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훈 Nov 21. 2024

아마를 위한 장례식

『작별하지 않는다』(1부-새) 152~156쪽

「아마」를 위한 주인공 경하의 장례(葬禮)는
주검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자들에 대한 고발
제주4·3항쟁이 지속하는 동안 죄 없는 양민에 대해 그들은 무자비한 학살과 모진 고문을 자행했다. 계엄령 아래에서, 빨갱이 절멸을 외치며 그들이 벌인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은 무참(無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죽음 이후에도 그들은 모욕을 가하는 행위를 일삼았다. 사람 취급을 않겠다는 듯이, 생명이 끊긴 주검에 대해서조차 그들은 일말의 예의가 없었다.¹⁾ 특히 영락교회에 속한 청년들이 주축이던 서청은 이런 만행을 저지른 핵심이었다. 사랑한 적도 없는 새, 필사적으로 구하려다 실패한 ‘아마’라 불리는 카나리아를 예를 갖추어 정성껏 묻어주는 경하. 폭설이 내리는 캄캄한 밤에 홀로 고투하는 장례의 장면들. 나에게는 주검까지 학대한 학살자들에 대한 고발로 읽혔다.       


새의 죽은 얼굴을 다시 감싸 여민다. 좀전처럼 손수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흰 무명실로 감고 재봉 가위로 자른다. 매듭을 짓다 잘 안 보여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고서야 끈끈한 즙 같은 것이 새어 나온 걸 안다. 덤불에 찔려 흐른 피와 섞인 그걸 패딩 코트 앞섶에 함부로 닦는다. 시고 끈적이는 눈물이 다시 솟아 상처에 엉긴다. 이해할 수 없다. 아마는 나의 새가 아니다.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     


한 뼘 남짓한 너비의 작은 통이지만 새의 몸이 워낙 작아, 쏠리고 부딪히지 않게 하려면 더 감쌀 게 필요하다.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상자의 안쪽 사면을 두른다. 폭이 좁고 길이도 짧아 목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제대로 막지 못했던 것인데, 맞춘 듯 상자의 빈 곳을 메워준다.     


그 위로 알루미늄 뚜껑을 덮으며 생각한다. 쥐와 벌레가 파먹지 못하게 하려면 밖에서도 상자를 싸야 한다. 욕실 입구에 놓인 대바구니에서 깨끗해 보이는 흰 수건을 꺼내와 상자를 감싼다. 무명실을 길게 끊어 두 번 십자로 묶고 매듭을 짓는다.      


수십 포대의 설탕을 부어 놓은 것 같은 눈이 안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반사하고 있다. 처마 아래 기대선, 반나마 눈에 덮인 싸리 빗자루를 나는 집어 든다. 새가 든 상자를 한 팔로 안은 채 빗자루로 주변의 눈을 쓸어내자 젖은 삽이 쓰러진 채 모습을 드러낸다.     


어디에 묻어야 할까.


처마 아래 상자를 두고 삽을 들며 나는 생각한다.


인선이라면 어디 묻으려 할까.     


목도리를 벗은 목으로 바람이 파고든다. 후드를 쓰고 나는 허리를 굽힌다. 여전히 검은 소매 같은 가지들을 휘두르고 있는 나무를 향해 삽으로 눈을 퍼내며 나아간다. 중간에 멈춰 허리를 펴고 돌아보자, 상자가 놓인 처마 아래까지 좁다란 굴이 뚫린 것처럼 보인다.      


마침내 나무 아래에 다다른다. 밑동 앞에 쌓인 눈을 삽으로 퍼낸다. 숨이 가빠지는 만큼 추위가 가신다. 상자를 가지런히 안채 앞까지 걷는 동안엔 이상할 만큼 세차게 심장이 뛴다고 느낀다.    

  

나무 옆에 상자를 내려놓는다. 눈 아래 드러난 흙에 삽을 꽂는다. 오른발로 체중을 실어 삽날을 박는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두 발을 모두 올리고 흔들리며 잠시 중심을 잡자 삽날이 조금 내려간다. 그렇게 올라섰다 내려서기를 반복한다. 체중을 실은 삽날이 조금씩 언 땅을 비집고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팔과 다리가 떨린다. 알고 있다. 뜨거운 죽을 먹어야 한다. 더운물로 몸을 씻고 누워야 한다. 하지만 새를 묻기 전엔 그럴 수 없다.


삽날을 타고 마침내 얼지 않은 속흙의 감각이 느껴진다. 삽을 꽂아둔 채로 내려서서 숨을 고르며 하늘을 본다. 달이 사라졌다. 달빛을 받으며 전진하던 먹구름들도 보이지 않는다.     


더 큰 눈이 내리려는 걸까.     


그 전에 서둘러야 한다. 상자가 들어갈 너비로 작은 구덩이를 파다 말고, 미끈하고 찬 것이 별안간 뺨을 건드려 나는 몸서리친다. 긴 소매처럼 늘어뜨려 진 나뭇가지가 스친 거다. 나무 우듬지를 올려다보자 작은 눈송이가 미간에 떨어진다. 불 켜진 안채 앞으로도 성근 눈발이 날리고 있다.     


