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 3문학회

잃어버린 봄과 식갯날¹곤밥²

이광용|4·3문학회 문집|창작 詩 두 편|

by 김양훈

동백이 찾아가다 잃어버린 봄

- 이광용


봄이 와도 봄이 아니던 봄날을

이제 봄날 꽃처럼 얘기한다

추운 겨울 지내면 꽃샘추위여도

당연히 오는 줄 알았던 봄

노란 유채꽃 왁자하게 피는 봄날에

자신을 지워 봄을 잊어야 했던 동백

봄을 움켜잡고 놓지 않은 뿌리에서

작은 싹 하나 살아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까지

봄이 와도 봄이 아니던 봄날이 있다

개나리 진달래 기쁘게 온 들판을 달음질할 때

돌아오지 않는 동백이 보이지 않아 서러워도

피는 꽃이 무엇이든 다 나의 꽃인 줄 안다

봄꽃처럼 피던 겨울날 붉은 동백꽃들이

느닷없이 빨갱이 이름 붙여져 목 떨어지고

영문 모르고 혼자 살아남은 어린아이가

백발이 되어 맞이하는 봄이

우리가 만나는 봄과 같은 줄 알았던가

다른 동산의 봄을 빌려 들려주던 봄

이제 그 빼앗겼던 봄을 찾아준다.

차마 알지 못한 그의 봄을 보여준다

같이 따듯하고 즐거울 거라 생각하다가

같은 시대를 같이 걸어온 줄 알았던 봄이

한쪽에선 이렇게 따로 힘들게 걸어왔구나

겨울 일찌감치 동백이 찾아가다 잃어버린 봄으

이제 진짜 봄날 꽃처럼

같이 맞이하자고 서러움 풀며 얘기한다.

김미경의 그림, 동백꽃

4·3에 되새기는 밥

- 이광용


어린 시절

제삿날 쌀밥 먹듯 드물게 들었던 4·3

그때 불타버린 우리 집도

갑자기 끌려가 행방불명된 작은 아버지도

봄날 그즈음 제사 때면

그저 하얀 고봉 맛있는 쌀밥으로 모여

나를 배불리 먹여주곤 했다

집을 불사른 쪽에 대한 원망과

작은아버지를 붙잡아 간 쪽에 대한 증오와

갑자기 사촌 형제로 갈려버린 형의 슬픔이

서로 다름에도 사실은 다 같아서

언제고 때 되면 다시

그저 가족 친척들 모두 불러

구수한 하얀 쌀밥을 나누며

우리가 한 식구임을 알게 했다

어린 내겐 그날이 그렇게 기억되었다.

기름이 잘잘 흐르는

구수한 쌀밥 냄새로 기억되는 그날

이제 그날 아니어도

맛있는 쌀밥을 먹게 되면서

그때의 구수한 냄새 아련해지고

그날도 잊혀져 간다

오늘의 그날

난 여전히 하얀 쌀밥을 먹지만

서로를 불러 위로하던 밥의

그 구수함을 잊어가고 있으므로

한번 먹어도 일 년 동안 내 몸에 남아

피가 되고 살이 되던 그 밥맛이 아니다


-4·3문학회 문집|창작 詩| 이광용 시 두편 발췌.

*이광용은 1959년 제주시에서 나고 자랐다. 영문학 박사이자 시인이다. 현재 수원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절실하게』 외 3권의 시집과 『세상에 위로가 아닌 게 어디 있으랴』, 번역서 『죽이고 싶은 여자가 되라』 등을 냈다. 한국문인협회, 가톨릭문인회, 은평문인협회 회원이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옮긴이 註]

1) 제사(祭祀)를 제주말로 식개라고 한다. 식개의 어원에 대해 여러 說'이 있다. 그러나 아직 정설은 없다.


먼저 식개를 한자말인 ‘食皆(식개)’로 풀이하는 사람이 있다. '먹을·食'과 '다·皆'의 뜻으로 해석해서 '다 같이 모여서 먹는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제주에서는 제사에 참석하는 것을 '식개 먹으러 간다'고 한다. 제사가 끝나면 제사 음식을 친척은 물론 이웃과도 나눠 먹었다. 이런 의식을 ‘반 태운다’고 한다. 반(모듬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이 있다. ‘식개’라는 말은 조선시대 조정에서 관직에 있는 신하에게 주는 휴가인 식가(式暇)라는 말이 ‘식개’로 된 것이다, 라는 주장이다. 제사를 지내기 위한 式暇의 ‘가’가 ‘개’로 변해서 ‘식개’로 되었다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사람의 성씨를 부를 때 고 씨인 ‘고가’를 ‘고개’, 김 씨인 ‘김가’를 ‘짐개’라고 했던 것이 그것이다. '장가가다'를 ‘장개가다’라고 하는 것도 같은 예로 보았다. 어느 썰(說)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


2) 곤밥=고운밥 : 쌀밥, 또는 흰밥. 화산섬 제주에는 논이 거의 없어서 쌀 생산이 안 된다. 과거 제주 사람들의 주식은 보리와 좁쌀이었다. 그래서 일상의 식탁에서 여간한 부잣집이 아니면 쌀밥 보기가 어려웠다. 쌀밥인 곤밥과 돗괴기는 관혼상제, 특히 식갯날(제삿날)에야 먹어보는 귀한 음식이었다.


1돗괴기 적.jpg 제주의 식개 음식 '돗괴기 적'


매거진의 이전글오늘 내가 만나는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