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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도스토옙스키(VIII)

1821. 11. 11 ~1881. 2. 9

by 김양훈
2025년 2월 9일은 도스토옙스키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습니다. 추모하는 뜻에서 작년 5월 우리 모임 FB 단체방에 올렸던 연재 글을 다시 읽습니다. R.I.P.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평전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中 발췌⑧

사실주의와 환상(III)

호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인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 현장인 전쟁의 한가운데서 그의 작품의 다음 몇 행이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사람들은 소금기 어린 바닷바람을 호흡하고, 그리스의 은빛 광채는 피의 현장을 비춘다. 축복받은 감정은 인간의 파괴적 투쟁을 영원한 존재에 대항하는 헛된 망상으로 인식한다. 이제 사람들은 숨을 쉬고, 인간적 번뇌에서 구원된다.” 괴테의 파우스트 역시 유사하다. 파우스트는 부활절 일요일을 맞이하여 자신의 고뇌를 균열된 자연 속으로 날려 보내고, 환희를 봄의 세계로 던져 넣는다.


도스토옙스키의 우주는
세계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이다.

이 작품에서 인간세계의 배경인 자연은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에게 긴장 완화의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우주는 세계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이다. 그는 음악에 대해서는 귀머거리요, 그림에 대해서는 장님이다. 자연과 예술에 대단히 냉담한 반면, 인간에 대한 한정 없는 탁월한 지식을 보상받는다. 그저 인간인 것에 머무른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우울해진다. 그의 신은 사물이 아니라 영혼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와 독일의 작품들이 복되고 자유롭게 가꾸어 놓은 범신론의 소중한 결실이 그에게는 없다. 그의 작품들은 통풍이 안 되는 방, 러시아의 거리, 술 냄새 자욱한 목로주점¹을 배경으로 한다. 그 안에는 우울한 인간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대기가 차 있고, 그것은 바람과 계절의 순환에 의해서도 말끔히 씻겨나가지 않는다. 어쩌면 독자들은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젊은이』 등의 위대한 작품들에서 어떤 계절 또는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지 기억해 내려 할지 모른다. 봄, 여름, 아니면 가을이던가? 아마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할 것이다. 호흡하거나 냄새 맡지도, 감지하거나 체험하지도 못한다. 그의 작품들은 인식의 번갯불이 돌발적으로 번쩍이는 마음의 어두운 곳만을 배경으로 한다, 별이나 꽃, 정적과 침묵도 없는 두뇌의 비어 있는 우묵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대도시의 연기가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깃든 영혼의 하늘을 어둡게 한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의 저 축복받은 긴장 완화가 없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고통으로부터 무감하고 열정이 없는 곳으로 시선을 돌릴 때 일어나는 긴장 완화, 구원의 휴식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그의 인물들이 곤궁 및 우울의 회색 벽과 대조를 이루는 그의 책들 속에 드리워진 그림자와도 같다. 그의 인물들은 현실 세계에 자유롭고 명료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감정 속에만 존재하고 있다. 그의 영역은 자연의 세계가 아니라 영혼의 세계, 인간의 세계일 따름이다.


하지만 그의 작중인물 개개인 역시 놀란 만큼 논리적 유기체로서 결함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은 전반적으로 비현실적이다. 꿈에서 유래하는 여러 형상이 그들에게 달라붙어 있으며, 그들의 발걸음은 마치 그림자처럼 무한한 공간으로 내디딘다. 그렇다고 그들이 참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반대로 그들은 지극히 진실하다. 그도 그럴 것이 도스토옙스키의 심리학은 결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인물들은 육체가 아닌 영혼으로 독특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조형적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그의 인물을 단지 감정의 변환, 신경과 영혼의 존재로서만 인식하여 그들의 육체에도 피가 흐른다는 사실은 거의 잊을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그들의 육체를 털끝이라도 만져본 사람은 없다. 2만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작품에는 그의 인물들 가운데 누가 앉고, 먹고, 마시는지 전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항상 느끼고 말하고 투쟁할 따름이다. 천리안을 가지고 꿈을 꿀지언정 잠은 자지 않는다. 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늘 열병을 앓고 생각에 잠긴다. 그들은 결코 식물이나 짐승처럼 무감동하지 않고, 멍청하게 있거나 게으름도 피우지 않는다. 언제나 움직이고 긴장하면서 깨어 있다. 지나치게 깨어 있어서 오히려 그것이 문제가 된다. 그들은 언제나 존재의 최상급으로 살아간다. 그들 모두 도스토옙스키의 영적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모두가 형안과 텔레파시의 소유자지만, 환각으로 몽롱한 상태에서 지낸다. 나아가 심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들 본질의 마지막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때 대다수 사람은 평범하고 진부한 삶 속에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운명과 싸우고 있다. 단지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니면 현세적인 이해력만 지니고 있기 때문에 투쟁한다.