이런 눈이 지금 서울에도 내리고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오래전 인선과 함께 국숫집 창으로 보았던 것 같은, 쌀가루처럼 입자가 고운 눈이 날리고 있을까. 늦은 시각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후드를 쓰고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갈 사람들의 물결을 나는 떠올린다. 미리 준비한 우산을 펼쳐 드는 몇 안 되는 사람들, 끝없이 늘어서서 붉은 미등을 켜고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 그 사이로 눈을 맞으며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떠올린다. 내가 없는 그곳에 인선이 있고, 그녀가 없는 이곳에 내가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인선의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평행우주²⁾가 존재한다면 나는 지금 서울 근교 아파트의 침대에 웅크려 누워 있거나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거다. 인선은 싱글 매트리스에서 잠들어 있거나 안채의 부엌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거다. 암막 천에 덮인 새장 속 횃대에 아마가 발을 걸고 있을 거다. 잠든 몸이 어둠 속에서 따스할 거다. 가슴털 아래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을 거다.     


그게 멈춘 게 언제였을까, 나는 생각한다. 내가 건천으로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그전에 물을 먹일 수 있었을까. 그 순간 제대로 길을 택해 내처 걸어왔다면. 아니, 그전에 터미널에서 더 기다려 산을 가로지르는 버스를 탔다면.     


그사이 상자 위로 쌓인 눈을 손바닥으로 쓸어낸 뒤 구덩이 속에 넣어본다. 흙바닥이 고르지 않아 평평히 놓이지 않는다. 캄캄한 바닥 면을 두 손으로 갈퀴질해 고르고, 그사이 다시 곱게 상자에 내려앉은 눈을 쓸어낸다. 아무도 해주지 않을 다음 신호를 기다리듯 잠시 쪼그려 앉아 있다가 구덩이 속에 상자를 내려놓는다. 희끗한 표면이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두 손으로 흙을 떠 넣는다. 좀전에 파냈던 흙을 삽으로 퍼서 덧쌓고, 힘껏 손바닥으로 다져 작은 봉분을 만든다. 검은 흙의 표면이 금세 눈에 덮이는 걸 지켜본다.     


이제 더 할 일이 없다.     


몇 시간 후면 아마는 얼어붙을 거다. 2월이 올 때까지 썩지 않을 거다. 그러다 맹렬히 썩기 시작한다. 깃털 한 줌과 구멍 뚫린 뼈들만 남을 때까지.     


[옮긴이 註]

1) 1949년 6월 7일, 이덕구 사령관은 시안모루 지경 ‘북받친밭’에서 토벌대의 집중사격에 쓰러졌다. 부인과 다섯 살 아들 진우, 두 살배기 딸은 물론 친척들도 대부분 4·3 와중에 목숨을 잃었다. 아들 진우가 울며 살려달라고 하자 경찰관은 “아버지 있는 산으로 달아나라”고 하고는 산을 향해 뛰어가는 그를 쏘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십자가에 묶여 관덕정 광장에 전시된 이덕구의 시신은 때 절은 일본군 비행복에 입가에 피를 흘린 채였고, 그를 조롱하기 위해 웃옷 주머니에 수저를 꽂아 넣었다. 이후 경찰은  생포돼 조사받던 그의 부하들을 시켜 효수된 머리를 전봇대에 매달았다. 이 일이 끝나자 당국은 시신을 남수각 냇가에서 화장하였고, 유골은 다음 날 큰비가 내리는 바람에 바다로 떠내려갔다고 발표했다. 죽음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 <김양훈의 한라시론> 中. -2023. 5. 11. (한라일보)

1949년 6월 7일 사살 후, 관덕정 마당 십자가에 매달린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의 시신-제주4.3재단

2)) 평행우주(平行宇宙, Parallel Universe) 또는 패러렐 월드(Parallel World)는 평행 우주설에 의한 가상의 우주 모형으로, 같은 모습을 가지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수없이 많은 우주다. 어떤 우주(세계)에서 분기하여 그에 병행해 존재하는 또 다른 우주(세계)를 의미하며, 자신이 사는 세계가 아닌 평행 선상에 있는 다른 세계다. 즉, '내가 선택하지 않은 또 다른 내가 사는 세계'를 뜻하며, 넓은 의미로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는 다중 우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다중 우주는 여러 개의 우주가 있다는 이론이고, 평행우주는 동일한 차원의 우주만을 의미한다. 차원은 같지만 다른 세계이다. <위키백과>                        

무장대로 가장한 2연대 특공대. 왼쪽 아래에 ‘폭도로 가장코‘ 라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1949. 1)
제주도 토벌에 나섰던 경찰과 서청단원, 군인을 격려하는 이승만
제주를 시찰한 정일권 경비대 총참모장(오른쪽). 김영철 해안경비대 참모장(중앙)이 9연대 송요찬 연대장과 함께 삼성혈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1948. 10. 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