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보름 조금 지난
달이 낯설다.
태어나 한 번도 보지 못한 형상,
위쪽의 반원이
미묘하게 움츠러든,
강을 따라 걷던
우리들 중 하나가 말한다.
그야 여기는 무척 남쪽이니까,
우리들의 도시는 무척 북쪽이었으니까.
비스듬한 행성의 축을 타고
그토록 멀리 미끄러져 내려왔으니
시선의 각도에 맞추어
달의 윗면이 오므라든 거라고
손바닥으로 꾹 눌러본 소금 공, 혹은
얼린 밀반죽처럼
(아주 조금) 납작한 달
다른 행성의
다른 달
아래를 걷듯
우리들은 조용히,
(슬프지 않게)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