인류에 대한 또 하나의 위대한 심리학자 셰익스피어는 그의 비극의 절반 정도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충동의 돌, 운명으로서 놓여 있는 저 어두컴컴한 무지의 토대 위에 구축했다. 리어왕은 딸의 고결한 마음, 수줍은 속에 감추어진 사랑의 위대함을 예감하지 못했기에 딸을 오해하게 되었다. 오셀로는 다시금 이아고를 교사자로 단정하고, 시저는 자신의 살해자 브루투스를 사랑했다, 그들 모두 현세의 참된 본질, 환멸 때문에 몰락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실제의 삶에서처럼 오해나 현실의 불충분성이 비극적 동인이거나 갈등의 원천이 된다. 반면에 너무 해박한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오해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언제나 다른 인물에 대해 예언자처럼 앞을 내다본다. 그들은 부단히 서로 이해하고, 말도 꺼내기 전에 입에서 말을 빨아들이고, 느낌이라는 모태로부터 사고를 받아들인다. 무의식, 잠재의식이 그들에겐 지나치게 발달하여 있어서 그들 모두가 예언가이자 예시자, 환상에 들떠 있는 자들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들에게 자기 존재 및 의식을 신비하게 투시하는 능력을 과도하게 부여했다.


이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다. 나스타샤 필리포프나는 로고신에게 살해된다.² 그녀는 그를 처음 본 날부터 예감한다. 그가 자신을 살해하리라는 것을 엿듣게 된 순간에는 이를 확연히 알게 된다. 그랬기에 멀라 달아났지만, 자신의 운명을 열망했기에 되돌아온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관통하게 될 칼을 몇 달 전에 예측하고 있었다. 로고신도 이를 미리알고 있었고, 그들 둘 다 그 칼을 알고 있었다. 그 밖에 로고신의 형제인 미슈킨 역시 알고 있었다. 언젠가 로고신이 대화를 나누던 중 우연히 그 칼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보았을 때, 미슈킨의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살인할 때에도 이 사실을 알 수 없는 자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노인은 범죄의 낌새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무릎을 꿇었고, 조롱꾼 라키틴도 징후를 알고 있다. 알료사의 경우 아버지와 작별할 때 그의 어깨에 입맞춤했고, 그러면서 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런가 하면 이반은 범죄의 증인이 되지 않으려고 체르미슈나로 떠난다. 이때 추잡한 인간 스메르자코프는 그에게 미소를 지우며 예언한다. 여러모로 믿기지 않는 과도한 예언적 인지능력으로부터 그들 모두가 날짜, 시간, 장소까지 알고 있다. 그들 모두가 예언가이자 인지능력이 뛰어난 전지자이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예술가에게서 모든 진리의 이중형식을 인식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인간을 이전의 누구보다 깊이 인지하긴 했지만, 인류에 대한 전문가로서 셰익스피어는 그를 능가했다. 셰익스피어는 현존재의 복합성을 인식하고, 장엄한 것과 평범한 것 내지 사소한 것을 대비시켰다. 이와는 달리 도스토옙스키는 개별 존재를 무한한 과정 속으로 상승시킨다. 셰익스피어가 육체를 통해 세계를 인식했다면, 도스토옙스키는 정신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그의 세계는 아마 가장 완벽한 환각의 세계이자 영혼의 심원한 계시적 꿈이며, 현실을 초월하는 꿈이다.


