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

저자 도스토옙스키의 한 마디: 8월 과제도서

by 김양훈
첫 장 <저자로부터>의 한 마디,
“별난 사람이란 대부분은 특수하고도 고립적인 존재다. 그렇지 않은가?”
왜 내가, 독자가,
알료샤의 생애를 연구하는 데
시간을 허비해야 한단 말인가?

나의 주인공인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의 전기를 시작하며 나는 어떤 당혹감에 빠져 있다. 다름 아니라, 비록 내가 알렉세이 표도로비치를 나의 주인공이라 부르기는 하나, 그가 결코 위대한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예견하기 때문이다. 즉, 당신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가 대체 뭐가 그리 뛰어나기에 그를 자신의 주인공으로 택한 건가? 누구에게 무엇으로 유명하다는 건데? 왜 내가, 독자가, 그의 생애의 사실들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허비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질문들 말이다.

마지막 질문이 가장 치명적인데, 왜냐하면 그에 대해서는 그저 “아마도 소설을 읽다 보면 직접 보게 될 겁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음, 그런데 만약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그걸 알아보지 못한다면? 나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가 지닌 주목할 만한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안타깝게도 그게 벌써 훤히 내다보여서다. 내가 보기에 그는 주목할 만한 인물이지만, 독자에게 이를 증명할 수 있을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문제는 이 인물이 활동가라고는 해도, 모호하고 분명찮은 활동가라는 데 있다. 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에게 분명함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는 충분히 확실하다 하겠는데, 그건 그가 이상한 사람, 심지어 별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고 별나다는 것은 주목받을 권리를 주기보다 오히려 해를 끼치게 마련이며, 특히 모두가 부분들을 통합하여 그 총체적인 혼돈 속에서 어떤 보편적인 의미라도 찾아내려고 애쓸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별난 사람이란 대부분은 특수하고도 고립적인 존재다. 그렇지 않은가?

알료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이 마지막 명제에 동의하지 않고 “그렇지 않다”라든가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아마 나의 주인공 알렉세이 표도로비치의 의미와 관련해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별난 사람이 ‘언제나’ 특수하고 고립적인 존재인 것은 ‘아닐뿐더러, 오히려 바로 그런 사람이야말로 때로는 자기 내면에 전체의 핵심을 품고 있기도 하지만, 그의 시대의 나머지 사람들은 몰아치는 어떤 거센 바람에 휩쓸려 모두 무엇 때문인지 잠시 그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옮긴이 註]

1.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알료샤, 20세)는 표도르의 셋째 아들로 소피아 소생의 차남이며 드미트리의 이복동생이자 이반의 동복동생이다. 그는 수도원의 조시마 장로를 사사하고 있는 수도자이며 박애주의자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첫 장 <저자로부터>에서 소설 속의 진짜 주인공은 알료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작게 보면 알료샤의 성장 스토리다. 조시마 장로가 선종한 후 수도자의 길을 그만두고 환속하여 이야기의 주체가 된다. 둘째 형 이반 카라마조프와 대치되는, 죄와 벌의 소냐의 포지션을 갖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첫 장인 <저자로부터>는 이야기 전체에 대한 프롤로그(서문)의 역할을 한다. 이 짧은 장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서술 방식, 등장인물에 대한 태도, 그리고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다.

특히 "한 마디"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로 요약할 수 있다:

1. "주인공은 알료샤이다"

— 그러나 일반적인 주인공과는 다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의 중심인물로 알렉세이(알료샤) 카라마조프를 소개하면서, 그는 "비범한 인물이 아니며", 어쩌면 너무 평범해서 독자들이 주인공이라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다.

→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진정한 인간성과 영성, 즉 도덕적 중심축을 알료샤라는 인물에게 부여한다. 그는 선하고 순수한 인물, 즉 혼란한 세상 속에서 '선(善)'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2. 이야기를 쓰는 동기

— "나는 이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도스토옙스키는 "나는 오래전부터 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밝힌다. 그는 이 작품을 단순한 가족극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루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탐구로 접근하고 있다.

→ 즉, 신, 자유, 죄, 구원 같은 주제를 다루기 위한 서사적 장치로 ‘카라마조프가’를 택한 것이다.

3. "나는 이 알료샤를 사랑했다"

— 작가와 등장인물 사이의 감정

도스토옙스키는 알료샤를 단순히 '쓰인 인물'이 아니라, 자신이 깊이 사랑하고 공감하는 인물이라고 밝힌다. 그는 인간이 타락하고 부패한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 신과 사랑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를 알료샤를 통해 보여주려 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첫 장 <저자로부터>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야기의 중심은 알료샤다. 그는 비범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덧]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완결된 한 권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도스토옙스키가 계획한 더 큰 서사의 일부분이다. 그가 구상한 후속 이야기인 알료샤의 삶과 러시아 사회의 구원 서사는 그의 사망으로 인해 쓰이지 못해, 결과적으로 미완성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 원래 계획은 "장대한 시리즈"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단편적인 한 권의 소설로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이 작품을 두 권 이상, 혹은 시리즈로 이어지는 대작으로 구상했다. 출판 당시 제목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첫 번째 부분"이라고 소개되었으며, 도스토옙스키는 후속편에서 알료샤의 삶, 영적 성장, 그리고 사회 참여를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었다.

즉, 지금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첫 번째 권"이자 서사의 절반에 불과한 작품이었다.

2. 알료샤의 이후 삶을 중심으로 한 속편이 계획되어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알료샤를 단순히 수도사의 조연으로 끝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알료샤가 수도원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적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이 속편은 제목이 『위대한 죄인』(Великий грешник, The Great Sinner) 이 될 예정이었고, 주제는 구원, 속죄, 러시아 사회의 도덕적 부흥이 중심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1881년 59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이 속편은 완성되지 못했다.

3. 작가의 죽음으로 인한 중단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집필을 끝낸 지 불과 몇 달 후인 1881년 1월에 사망했다. 그는 작품의 연작 계획에 대한 메모와 아이디어는 남겼지만,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작품은 의도된 전체 구조와 메시지를 모두 담지 못한 채 미완으로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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