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늦은 봄이었다. 나는 지난해 입학해서 가을학기부터 휴학 중이었고 여자친구는 갓 대학에 입학했다. 풋사랑 데이트를 하던 우리는 서귀포 쪽 한라산 자락 돈내코 근처에 있는 국립육묘장에서 묘목을 키우던 선배님을 찾아갔다. 새싹이 돋고 온갖 꽃이 피어나던 화창한 봄날이었다. 방송국에서 DJ도 하셨고, 문학에도 깊은 내공을 가진 형님은 방송국을 그만 둔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우리를 반겨주던 그날 선배님은 다짜고짜로 '백작부인'이란 작위를 여자친구에게 내려주셨다. 나는 '우아한' 그녀의 걸음걸이를 좋아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소문이 났는지 주변 몇몇 선배 형들이 우리를 만나면 그녀를 '백작부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 형들은 이 귀족호칭으로 안부를 묻는다.
별명은 어느 한 순간의 첫인상으로 만들어질 때가 많다. 나는 자동으로 백작이 될 법도 한데 그러지는 못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칭 '호위무사'로 만족하고 있다.
작위를 내려주신 그 선배님은 손수 일으켜 세운 나무농장 ‘오래된 숲’에서 여전히 나무를 키우고 돌보며 그림을 그리신다. ‘오래된 숲’은 서귀포 동쪽 남원읍 수망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