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체호프의 대표작으로, 단편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희곡은 『갈매기』 -「체호프 특강」에서 함영준 교수님의 과제 작품 추천
"안나는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몰랐다."
오레안다¹에서 그들은 교회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말없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아침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얄타²가 보였고, 산 정상에는 흰 구름이 미동도 없이 걸려 있었다. 나뭇잎들이 사각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그저 매미들만 소리쳐 울었다. 그리고 아래에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황량한 파도 소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안식, 영원한 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직 얄타도 오레안다도 없었을 때도 이렇게 소리를 냈을 것이고, 지금도 소리 내고 있으며, 우리가 존재하지 않을 때도 이렇게 무심하고 황량한 소리를 냈을 것이다. 이 항상성 속에, 삶과 죽음에 대한 전적인 무관심 속에 우리의 구원과 이 땅에서의 삶 그리고 끊임없는 진보가 약속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새벽빛을 받아 너무도 아름다워 보이는 젊은 여인과 나란히 앉은 구로프는 바다, 산, 구름, 드넓은 하늘이라는 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배경에 매혹되어 마음이 평온해졌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 존재의 고상한 목적과 인간의 가치를 망각한 채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들을 제외하면, 사실 이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답지 않은가.
수위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그들을 한번 보더니 물러갔다. 그러자 이러한 디테일까지도 너무도 비밀스럽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페오도시야³에서 오는 증기선이 불을 끈 채 아침 노을빛을 받으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풀밭에 이슬이 맺혔어요”
안나 세르게예브나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렇군, 이제 갑시다.”
그들은 도시로 돌아왔다.
그리고 매일 정오에 해변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며 바다를 즐겼다. 그녀는 잠을 잘 못 자고 심장이 불안하게 뛴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때로는 질투심으로, 때로는 그가 자기를 충분히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의구심에 똑같은 질문을 해대곤 했다. 그는 종종 근처에 아무도 없을 때면 네거리 광장이나 정원에서 갑작스레 그녀를 끌어당겨 열정적으로 입을 맞추었다.아무 할 일 없는 태평함, 한낮에 누가 보지 않을까 두려워 주위를 둘러보며 하는 이 입맞춤, 더위, 바다 내음, 그리고 쉴 새 없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한가하고 화려하고 배부른 사람들이 그를 새로 태어나게 한 듯했다. 그는 안나 세르게예브나에게 그녀가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지를 이야기했고, 참을 수 없이 열정적이었으며, 그녀 곁에서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종종 생각에 잠겨 그가 그녀를 존중하지 않고, 조금도 사랑하지 않으며 속물스러운 여자로 여긴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들은 거의 매일 저녁 늦게, 오레안다든 폭포든 어딘가 교외로 나가곤 했다. 그러한 여행은 늘 행복했고, 변함없이 아름답고 황홀한 감상을 남겼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안지영 옮김) (2)中
[옮긴이 註]
1) 크림반도에 있는 오레안다(Oreanda)는 크림반도 남쪽 해안에 위치한 휴양지로 유명하다. 크림반도 남쪽 해안 얄타(Yalta)에서 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해안 절벽 위에 위치, 흑해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은 체호프의 단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구로프와 안나가 처음 만난 장소는 얄타인데, 이후 두 사람이 함께 산책하며 강한 인연을 느끼는 장면이 바로 오레안다의 절벽 위다. 이 장면에서 체호프는 흑해를 내려다보며 말없이 서 있는 두 인물의 감정을 풍경에 투영해, 사랑의 시작과 인간 내면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린다. 자연과 감정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사용한 것이다.
2) 얄타(Ялта, 크림 타타르어: Yalta)는 크림반도 남부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우크라이나 크림 자치 공화국(국제적인 승인)에 위치한다. 참고로 크림반도는 2014년 이후부터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러시아에 병합되었지만, 대다수 국가와 유엔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흑해 연안과 접한 휴양지이며 인구는 76,746명(2014년 기준)이다.
얄타의 어원은 ‘물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식민지화된 도시였으며 12세기 아라비아 출신 지리학자의 문헌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 어촌이 형성되었고 14세기에는 제노바 출신 상인들에 의해 무역 식민지로 성장했다. 1475년에는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고 1783년에는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19세기에는 러시아의 귀족, 상류층 사이에서 휴양지로 널리 알려졌다. 톨스토이는 이곳에 여름 별장을 세웠으며 안톤 체호프는 1898년부터 1902년까지 이곳에 살았다. 20세기에는 소련의 휴양지로 널리 알려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5년에는 얄타 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3) 페오도시야는 크림반도의 흑해 연안에 있는 항만 도시로 러시아 크림 공화국에 속한다. 인구는 약 9만 명이다. 이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페오도시야에서 가까운 도시로는 서쪽으로 약 100km 정도 떨어진 심페로폴, 남서쪽으로 약 110km 정도 떨어진 얄타, 서쪽으로 약 150km 정도 떨어진 세바스토폴이 위치하고 있다. 주민은 러시아인, 크림 타타르족과 우크라이나인이지만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주제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1899)의 주제는 진정한 사랑과 인간 내면의 변화이다. 이 작품은 외적인 일상과 내적인 감정 사이의 간극을 섬세하게 그리며, 체호프 특유의 사실주의적 시선으로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모순을 탐구한다.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나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겉모습의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진짜 생활이었다."
진실한 사랑의 발견
주인공 구로프는 처음엔 단순한 일탈로 여긴 만남에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그 전까지의 삶에서 그는 여성을 가볍게 여겼지만, 안나 세르게예브나와의 관계를 통해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깨닫는다.
인간 내면의 변화와 각성
체호프는 주인공이 겪는 내면의 심리적 변화, 즉 삶의 공허함에서 벗어나 진실한 감정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구로프는 점차 자신의 감정에 정직해지고, 이를 통해 독자 역시 인물의 변화에 공감하게 된다.
삶의 이중성
등장인물 모두 사회적 책임인 결혼과 개인의 감정인 애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겉으로는 안정된 삶을 사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외롭고 공허한 내면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현실과 도피
체호프는 두 인물이 사랑을 통해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지만, 그 도피조차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두 사람은 현실로 돌아와야 하며, 그 속에서 사랑을 지속하기 위한 고통과 고민을 받아들인다.
결론: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단순한 불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이란 무엇이며, 인간이 어떻게 진정한 감정을 깨닫고 변화하는지를 섬세하게 조명한 작품이다. 체호프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의 복잡성과 인간 심리의 깊이를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진짜 삶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다."
— 구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