그렇다! 사실주의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환상에 도달한다.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초현실주의자 도스토옙스키는 현실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높이 상승했다. 따라서 세계는 내면으로부터, 요컨대 영혼으로부터만 예술로 형성되고 결집하고 구원받는다. 가장 심원하고 인간적인 이런 유형의 예술은 문학, 러시아, 그 어느 곳에서도 선조를 찾을 수 없다. 이런 작품은 아득히 먼 곳에서만 형제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궁핍과 경련, 인간으로서 겪는 과도한 고통은 때때로 가혹한 운명의 위력 앞에서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리스의 비극작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신비하면서도 잔혹한 영혼의 슬픔을 겪었던 미켈란젤로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한 도스토옙스키의 진정한 형제는 렘브란트³이다. 두 사람 모두 세상이 가져다준 빈곤, 결핍, 멸시, 배척의 삶에서 유래했고, 금전이라는 형리에 의해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나락으로 추방되었다. 두 사람 모두 빛과 어둠의 영원한 투쟁인 창조적 대립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나아가 존재의 진지함으로부터 얻어진 영혼의 신성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 도스토옙스키가 그의 성자들을 러시아 농부나 범죄자, 노름꾼에서 찾아낸 것처럼, 렘브란트도 그의 성서적 인물들을 항구 뒷골목 사람들로부터 형상화했다. 둘 다 가장 비천한 삶의 형식 속에 신비하고도 새로운 미를 숨겨두었다. 둘 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다.


그들은 대지의 힘이 분출하는 작용과 반작용, 빛과 어둠의 유희를 인식했다. 이 같은 유희는 생동하는 것과 영적인 것을 강력히 지배함으로써, 삶의 마지막 어둠으로부터 빛을 얻어낸다. 우리가 렘브란트의 그림과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심오함을 간파하면 할수록, 우리는 세속적·정신적 형식의 최종 비밀인 전인적 인간을 알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와 렘브란트 둘 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다.


[옮긴이 註]


1) 목로주점(木壚酒店) : 목로(木壚)란 선술집에서 술을 팔기 위해 설치한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을 의미한다. 즉,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이 있는 선술집이 바로 목로주점이다. 요즘 말로 하면 바(Bar)가 곧 목로주점이다. 아래 에밀 졸라의 소설과 이연실의 노래,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들은 여기서 파생되었다.


▶1877년 에밀 졸라가 발표한 장편소설인 목로주점(L'Assommoir). 자연주의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1981년 발표한 가수 이연실의 노래 제목 <목로주점>. 이연실 작사·작곡이며, 서정적인 멜로디의 통기타 노래다.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오라던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 앉아 마시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 앉아서

그래 그렇게 부딪혀 보자


가장 멋진 목소리로 기원하려마

가장 멋진 웃음으로 화답해줄게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30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르네 클레망 감독의 《목로주점》(Gervaise)은 1956년 드라마 영화이다. 마리아 쉘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클레망이 에밀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을 그린 것인데 제르베즈를 중심으로 타락하기까지의 그녀의 생활을 냉혹하고도 리얼하게 그린다. 제2 제정시대의 파리 빈민가의 풍속 묘사가 훌륭하다.


2) 《백치》(Идиот)는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사랑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황금 송아지가 다스리는 서구주의에 물든 페테르부르크에 찾아온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물 '미시킨 공작'이다. 그러나 “미(美)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라는 작가의 명제에도 불구하고, 돈, 권력, 성적 타락이 만연한 세계에서 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람”은 단지 “백치”가 될 수밖에 없다. 배금주의에 물든 타락한 세상에 보내는 도스토옙스키의 강렬한 묵시록이다.


3)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년~1669년)은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이다. 빛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그는 일반적으로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특히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이기도 하다. 예술 분야에서 그는 역사가들이 소위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 부르는 시대를 불러오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는 해외에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 거장들과 네덜란드 예술가들의 작품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초상화 화가로서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뒀으나, 말년은 개인적인 비극과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힘든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그의 일생 인기가 있었고, 화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여전히 높았고, 20년 동안 그는 많은 중요한 네덜란드 화가들을 가르쳤다.


