <성서>에서 조금씩 읽어주고는 했다. 이런 이야기는 무서우면서도 경이롭게 들렸다. 사람들에게는 마치 사제들이 엄청나게 심오한 비밀을 아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 어마어마한 비밀 중 극히 작은 부분 하나만 보통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처럼 보였다.
평범한 기독교도들은 글을 읽을 줄 몰랐으며, 신에 관해 아는 것도 없었다. 모는 것은 사제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중략)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모두 믿었다. 이런 의미에서 교황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까닭에 우리는 중세를 ‘신앙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신앙의 시대가 끝나지 이성의 시대가 동트고 있었다. 일찍부터 학생들과 사려 깊은 사제들이 <신약성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약성서> 속에서 교황의 영광이나 주교의 풍요롭고 화려한 생활, 사제들의 권한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본 것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하며, 육체의 쾌락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오직 영혼의 구제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단순한 교훈이었다.
-D. H. 로렌스의 「유럽사 이야기」 XII 신앙시대의 종말 중에서 p291~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