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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속의 문상길

추적 문상길④

by 김양훈

여수민중항쟁의 진실에 천착해 오신 주철희 박사께서는 언제나 보석 같은 자료를 발굴하시는 분이다. 주철희 박사의 아래 문상길 의사 <가계 족보 해설>은 안개 속을 헤매던 내 눈앞을 환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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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민중항쟁의 의인(義人) 문상길

가계 족보 해설 (by 주철희 박사)


문상길은 족보(남평문씨 대동보)에는 1926년 9월 8일 태어났다. 사망 일자가 1945년 2월 25일로 기록되어 있으며, 국군 장교였다는 것과 사변에 순직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주 4.3민중항쟁과 연관성을 없애기 위해서 사망 일자를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사망했다면 ‘국군’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 아직 해방도 되지 않은 일제강점기에 ‘국군 장교’란 표현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문상길은 결혼했다.
그의 부인은 전주 유 씨로 1927년생이며,
1985년에 사망하였고 묘지가 만주에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전주 유 씨와는 만주에서 알았던 것으로 예측된다. 상길은 국방경비사관학교 3기생이다. 3기생은 1946년 11월 입교해 1947년 4월 19일 임관하였다. 해방 이후 부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곧바로 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였고, 그 부인 유 씨는 문상길이 사형되자 다시 만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길에게 직계 자식이 없어 형 상익의 삼남 영주가 양자로 들어왔다.


문상길 부는 원제(1889년생)이며, 그의 백부가 원호(1887년생)이며, 숙부가 원대(1891년생)이다. 상길의 조부가 제현(1865년생)이고 3형제가 원호, 원제, 원대이다. 조부 제현은 1917년 사망했으며, 그의 묘는 안동 임하에 있다. 그런데 백부, 부, 숙부의 묘는 중국 만주에 있다.


3형제가 어느 시점에 만주 목단강으로 이주하였는지 정확하지 않다. 조부인 제현이 사망한 1917년 이후가 아닌가 한다. 안동 임하에서 전해온 이야기로는 상길이 5살 정도쯤에 만주로 집안이 이주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면 상길 집안이 이주한 시기는 1930년경으로 추정된다.


상길 집안의 이주와 관련하여
상길의 백부(원호)를 설명하는 서술을 보면,
‘事燮遷背鄕出國於滿洲牡丹江省海林幽置當’
이란 구절이 있다.


해석해보면,

‘사변 이후 고향을 등지고 출국하여 만주 목단강성 해림에 피신하다’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변’이란 필자는 만주사변(1931년) 또는 지나사변(중일전쟁, 1937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동 남평문씨의 주장과 연결해보면, 1931년 만주사변 이후에 만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상길 집안이 만주로 이주에는 석주 이상룡 집안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남평문씨 집안과 석주 이상룡 집안은 안동 출신이라는 점과 기독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족보에 보면 백부 원호가 10세 때부터 특출났음을 알 수 있다. 백부의 장남 상익의 처가 철성 이씨이다. 철성은 고성의 옛 지명으로 고성 이씨와 한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석주 이상룡이 고성 이씨이다.


상익의 족보에 보면, 만주로 이주하였는데, 10년 후에 도주(道周 상길의 조카)가 어머니와 찾아왔다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1948년 6월 상길의 박진경 암살 사건으로 9월 상길의 처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카와 그 집안사람을 안동에서 찾아볼 수 없다. 상길 부인 유 씨의 묘지가 만주에 있듯이, 이 시기에 다시 모두 만주로 간 것으로 추정된다.


상길의 양자 영주와 그의 조카 도주, 성주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흑룡강성 목단강에 가면 문상길의 가족 이야기와 그의 뒷이야기를 알지 않을까 한다.


<참고> 석주 이상룡(李相龍, 1858년 12월 28일~1932년 6월 15일), 1911년 일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했다.

마령리 음지마을 옛 사진 by 문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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