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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Dec 15. 2024

이상(李箱)의 회화와 문학세계

한강의 석사 학위논문

논문 요약

이상은 문학 작품들을 창작해 발표하는 한편 많은 그림을 그렸으나 대부분 유실되었고, 현재는 소수의 회화 작품들만 자료로 남아 있다. 동일한 창작자가 창작한 회화와 문학작품은 창작 원리와 모티프에 있어 공유점을 갖는다. 회화 작품들의 기법과 이미지를 분석하여 문학 텍스트들과의 상호 관련성을 찾고, 이 과정에서 이상의 근본적 창작 모티프에 접근하는 작업은 그의 문학작품의 해석에 의미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상이 남긴 두 점의 초기 유화 자화상과 이상의 자의식적 시편들에는 ‘가난’과 ‘측은’의 자기 이미지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이 어두운 자기 이미지는 단순한 우울이나 존재론적인 피로감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을 구성하는 복합적인 의식 구조와 연관지어 살필 수 있다. 한편, 유화 자화상들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한쪽 눈의 공동(空洞)이나 검은 그늘은 거울 모티프 시들과 상호 관련성을 갖는다. 라캉의 시각예술 이론을 적용하면, 이 눈의 공동은 재현의 빈 곳을 드러내며 시각장¹ 후면의 실재를 향해 열려 있다.   

   

한편 「날개」의 삽화들이 지닌 이중구조는 소설이 지닌 이중구조와 상동성²을 갖는다. 소설 「날개」는 프롤로그와 본문의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프롤로그 부분은 ‘설계자의 목소리’로서 작가의 강한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어 본문의 서사와 구별된다. 이는 단순한 형태의 복화술이며, 이 복화술은 이후 「종생기」에서 다성적 목소리의 분열로 심화된다. 이러한 겹구조가 「날개」의 창작자인 이상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직접 그린 삽화들과의 관계성을 통해 짚어볼 수 있다. 이상이 마지막으로 남긴 회화 작품인 드로잉 자화상은 여타의 회화 작품들보다 이상의 문학세계와 중요한 관련성을 지닌다. 이상은 이 그림에서 점과 선의 혼용기법을 사용하여, 획과 선들이 서로 투쟁하는 듯 윤곽선이 뚫린 얼굴 형상을 창조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기법으로 그려진 두 눈의 시선은 뚜렷한 비대칭의 형상을 하고 있다.    

  

먼저 점과 선의 혼용기법을 그의 문학작품과 연관지어 살펴보면, 점들의 시각적 이미지는 다성적 목소리를 지닌 「종생기」의 복화술과 관련성을 지닌다. 이 복화술이 발생되는 내적 메커니즘인 ‘결별-선고-완치’의 심리적 경로는 이상 문학의 중요한 모티프이며, 「날개」 「종생기」등의 소설에서뿐 아니라 시편들에서도 변주되어 나타난다. ‘결별-선고-완치’의 메커니즘은 ‘분열’이라는 선재 조건을 필요로 하는데, 주체가 자신을 유동의 상태로 만듦으로써만 재생의 회로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의 뚜렷한 재현성 대신 유동하는 점들로 형상을 만들고, 그 형상이 더욱 모호해지도록 형상 위로 수많은 점들을 덧 찍은 이상의 시도는 이 창작 메커니즘의 시각적 표상이다.      


이 유동하는 점들 위에 덧그어진 획들은, 점들과의 모순과 통합 사이에서 불완전한 형상을 구성하고 있다. 점과 선의 변증법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데에 이 그림의 긴장이 있다. 소설 「실화」와 시 「오감도 제1호」 「위독;내부」 「선에 관한 각서」 등에서 발견되는 상동성을 통해 추적해볼 때, 이 형상은 미적 모더니티³가 지닌 균열, 즉 모더니티에의 매혹과 거부가 시각적 이미지로 표상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최소한의 섬세한 선들을 사용하여 최종적 형상을 구성하는 작업은 「종생기」의 다성적⁴ 목소리를 최종적으로 꿰매어 소설화하는 작가의 행위와 상동성을 지닌다.   