렘브란트의 동시대 초상화, 자화상, 성경 장면의 삽화는 그의 가장 위대한 창조적 업적으로 여겨진다. 그의 작품에서 그는 고전적 도상학에 대한 지식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그가 자신의 경험 필요조건에 맞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성경 장면의 묘사는 그의 특정 텍스트에 대한 지식, 고전적 구성의 동화,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인구에 대한 그의 관찰 때문에 알려지게 되었다.


생애

1606년 7월 15일 암스테르담 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레이던에서 방앗간 주인의 아홉째 아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이고 렘브란트는 개신교 신자였다. 렘브란트는 화가가 되었을 때 모친이 성서를 읽는 모습을 그림에 담아냄으로써 신심이 진지한 모친에 대한 존경을 보였다. 라틴어를 가르치던 학교를 나온 후, 그는 14세에 레이던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렘브란트가 학교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림 그리는 일에만 열중하자, 그의 부모는 야코프 판 스바넨뷔르흐(Jacob van Swanenburgh) 밑에서 3년간 미술 수업을 받게 하였다.


1625년 개인 화실을 연 직후,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던 피터르 라스트만(Pieter Lastman)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지도를 받으면서 미술에 관한 시야를 넓혔으며, 이를 계기로 1632년 거처를 암스테르담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 외과 의사 조합의 주문으로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제작하여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1642년 〈야경〉을 제작하였으나 당시에는 극히 나쁜 평을 받아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잃었다. 게다가 같은 해에 아내마저 죽자, 실망과 곤궁에 빠지게 되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작품에 정열을 기울였다. 1656년 파산 선고로 유대인 지구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을 계속 발표하였다. 끼니마저 거르는 만년의 비참한 삶에서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그림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야경〉 제작 이후 무너진 그의 화가로서의 삶은 끝끝내 회복되지 못했고 1669년 암스테르담에서 쓸쓸히 죽었다.

야경

주요 작품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1632년) - 마우리스하위츠, 헤이그

《돌다리가 있는 풍경》 (1637년) - 레이크스 미술관, 암스테르담

《야경》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 (1642년) - 레이크스 미술관, 암스테르담

《세 개의 십자가》 (1653년) - 국립도서관, 파리

《밧세바》 (1654년) - 루브르 박물관, 파리

《황금 투구를 쓴 남자》 (1650) - 베를린 국립 회화관


작품의 특징

유화, 동판화, 드로잉 작품들이 남겨져 있고 자화상을 특히 많이 그렸다.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로 그의 굳은 신념은 두터운 신앙심에서 우러나왔기에 특히 종교화에 많은 걸작을 남겼다. 남긴 작품 수는 유화·수채화·동판화·데생 등을 포함하여 2천여 점이나 된다. 성서·신화·역사·풍경·풍속·위인 등 각 방면에서 광범위하게 소재를 구하였다.


그의 작품 속 대상에 대해 사실적 수법을 쓴 다른 네덜란드파의 화가와 다름이 없으나, 빛의 효과에서는 색채 및 명암의 대조를 강조함으로써 의도하는 회화적 효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결과로 그는 '근대적 명암의 시조'란 이름을 듣게 되었다. 또 그는 북부 유럽 동판화의 대가로서 약 300점의 걸작을 남겼으며, 이 동판화만으로도 그는 세계 미술 사상 최대의 화가로 인정된다.


스페인의 벨라스케스와 벨기에의 루벤스와 함께 17세기 최대의 화가로 손꼽히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유럽 회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작품으로 <자화상>, <마리아의 죽음>, <성 가족>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렘브란트의 그림의 특징은 시대의 관행을 뛰어넘어 개성을 발휘했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야경의 경우 얼굴이 모두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그림도 있는데, 이는 모두 얼굴이 나오게 하는 단체 인물화가들의 관행을 뛰어넘은 것이다. 성서를 주제로 한 성화들도 성화(이콘)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거룩한 느낌 대신, 인물들의 심리를 담아내는 심리묘사가 특징이다. 이를테면 구약성서의 족장설화 중 하나인 아브라함이 첩 하갈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를 버리는 장면을 그림으로 묘사하면서, 아브라함의 고뇌와 정실부인인 사라의 뿌듯함을 아브라함은 고뇌하는 표정을 짓고, 사라는 숨어서 웃는 모습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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