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IV)

석영중 著 <인간 만세!> 중 발췌

by 김양훈


러시아 문학 독서회
8월 과제독서 복습
휴머니즘¹⁾ 소설

이 소설은 워낙 방대하다 보니 기존하는 거의 모든 문학 장르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된다. 우선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소설은 범죄소설, 혹은 추리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 살인 사건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온갖 유형의 범죄들,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집단 따돌림, 사기도박, 무고 등은 이 소설을 거의 ‘범죄 백화점’으로 만들어 준다. 후반부에서 드미트리의 유죄판결과 관련하여 펼쳐지는 치열한 법정공방은 현대의 여느 법정 스릴러 못지않은 흥미를 선사한다.


등장인물 간에 얽히고설킨 애정의 문제는 이 소설을 연애소설의 범주에 집어넣고 인물들의 무의식 세계까지 파고드는 치열한 심리 분석은 심리소설이란 범주를 가능하게 한다. 소설 전반에 걸쳐 제기되는 온갖 사회 문제들(교회문제, 형법 문제, 과학기술의 문제, 자유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은 사회소설이란 라벨을 붙여 주고 제목의 일부인 “형제”에서 시작하는 극적인 가족사와 부자간 그리고 형제간의 갈등, 가정의 해체, 아이들의 주제는 ‘가족소설’이란 라벨을 가능하게 한다. 또 소설이 다루는 소재는 1861년 농노해방 이후 러시아를 그 역사적 궤적 속에서 조망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역사소설로 불릴 만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의 깊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완결본이라는 점에서 명실상부하게 ‘종교소설’이라 불릴 만하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영성을 대변하는 작중인물 조시마 장로의 설교에서부터 다양한 천국과 지옥과 악마 이야기들은 종교소설로서의 면모를 확고하게 보여 준다. 게다가 소설 속에는 소설 텍스트와는 분리되는 독립적인 작은 텍스트들, 일종의 ‘끼워진 이야기들’도 무수하게 많다. 성자전도 들어가 있고, 소논문도 들어가 있고, 민담도 들어가 있고, 등장인물이 지어낸 서사시도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장르와 ‘끼워진 이야기들’이 다 합쳐져서 궁극적으로 하나의 장르로 굳어질 때 만들어지는 것은 ‘휴머니즘 소설’이다. 이 방대하고 복잡한 소설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휴머니즘’보다 더 정확한 단어는 없을 것 같다. 소설 속에 포함된 모든 소재와 모든 장르가 결국 한목소리로 확언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이기 때문이다. (2024년 6월 6일 페북 그룹 방 '러시아 문학 읽기'에 올린 글)


<(V) 연결의 원칙과 주제와 변주>에서 계속


[옮긴이 註]

1) 휴머니즘(人文主義) 또는 인본주의(人本主義)는 존재론적 존재로서, 철학 사유 체계의 근원으로서 인간의 존재를 중요시하고 인간의 능력과 성품 그리고 지금의 소망과 행복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정신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 따른 인류 사회의 존엄, 가치를 중시한다. 신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신본주의,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 및 기타 샤머니즘, 피상적으로 관찰된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자연 환원주의에 반대한다. 인본주의에 근간한 정치사상이자 사회사상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주의, 휴머니즘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인문주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을 인문주의자, 인본주의자, 휴머니스트 등으로 불린다. (위키백과)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에는 인간 존재의 본질, 신의 존재, 선과 악, 자유와 책임 등 심오한 철학적 주제들이 곳곳에 묘사돼 있다. 이 소설에 녹아 있는 휴머니즘(humanism)은 단순한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인간의 고통, 도덕적 선택, 자유의지, 그리고 인간애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존재론적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휴머니즘의 핵심 요소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1.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다. 특히 알료샤가 보여 주는 사랑과 연민은 도스토옙스키식 휴머니즘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죄와 타락을 모두 끌어안고자 하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을 지향한다고 믿는다. 소설 속에서 알료샤는 세속의 혼란과 인간의 죄악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한편 이반은 어린아이의 고통을 예로 들며, 신이 있다면 어째서 무고한 고통을 허용하는가, 라고 묻는다. 이는 도스토옙스키가 고통을 인간 이해의 핵심 고리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알료샤-Speech at the stone

2. 자유와 도덕적 책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다룬다. 그는 자유에는 필연적으로 책임이 따르며, 인간은 도덕적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

대심문관 장면: 이반이 쓴 이야기 속에서, 예수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대심문관은 인간은 자유를 감당할 수 없기에 교회가 그 자유를 대신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 존엄성과 자유의 문제를 중심으로 휴머니즘을 성찰하게 하는 장면이다.
Ivan Karamazov

3. 신앙과 사랑의 실천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구원의 가능성을 신앙과 사랑에서 찾고 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인 신앙이 아니라, 타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려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조시마 장로: 그는 인간 내면의 선함을 믿으며, “모두에게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라”는 가르침을 통해 인간 상호 간의 책임과 사랑을 강조한다.

4. 죄와 구원에 대한 인간 중심적 성찰

표도르와 드미트리, 스메르쟈코프 등 죄를 지은 인물들 역시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각자의 내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들을 정죄하기보다 이해하려 하며,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단순한 휴머니즘을 넘어, 고통과 죄, 자유와 신앙을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이를 탐구하는 철학을 작품 속에 담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을 이해하려는 진지하고도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 “절망 속에서도 인간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심판하지 말라-Illustration by Fritz Eich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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