   

한편, 드로잉 자화상의 시선은 유화 자화상들의 경우처럼 한쪽 눈이 뚫려 있지는 않으나 뚜렷한 비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이미지는 이상의 문학 텍스트들이 지닌 아이러니와 관련된다. 아이러니의 미적 방법론은 앞서 살핀 복화술의 내적 메커니즘을 포괄하는, 이상의 회화 창작과 문학 텍스트의 창작 모두에 작동되는 원리이자 요체이다. 아이러니는 본질적으로 강한 성찰적 자의식을 필요로하는 방법론이다. 이상이 자화상을 주로 그렸으며, 그의 많은 시편들이 언어로 쓴 자화상이라는 것은 이 성찰적 자의식이 그의 창작을 추동하는 힘이었음을 증거한다. 이상은 대담하고 독보적으로 미적 자율성을 실험했던 작가이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그 자체로 빼어난 성취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창작자로서의 강한 자의식과 미적 방법론을 시각적으로 표상함으로써 문학세계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 실마리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   


[옮긴이 註]

1) 시각장(視覺場) = Field of View 또는 Visual Field     

2) 상동성(相同性·Homology)은 어떠한 형질이 진화의 과정 동안 보존된 것을 말하며, 이는 형태적 형질이나 분자적 형질, 유전자 서열도 해당될 수 있다. 진화가 일종의 개조 과정이라면, 그 과정을 거치면서 보존되는 특징들이 존재할 것이라 예측할 수 있으며, 이것이 상동성이다. 여기서 형질이 보존되었다는 것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공통적 조상 형질로부터 유래된 것이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어 진화적 관계를 유추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3) 모더니티 정의(with 모더니즘)

모더니티라는 용어는 주로 '근대성'이나 '현대성'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 것으로 주로 역사적인 개념이거나 철학적 개념이다.     

·모더니티의 특징

1. 모더니티는 공통된 언어와 전통에 기초를 둔 단일 민족국가의 성립을 탄생시켰다.

2. 모더니티는 인간의 문제에서 이성의 권위를 가장 우위에 두었다.

3. 모더니티는 대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데 무엇보다도 자연 과학의 권위에 의존하였다.

4. 모더니티는 삶과 자연 현상을 탈신비화 시켰다

5. 모더니티는 모든 개인의 천부적 권리, 그 가운데서 특히 자유와 자기 결정의 표현 에 대한 권리 인정하였다.

6. 모더니티는 자유 시장 경제 제도를 도입하고 그것에 수반되는 임금 노동과 도시화 그리고 생산 수단의 개인 소유를 적극 장려하였다.

7. 모더니티는 인간의 발전 가능성을 굳게 믿으면서 관용, 동정, 사려분별, 자선 등과 같은 기독교적 휴머니즘에 기초한 다양한 덕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모더니즘

모더니즘은 오직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엽 서구 문학사를 통하여 나타난 특정한 예술운동이나 경향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모더니즘은 특정한 어느 한 시대에만 국한되는 절대적 개념라 할수 있다.  

   

한편 모더니즘 이라는 용어는 '이즘'이라는 접미어가 의미하듯이 어느 한 집단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일련의 원칙이나 입장 또는 태도를 가리킨다. 물론 모더니즘은 중요한 면에서 모더니티의 일부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에서 비롯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현상은 아주 중요한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모더니즘은 심미적 모더니티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더 제한된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서 모더니즘은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서구 예술에 풍미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운동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모더니티는 서구사를 통하여 무려 4~5백년 계속된 반면, 모더니즘은 서구 세계에서 기껏해야 5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는다. 

    

4) 다성적(多聲的 : ①독립된 선율을 가지는 둘 이상의 성부로 악곡이 이루어진 또는 그런 것. ②여러 사람의 발화나 의견 또는 주장이 있는 또는 그런 것.


한강의 석사학위논문「이상(李箱)의 회화와 문학세계」中 '거울' 관련 발췌   

한편 이들 회화 작품에 대응하는 문학 작품들로는 자화상에 가까운 시편들인 「얼굴」 「空腹」 「悔恨의 章」 등과, 거울 모티프를 사용한 「거울」 「烏瞰圖 시제 15호」 「明鏡」, 소설 작품으로「종생기」와 「날개」 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대체로 강한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이상의 소설들 가운데에서 이 작품들만을 선택해 다루는 것은, 이 논문의 방법론이 이상의 회화 작품의 분석을 통해 이상의 문학 작품 분석의 실마리를 얻고자 하는 것이며, 이 소설 작품들의 내용과 창작 기법이 드로잉 자화상의 내용과 창작 기법과 긴밀하게 상호 연관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의 내용은 모두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론의 첫 번째 장인 2장에서는 이상이 남긴 2점의 유화 자화상과 이상의 시적 자의식을 비교 고찰한다.      

2.1.에서는 ‘가난’과 ‘측은’의 자기 이미지가 초기 자화상과 자화상계 시편들에 중첩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밝히며,      


2.2.에서는 유화 자화상들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한쪽 눈의 공동(空洞)이나 검은 그늘이 거울 모티프 시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핀다.     

 

이상의 거울 모티프 시들은 작품의 수가 많지 않으나,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과의 연관성을 지니고 있어 다수의 선행 연구가 이루어졌다. 


<학위 논문 全은 아래 첨부 파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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