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기독교계에서 서북지역이라고 지칭하는 곳은 미국 북장로교가 관할했던 평안도와 황해도 이북 지역이다.
Rev. Wilber C. Japanese colonial era in Korea.
1부 전쟁 제1장 한반도 서북 지역과 월남 기독교인
머리말
한반도의 서북지역은 행정 구역상으로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등 북한 대부분의 지역을 일컫는다. 즉, 관서(關西), 해서(海西), 양서(兩西), 서선(西鮮) 등으로 지칭되는 평안도와 황해도, 관북을 의미하는 함경도를 포함한 것이다.¹
평양이 중심지였던 서북지역은 단군과 기자의 땅으로 오랫동안 한민족의 발상지와 문명화의 전초기지로서 인식되어왔음에도 정치적·사회적으로는 변방 지역이었다. 이 지역민들이 변방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정치적·사회적 권력 집단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세기 말 이후였다. 그것은 독특한 이 지역의 역사적 배경 때문에 어느 지역보다 빨리 서양의 기독교로 개종하고 기독교 사상을 선점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이 지역은 여러 기독교 교파 중에서 장로교가 특히 우세했다. 이는 1892년부터 시작된 외국 선교부의 선교지 분할 협정에 의해 평안도와 황해도 이북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함경도는 캐나다장로회(1925년 이후 캐나다 연합교회)의 선교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938년 통계에 의하면 약 75%가 서북지역의 신도였다. 서북지역 대부분의 도시에서 기독교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으며, 교회는 근대 지식층의 집결지였다. 1910년 5월 현재까지 서북지역의 기독교 학교는 모두 511개교였으며, 이는 기독교계 학교 전체의 78%였다. 그리고 전국 사립학교 총수의 23%에 해당되었다.² 또한 기독교를 매개로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지면서 미국에서 유학한 지식인들이 많아졌다.³ 따라서 서북지역을 주도하던 세력은 장로교 계통이었으며, 이 지역은 근대 지식층과 미국 유학생이 가장 많이 집결한 곳이었다. 특히 이 지역 중에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관할하에 있던 평안도가 이 지역을 선도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기독교계에서 서북지역이라고 지칭하는 곳은 북장로교가 관할했던 평안도와 황해도 이북 지역을 말한다.⁴
선교사를 매개로 한 미국과의 관계망, 근대 지식층과 미국 유학생, 그리고 이 지역민들의 정체성에 대한 내적 기반을 강화하고 확대할 수 있는 거점인 교회와 기독교 학교 등은 이 지역민들이 한반도의 권력 집단으로 부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원이었다. 이 지역민들은 구한말 애국 계몽사상을 선점하고 주도함으로써 한반도의 주류 집단으로 성장했다.
1906년 이후 이들이 주도했던 애국계몽에 대해 학계에서는 서북지역과의 관련성보다는 단지 구한말 민족운동의 큰 흐름으로만 평가했다. 서북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애국 계몽운동이 활성화된 지역으로만 조명되었다. 즉, 이들이 애국 계몽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새로운 권력 집단으로 부상하는 것까지는 연결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서북지역의 정체성이 근대 민족국가의 정체성으로 확장되면서 이 지역민들이 새로운 주류 집단으로 부상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⁵
이 장에서는 기왕의 연구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 지역의 특별한 역사적 정체성과 1945년 광복 이후 이 지역민들이 남한에서 결집하는 과정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이 지역에서 신흥 상공인층의 출현과 기독교 수용 과정을 살펴본 후 이 지역민들이 황제권에 도전하면서 자신들의 내적 기반을 강화하고 확대해가는 과정,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대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전개된 제국 일본과 이 지역민들의 경쟁, 마지막으로 1945년 광복 이후 이들이 남한에서 결집하는 과정에 대해 다룰 것이다.
[옮긴이 註]
1) 조선 시대의 지방 통치 정책상으로 ‘서북지역’은 평안도와 함경도를 통칭할 때 사용되었다. 대체로 황해도는 별도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행정구역 상으로는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등을 서북지역으로 통칭한다. 이에 대해서는 국사편찬위원회 엮음, 『한국사, 36』(국사편찬위원회, 1997), 213쪽; 오수창, 『조선 후기 평안도 사회발전 연구』(일조각, 2002), 10쪽; 장유승, 「조선 후기 서북지역 문인연구」(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1), 1쪽; 정종현, 「한국 근대소설과 ‘평양’이라는 로컬리티」, <사이(SAI)>, 4권(국제한국문학학회, 2008), 95쪽을 참조.
2) 윤경로, 「105인 사건과 기독교 수난」, 『한국기독교와 민족운동』(보성출판사, 1986), 313쪽
3) 김상태,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 엘리트의 형성」, <역시비평>, 45호(역사문제연구소, 1998), 184쪽.
4) 김상태는 서북이라는 용어를 평안도 전체와 황해도 북부 지역에 한해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황해도의 재령군, 장연군, 안악군, 은율군, 송화군, 신천군, 황주군, 봉산군 등은 대체로 평안도와 정서적으로 가까우며, 황해도 이남 지역은 경기도 지역과 정서상 가깝다. 이 때문에 평안도 선교를 담당한 미국 북장로교는 황해도 북부 지역을 할당받았고, 이남은 미국 감리교가 담당했다. 따라서 황해도 북부 지역과과 평안도만을 서북지역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김상태의 주장이다[김상태, 「평안도 지역의 근대적 변화와 국사교과서 서술내용 개선방안」, <지방사와 지방문화>, 8권 2호(역사문화학회, 2005), 184쪽. 『영락교회 50년사』에서도 서북지역이라는 용어를 평안도와 황해도에 한해 사용하고 있으며, 영락교회의 뿌리가 서북지역임을 밝히고 있다[영락교회 엮음, 『영락교회 50년사』(영락교회, 1998),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