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엄리 이야기
아버지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애독자였다.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 아버지가 생애 마지막 시간까지 그의 소설 ‘명암(明暗)’을 읽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명암』은 소세키의 유작이자 그가 쓴 최고로 긴 장편 소설이다. 1916년 5월 26일부터 그해 12월 14일까지 188회에 걸쳐 도쿄 아사히신문과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연재 도중 소세키가 지병인 위궤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미완인 채 종결된 작품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이기주의를 예리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 소세키의 만년 작품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명암』은 츠다와 노부라는 한 쌍의 '부부의 이야기'이다. 자존심 강한 에고이스트 츠다와 사랑에 대한 허영심으로 가득찬 노부,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 끊임없이 갈등과 긴장을 형성하고 해소해가는 과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세키는 도쿄의 명문 집안인 나쓰메 고효에 나오카츠(夏目小兵衛直克)의 5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친척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다시 본가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그의 부모는 자식들 여럿을 병으로 잃었다. 소세키는 뛰어난 소설가이기도 했지만, 당대 일본에서는 최고수준의 문화인으로 대접받았던 국민작가이다. 그러나 소세키는 아내의 자살 기도와 본인의 신경쇠약과 위궤양으로 고단한 삶을 살기도 하였다.
아버지하고는 주로 안부를 묻고 답할 뿐 편지에선 일본 문학에 대하여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없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셨다. 제주시 성안(城內)에서 공무원 노릇을 하는 친척 집에 갔다 오는 날은 크고 무거운 책 보따리를 들고 오곤 했다. 친척에게서 빌려오는 책은 주로 전집류가 많았다. 어느 때 아버지는 “성내 삼춘네 책장에 장식품으로 놓여있는 걸 좀 빌어 왔다.”라고 농담하듯 말하며 마루 구석에 그 전집을 가지런히 진열하고는 나에게도 읽어보라고 말씀하셨다.
'세계전후 문제작품집’은 마지막으로 빌려 온 책 보따리였다. 아버지가 일본으로 가는 바람에 도청에 다니던 친척 삼춘에게 돌려주지 못했다. 중학생인 어린 내가 쉽게 이해하기는 벅찬 작품들이었지만, 10권의 작품집을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었다. 특히 1권인 ‘한국전후 문제작품집’은 인상에 남는 소설이 많았다. 시골뜨기 어린 나에게 소설이 무언지를 가르쳐 준 책이었지만 소화하기엔 무리였다.
‘일본사람들은 미워만 할 수 없는 종족이다.’라고 아버지는 편지에서 말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아이들에게 일본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미움만을 교육하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였다. 그들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하고, 배울 것이 있다면 또 배워야 한다고 썼다. 그래야 언젠가 우리가 그들을 극복하고 앞서갈 수 있다는 극일(克日)의 말씀이었다.
밀항자(密航者)로 불법체류자 신세인 아버지는 일본인 행세를 하며 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인으로서의 교양도 필요했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도 불리던 소세키는 당대 일본에서는 최고수준의 문화인이었고 교양인이었다. 일본사람들과 섞여 살며 정체를 숨겨야 하는 아버지의 삶은 독서의 선택에도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소설책 중에는 소세키의 ‘마음(こころ)’도 있었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인 ‘나’가 두 명 등장한다. 존재와 불안, 구원의 부재라는 내밀한 문제를 표현해낸 작품이다. 아버지 역시 두 명의 자아(自我)를 힘겹게 품어 안으며 끌고 가야 했다. 혼란과 불안의 나날이었던 이국의 삶. 그리고 이방인(異邦人)의 고독과 고통의 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