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 3문학회

굴거리

윤상희|4·3문학회 문집|창작 詩|

by 김양훈
양기훈 판화 <해녀>

굴거리¹

윤상희

성판악²을 지나는 겨울

굴거리를 만나다


물질하러 간 삼촌³

심방⁴이 들고 온 나뭇가지

굴거리에 앉았다는데

삼촌은 끝내 돌아오지 않고

시끄러운 소리만 가득했던

깜깜한 어느 밤

성판악 겨울 굴거리는

바다에서 걸어오는 발자국

터벅터벅 젖어 있다

밖은 넓은 잎인데

속은 피 고인 동굴이더라


노래도 물에 잠기고


새잎 나고 하늘 차지하고 있어야

묵은 잎 땅으로 가는 굴거리

하늘 보는 새잎이 없어

자식이 없어

애닳아 하던 삼촌이 영주산⁵으로 간다


성판악을 지나다 붙들린 겨울


윤상희|4·3문학회 문집|창작 詩

*윤상희는 곶자왈을 좋아하는 숲 해설가로, 제주에 가서 제줏말로 제주의 식물들과 바람과 돌과 지나간 시간이 묻어나는 ‘지금’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시가 되거나 여행이 되는 제주를 좋아한다. 바람이 전하는, 돌에 스민 제주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옮긴이 註]

1) 굴거리 나무(=굴거리낭) : 대극과의 상록 활엽 교목. 높이는 7~10미터이며, 잎은 어긋나고 가지 끝에 뭉쳐나며 긴 타원형이다. 암수딴그루로 연두색 작은 꽃이 피고 긴 타원형의 열매는 가을에 검은 자주색으로 익는다. 가지와 잎은 식용한다.


한자어로는 교양목(交讓木)이라고 하는데, 새잎이 난 뒤에 지난해의 잎이 떨어져 나간다는, 즉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그래서 이 나무의 잎이 달린 가지는 상서로운 것을 상징하는 장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2) 성판악(=성널오름) : 한라산 허리를 관통,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제1횡단도로의 중간 지점인 성널오름 입구는 해발 750.2m로서 이 도로상의 가장 높은 지대이자 남북 제주를 가르는 고갯마루다. 동시에 한라산 동쪽 척릉을 타고 오르는 등산 코스의 오를목이기도 하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과 서귀포시 남원읍 사이에 있는 산. 한라산 기슭에 있는 기생 화산이다. 성널오름의 정상 높이는 1,215m이다.


성판악(城板岳)이란 명칭은 성널처럼 급하게 솟은 오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악(岳)의 결정적 격하의 이미지는 제주도에서 드러나고 있다. 제주도의 중앙에 솟은 것이 한라산이고, 그것은 형태상으로 방패와 같이 순상(循狀)을 이룬다. 오름으로 통용되는 350여 개의 기생화산(寄生火山)은 주봉에 대한 종속적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기생화산은 악이라는 공통 칭호를 붙이고 있지만 형태와 표현 방법에서 대륙의 그것과 내용이 다르다.

3) 제주에서는 '삼촌'을 촉보 상 혈연관계로 쓰는 삼촌(三寸)이 아니라 가까운 어른들을 남녀 구분 없이 다 삼촌이라고 부른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도 같은 의미의 삼촌이다. 보통 ‘삼춘’이라 호칭한다.

4) 심방은 제주도에서 무당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무당을 통칭하는 이름인 동시에 어떤 굿이라도 해낼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자를 말한다. 굿의 집행을 의뢰받아 집행하는 심방을 ‘수심방(首神房)’이라 한다. 굿의 기능이 뛰어나면 ‘큰심방’, 기능이 보통이면 ‘족(작)은 심방’이라 구별하였다. 심방이 되는 동기는 세습무, 질병무, 혼인무, 경제무 등이다. 심방은 굿을 집행함으로써 기자(祈子), 기복, 성장, 사후공양, 치병, 풍농, 풍어, 신축, 신년제 등 개인적인 벽사진경(闢邪進慶)에 관한 의례뿐 아니라 마을제인 당굿을 행하기도 한다.

5) 원래는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중국의 『사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바다 가운데, 봉래(蓬萊)ㆍ방장(方丈)ㆍ영주 등 삼신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약초가 있어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기원전 200년경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역사(力士) 서불에게 그 약초를 구해 오라 명했다. 그때 서불이 찾은 곳이 바로 영주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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