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엄리 이야기
밀항자들의 일상은 언제나 불안했다. 단속경찰이 아니더라도 누가 밀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늘 따라다녔다. 일상생활에서는 설사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상대방에게 크게 대들거나 항의할 수도 없었다. 바보처럼 조용히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매사에 조심하고 사방으로 눈치를 봐야 했다. 아버지의 일본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일본말은 일제 강점기 소학교부터 배워서 유창했다. 아버지는 될 수 있으면 일본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 속으로 몸을 숨기는 생활을 택했다. 문제가 있다면 말투였다. 어디 출신이냐 물었을 때 답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과 대화 중에 아버지는 “당신 말투를 보니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왔구먼”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홋카이도 사투리를 배우고 고향을 홋카이도로 위장했다. 홋카이도는 원래 아이누족이 사는 땅이었다. 일본이 영토 확장을 위해 홋카이도를 개척한다며 원주민 아이누족을 몰아내고 혼슈지방 사람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켰다. 그래서 홋카이도의 삿포로 같은 도시 사람들은 오히려 표준말을 쓴다. 홋카이도에서 사투리를 쓰는 지역은 쓰가루(津軽)와 같은 바닷가 주변의 마을주민들이다. 쓰가루는 푸른 사과인 쓰가루 사과로 유명한데 일명 ‘아오리 사과(あおり りんご)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홋가이도 남쪽 바닷가 쓰가루 주변 마을에서 살다가 오사카로 흘러온 것으로 신분세탁을 한 것이다. 일부러 쓰가루로 여행도 몇 번 하였다. 쓰가루 해협은 홋카이도 남단과 혼슈 북단인 아오모리현을 잇는 해협이다. 바닷가라면 어릴 적 살던 제주섬 구엄리 마을이 있었다. 그래서 바닷가 일이 화제가 될 때는 적당히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홋가이도 출신이라면서 술좌석에서 부를 만한 엔카(演歌)도 한 곡 열심히 배웠다. 모리시게 히사야(森繁久彌)가 북방열도의 서정을 그리며 부른 유명한 노래 ‘시레도코여정(知床旅情)’이었다.
知床の岬に はまなすのさく頃
思い出しておくれ 俺たちのことを
飮んで騷いで 丘にのぼれば はるかクナシリに 白夜は明ける
旅の情か 醉うほどにさまよい
浜に出てみれば月は照る波の上
今宵こそ君を 抱きしめんと 岩影に寄れば ピリカが笑う
別れの日は來た ラウスの村にも
君は出てゆく 峠をこえて
忘れちゃいやだよ 氣まぐれカラスさん
私を泣かすな 白いかもめよ 白いかもめよ
시레토코 곶에 해당화가 필 무렵
기억해다오 우리들의 일을
마시고 떠들고 언덕에 오르면
멀리 구나시리에 백야는 밝아오네!
여로의 정이런가 마실수록 헤매이고
해변에 이르면 달은 비취네 물결 위에
오늘 저녁 그대를 껴안으려고
바위 그늘에 다가서면 피리카가 웃네
헤어질 날은 왔어 시레토코의 마을에도
그대는 떠나가네 고개를 넘어서
잊으며는 싫어요. 변덕쟁이 까마귀님
나를 울리지 말아요 하얀 갈매기야 하얀 갈매기야
그러나 아무리 용의주도하게 준비해 일본사람 행세를 한다 해도 무의식중에 나오는 언행은 언제나 위험이었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을 쉬는 주말이면 가끔 쓰루하시(鶴橋)에 있는 친척들이나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친척 결혼식이 있거나 장례식이 있으면 참석해야 했다. 세월이 흘러 일본 생활에 익숙했지만,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밀항자들의 공통된 심리상태는 불안이었다. 불법체류자로 잡히면 바로 구금되고 오무라수용소로 가야 한다. 그리고 부산에는 밀항자들의 용공혐의를 조사하는 괴정수용소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돈벌이가 끊기고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의 세계로 잡혀가야 한다. 이 끊임없는 불안심리는 사람의 의식과 신경줄을 갉아먹었다.
아버지는 저녁이면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는 ‘비루(beer)’는 약해서 싫다며 독한 위스키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애주가였다. 어머니는 매해 조밭 농사가 끝나면 오메기떡을 만들고, 손수 보리를 틔어 만든 누룩을 넣어 오메기술을 빚었다. 아버지가 즐겨 드시는 술이었다. 그러나 고향에서 마음 편히 마시는 오메기술과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혼자 마시는 위스키는 달랐다. 고향의 오메기술은 몸에 좋은 약이었다면, 타향의 술잔은 독이었다. 불안을 잊기 위한 오랜 세월에 걸친 이런 음주 습관은 굳세었던 아버지의 의지와 근성을 서서히 파괴해 나갔다. 저녁마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반주로 마시는 이 독주(毒酒)가 당신에게 얼마나 슬픈 일이 될지 아버지는 몰랐다. 아버지는 일본경찰에 끝내 잡히지 않고 30년 가까이를 밀항자(密航者)로 살았다. 그게 어떤 삶이었는지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 후에야 알았다. 어리석고 못난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