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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Nov 29. 2024

안산자락길 벙개에 붙여(II)

홍제천 옛이야기와 풍경

홍제천은 안산의 서쪽 자락 끝을 적시며 흐르는 하천이다. 북한산에서 발원한 물이 흐른다. 아니다. 먼 옛적에는 분명 북한산 줄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흘렀을 것이다. 어느 때부턴가 홍제천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하천인 건천(乾川)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시냇물을 괴롭힌 후과였다.

다시 물이 흐른 것은 1999년 2월부터였다. 한강의 물을 길어 올려 내를 흐르게 하고 폭포도 만들었다. 인공의 모든 걸 알고 바라보면 좀 어색하지만, 모르는 이들이 보면 자연스럽게만 보인다. 어쨌거나, 요즘 홍제천 폭포는 세간에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내일 벙개는 안산자락길을 내려와 점심을 마치고, 홍제천 「폭포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안나 카레니나』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이번 역시 페북에 올렸던 토막글과 사진을 올린다. 소소한 인원이 내일 안산자락길을 걷지만 참고하시라고.  
홍제천과 환향녀
2017년 5월 17일     

홍제천은 중국 사신이 묵어가던 홍제원(弘濟院)이 근처에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홍제원천(弘濟院川)이라고도 했다. 모래가 많이 쌓여 냇물이 모래 밑으로 흘렀다고 해서 모래내 또는 사천(沙川)으로도 불렸다. 그리고 세검정이 있는 상류 부근은 세검천(洗劍川)이라고도 하였는데, 세검정(洗劍亭)에 얽힌 옛이야기는 따로 있다.     


세검정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궁궐지(宮闕志)에 의하면, 인조반정 때 이귀(李貴)·김류(金瑬) 등의 반정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또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에는 “세검정은 열조(列朝)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세초(洗草:사초를 물에 씻어 흐려 버림)하였고, 장마가 지면 해마다 도성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 구경을 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1·21 사태 당시 북한 특수부대 침투조가 청와대를 앞둔 세검정고개의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났다. 그 당시 경찰이 비상근무 중이었던 곳이 바로 홍제천의 상류인 세검천이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슬픈 이야기도 전해 온다. 청나라에서 고국 조선으로 돌아온 환향녀(還鄕女) 이야기다. 병자호란을 맞아 청나라에 패한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때는 1639년 추운 1월이었다. 수많은 아녀자들이 인질로 오랑캐 땅으로 끌려갔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환향녀라는 이름을 얻었다. 곧 정절을 잃은 여인이란 ‘화냥년’으로 변모하며 낙인처럼 그들을 따라다녔다. 한국판 주홍글씨였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라고 하던 그 시절이었다. 환향녀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조정에서는 궁여지책으로 하나의 방편이란 것을 내어놓았다. 벽에다 방을 붙였는데 내용은 이랬다.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오면 모든 것을 씻은 새사람으로 인정한다’. 이처럼 홍제천은 임금이 정한 소위 회절강(回節江) 중의 하나였다.      


환향녀가 속옷 차림으로 홍제천 물을 건너오면 오랑캐에게 당한 더러움이 깨끗이 씻긴 것으로 간주하라는 어명을 내린 것이다. ‘화냥년’의 낙인을 지우려는 아녀자들이 홍체천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홍제천에 몸을 씻은 여자들에게는 정조를 되찾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에서 회절여인(回節女人)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화냥년이든 회절여인이든 결국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회절한 환향녀를 거부하는 집안은 중벌로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양반가에서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환향녀들은 목을 매 죽거나 자신이 몸을 씻었던 회절강(回節江)에 몸을 던졌다. 말 없는 홍제천은 이토록 슬픈 역사를 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홍은동 백련산 기슭의 서울집에서 사대문을 오가려면 반드시 이 홍제천을 건너야 한다. 엊그제 청와대로 이사 가기 전까지 그들 부부는 1년 4개월을 이 동네에서 살았다. 문 대통령은 홍제천의 안타까운 '환향녀' 이야기를 진작 알았을까? 홍은동 사저에서 논골 고갯길을 잠시 내려와 우회전하자마자 유턴해 직진하고 자하문 터널을 빠져나가면 바로 청와대 입구다. 힘없는 백성이 피눈물을 흘리는 억울한 역사는 만들지 말아야 할 터인데. 알고서나 이사 갔으면 좋았으련만….    


홍제천 왜가리
2017년 5월 17일

우리 동네 홍제천에 사는 왜가리는 늘 혼자 서 있다. 날 저무는 저녁에도 시냇물 한가운데 홀로 우두커니 서 있으니 외롭게만 보인다. 반면 오리 족속은 혼자 노는 법이 없다. 언제나 동무하고 까불거나 가족끼리 열을 지어 다닌다. 유쾌하게 보인다. 어쩔 수 없는 천성(天性)이지 그들의 의지(意志)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람들은 유난히 특별해서 저마다 다른 천성(天性)대로 움직인다. 그에 맞는 삶이라면 누가 뭐래도 즐거운 것이다. 저녁에 홀로 선 왜가리가 외롭게 보인다?그것은 사람의 감상일 뿐 왜가리의 외로움은 아니다. 마른 시내였던 홍제천에 물이 흐르면서 유독 왜가리들이 많이 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왜가리가 된 듯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冬-물안개를 가르는 홍제천 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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