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이틀째-바티칸 시티와 로마거리(1993. 8. 3.)
오늘은 Vatican City에 간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바지와 치마는 안 되고, 어깨가 드러나는 윗도리도 No!, 그리고 청바지도 No! 고루하다고나 할까? 아담과 이브는 빨가벗고도 하느님의 낙원에서 살았다는데 말이다.
형식이냐, 내용이냐? 철학개론 시간이던가? 핵교 다닐 때 배웠던 논쟁이 생각난다. 거기선 그랬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할 수 있다고. 가톨릭은 너무 형식적이고 고루하다? 미사도 하나의 연극이라고 했던 연극학개론 시간, 그런 얕은 배움이 스쳐 지나갔다. 내용이 텅 비어 있는 듯한 공간의 느낌. 커다란 형식의 틀 속에 들어와 있는 쬐끄만 한 <나>. 이게 바티칸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미켈란젤로가 설계해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재건했다. 건물 안의 조각과 장식들은 르네상스, 바로크 미술품이라는데 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가톨릭의 총본부, 잠깐 들러 구경하기엔 너무나 벅찬 곳이다. 성당 오른 쪽,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피에타(Pieta)는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
그리곤 콜로세움(Colosseo), 여기가 로마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하는 곳, 폐허처럼 황량한 모습, 우리가 들어간 곳에서 보면 이 외로 경기장 규모가 밖에서 보는 것보다 작게 보인다. 눈을 아래로 보면 그 옛날 검투사들과 생사를 놓고 싸웠던 맹수들의 우리(아레나)가 보였다. 영화에서 보았던 모습. 로마시민들이 열광하던 이곳, 지금은 을씨년스럽고 삭막하다. 황제들이 로마시민들을 정치적 쇼로 위무하던 곳.
길 건너 아이스크림 포장마차를 발견한 아들네미의 간청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영화에나 나옴 직한 늠름한 로마의 남자가 무뚝뚝하게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옛날이었으면 알프스산맥을 넘어 어디선가 칼을 휘두르며 정복전쟁에 피를 튀겼을 이 남자! 이 로마 남자는 오늘 군용마차를 달리는 대신 길가 포장마차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로마 구경은 거의 끝났다. 매우 더운 날씨다. 섭씨 35도 이상이라는 가이드 Mr Fong의 설명이 있었다.
Roma, 이 도시는 분명 남성이다. 큰 거리마다 남성들이 그들의 물건을 내어놓은 채 서 있기도 했다. 도시, 로마의 거리유적에는 여성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끝내는 남성적인 로마제국을 로마를 삼켜 버린 기독교의 정신은 여성성이 아니었을까? 로마의 거리는 역사박물관 그 자체다. 그 옛날의 영광을 뽐내고 싶겠지만, 왠지 쇠미한 잔해를 보는 것 같다. 내일 아침 Morning Call - 06 :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