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 3문학회

레드 헌트(Red Hunt)

-오대혁|4·3문학회 문집|창작 詩|

by 김양훈

레드 헌트(Red Hunt)¹

오대혁


찔레꽃 들길을 걸어

어웍²밭 가로질러

언덕 위에 오르면 하늘의 푸른 물

내 몸을 휘감싸며

할로산³ 산신령이 지폈다

하르방 짝을 이룬 누렁인

킁킁 콧방귀 뀌며

숨죽여 움추렸던

목 붉은 장꿩을 날렸다.

꿔억꿔억 비명을 지르며

푸드득 솟아오른 장꿩이

오름같은 포물선을 그릴 때

언덕 위에서 나는

꿩이다 소리쳤다

검은 수캐는 화들짝 눈을 치뜨며 달리고

아방은 윤유리⁴ 몸둥이를 들고 암캐를 쫓고

장꿩은 어웍밭에 사뿐히 내려 앉아

종종걸음 칠 때 수캐는 장꿩의 목덜미를 물었다

검은 수캐 이빨엔 피가 흩뿌려지고

허둥대며 달려온 아방은

저승사자 윤유리 몽둥일 휘둘러

장꿩을 뺏어들고

할로산신께 머리 조아렸다.

어스름엔 정지에 들러앉아

붉은 목 장꿩의 깃털을 뽑아

조상님께 올리는 산적에

참기름 바르는 붓으로 삼고

우리는 꿩죽을 쑤었다.

누렁이 검은 암캐에겐 양푼에

쉰밥 그득그득 담아주었다.

할로산신이 허락한 사냥이었다

미군정 비밀보고서에 쓰인

레드 헌트(Red Hunt)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슬픈 눈을 쫑긋 세우며 떠올렸다

죽살이⁵ 경계 넘나들던

제주 사람들 떠올렸고

피에 굶주린 마구니⁶들 사냥으로

핏빛 동백

핏빛 철쭉

흐드러진 붉은 섬(red island)

피눈물 흥건히 고인 채 떠올렸다.

마구니들의 빨갱이 사냥

할로산 등허리엔 붉은 총칼 자국

미군정 비밀보고서에 똬리 틀고

살아 있었다

사라지지 않고

충혈된 독사눈으로 살아 있었다

시뻘겋게 살아서 꿈틀거렸다.

할로산신이 허락지 않은 사냥이었다.


-오대혁|4·3문학회 문집|창작 詩

*오대혁은 국문학 박사·시인·문화비평가이며, 제주일보 논설위원과 피앤피뉴스 논설주간을 맡고 있다. 2005년에 「신문예」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원효실화의 미학』, 『금오신화와 한국소설의 기원』, 『시의 끈을 풀다』(공저) 등이 있다.

[시인의 註]

1) 레드 헌트(red hunt) : 1947년 6월 3일 미군정 보고서에서 “빨갱이 사냥‘을 뜻하는 ’red hunt’라는 표현을 썼다. 미군정은 제주를 ‘빨갱이 섬(red island)’으로 규정하고 토벌대를 만들고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옮긴이 註]

2) 억새 : (제주어) 어워기, 어욱새, 어웍, 어욱

3) 할로산 : 한라산

4) 윤유리 : 윤노리나무는 장미과에 딸린, 넓은 잎 낙엽수 떨기나무이다.

5) 죽살이 : 죽고 사는 것을 다투는 정도의 고생.

6) 마구니(魔仇尼, Maguni) : 불교 용어 중 하나로, 마(魔) 또는 마군(魔軍), 마왕 (魔王)이라고도 한다. 어떤 형상을 가지고 있는 귀신이나 도깨비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를 의미하기도 한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진압작전 직전 서귀포지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서북청년단원들.
최고수뇌회의 참석차 제주에 온 수뇌부들. 좌측에서 두번째 군정장관 딘 소장,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조병옥 경무부장, 맨 오른쪽이 김익렬 연대장. ⓒ 미국립문서기록괸리청
초토화작전 직전인 1948년 10월 제주를 방문한 채병덕 참모총장 일행. 뒷줄 오른쪽 다섯 번째 송요찬 연대장, 채병덕 참모총장, 열두번째 키큰 이가 서종철 부연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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