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중 p191-193
영묘는 다기(茶器)와 더운물만 대령했고 차를 적당히 우려내는 일은 할머니가 했다. 다탁(茶卓) 위의 칠보 과자 그릇 속에는 할머니가 집에서 해온 듯한 송화다식(松花茶食)이 아기똥풀처럼 노랗게 웃고 있었다.
“너도 게 잠깐 앉거라. 이 할미가 소싯적부터 섬기던 큰스님의 제자이시다. 신통력이 큰스님 못지않으시지. 멀리 계룡산에 계시는데도 너희 사는 데를 환히 꿰뚫어 보시고는 당장 집부터 옮기라고 일러주시더구나. 방위와 층수, 길일도 함께 잡아주셨지만, 하도 촉박해서 그건 어렵겠으니 좀 늦춰서 여벌로 하루만 더 길일을 잡아달라고 했다가 해보지도 않고 왜 안 될 생각만 하냐고 어찌나 호통을 치시는지, 꼭 내 정성이 부족한 걸 탓하시는 것만 같아 움찔하고 돌아왔지 뭐냐. 그랬더니 누가 잡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스님이 일러주신 조건에 딱 맞는 집이 마침 비어있지 뭐냐. 그런 게 신통력이라는 거 아니겠냐? 큰스님 적부터 우리하고는 연대가 잘 맞아 내가 소원하는 건 뭐든지 다 들어주시더니만, 그 신통력에다 좋은 인연까지 작은스님에게 물려주시고 돌아가셨으니 이 늙은이 여생에 근심 걱정이 없다는 거 믿어도 되겠습죠?”
할머니는 말머리를 도사에게 돌리며 소녀처럼 감기는 소리를 냈다.
“신통력이라뇨? 큰회장님이 금강경을 육십 번도 더 베껴 쓴 건 큰스님도 탄복을 하신 일 아닙니까? 그런 집안에서 자손이 창성하고 재복이 따르는 건 당연하죠. 아무 걱정 마십시오. 이렇게 좋은 터에서도 심신이 안정이 안 되면 경을 읽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영묘는 그들 곁에 엉거주춤 앉아서, 입은 옷도 그렇고, 머리 모양도 그렇고, 도무지 스님 같지 않은데 스님이라 불리는 남자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남자도 영묘가 미심쩍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내 영묘에게 건네면서 최 도사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명함에도 포교원, 철학관, 운명감정소 따위 아리송한 기관들의 이름들이 한문으로 들어 있고 한가운데 최청하란 이름 석 자 위에는 버젓이 도사라고 명기돼 있었다.
첫눈에 도사밖에는 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도사라 칭하는 데 있어서는 일말의 신비감마저 사라져버렸다. 최 도사는 작설차를 두 잔 마시고 송화다식은 한 개만 먹고 곧 일어섰다.
박완서 선생은 삼부토건의 가족사에 깃든 무속행위들을 이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누구는 삼부토건 조남욱 회장의 에이스였다는 소문이 있다. 그렇다면 무속에 대한 그들 부부의 심취(心醉)도 이 오래된 농담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럴 리는 없겠지? 그래도 소설 속 등장인물인 영묘와 최청하란 도사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박완서 선생은 그때 이미 오늘을 예견했던 것인가? 소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