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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Dec 01. 2024

안산자락길 벙개 후기

독서클럽 러시아 문학회

안산자락길 정도야 눈감고도 길잡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무악재 구름다리 계단을 올라 동서로 갈리는 세갈래 길목이 문제였다. 눈이 왔기로서니, 아차 거기서 그만 헷갈렸다. 동쪽으로 길을 잡아야 하는 데 반대편 서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한참 뒤였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었다. 그래서 꼰대 아니랄까 동행하든 두 여인에게 독백하듯 한마디 뱉었다.      


“인생도 마찬가질 걸. 길을 잃어야 신세계를 만나는 거지… 음”    

 

지난번 답사를 하면서 그려놨던 그림이 흐트러져버렸다. 그리고 아미산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을 재어보니 애매했다. ‘그렇다면 자락길에서 벗어나 안산 정상인 봉수대를 넘어가면 얼추 맞추리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만남의 시간인 오후 1시를 훌쩍 넘어 2시 가까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첫눈으로는 117년 만의 기록이라 하던가. 한강 작가에게 눈은 아름답지만 힘없고 나약한 존재의 상징이다.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기 시작하자 눈밭은 순결한 빛을 잃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럴 수는 없겠지만, 눈이 참말로 눈다우려면 차가워야 한다. 희고 고운 눈에게는…. 그 미묘함이 있다. 그래서 힘들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카라얀과 정명훈, 조성진과 임윤찬의 차이 같은 것?' 


안나 카레니나와 더불어 톨스토이를 이야기하며 걸었다. 그것만 이야기했으랴! 중단없이 끝도 없었다. 그렇게 입과 함께 발걸음도 부지런하게 걷다가 숲 그늘에서 도토리 같은 뭔가 먹이를 찾고 있는 청설모를 발견했다. 갑자기 ‘도토리를 빼앗긴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생각났다. 그 이야기로 또 한바탕 웃고 나서 그의 근황을 아는 혜정 씨가 말했다. 그의 가족사도 그렇고 요즘 그의 연주는 슬럼프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우스운 것은 할 수 없었다. 그의 팬들이 오죽했으면 그런 별명을 붙여줬을까. 미안했어요, 임동혁, 힘내세요! 그리고 다시 한번 찾아보세요. 어디엔가 있을 당신이 숨겨논 도토리를!     


매의 눈으로 빙 둘러 산 아래 풍경을 한 바퀴 조망하고, 정상인 봉수대에서 내려오는 길. 꼬마 크레인이 길을 넓히고 곧게 하려고 작업 중이었다. 안 그래도 질척거리는 눈길을 진흙탕 밭으로 뭉개놓았다. 산길은 산길다워야지 이게 무어람. 한강 작가가 표현하기를 직선은 무섭다고 했다.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숨어 있어서일 것이다. 산길은 완곡해야 한다. 우리의 언어가 그러해야 하듯이 말이다. 아름다우려면, 직설보다 완곡이 필요할 때가 더 많아야 하리. 맥락없는 완곡의 의미를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미산에서 배 터지게 점심을 하고, 카페 「폭포」에서 차를 마셨다. 산속에서 떠들었던 수다는 수다도 아니었다. 수다?, 만은 아니었다. 하여튼, 어떻든, 너무 즐거웠던 벙개 이야기는 이만 끝내고, 사진으로 마무리합니다.


Happy Sunday! 그리고 아름다운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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