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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희곡 〈갈매기〉

한국문학에 드리운 체호프의 그림자

by 김양훈

무엇보다 〈갈매기〉는 사건보다는 인물의 심리와 정서를 중심에 둠으로써 ‘심리 서사’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한국 근대문학이 초기 사실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점차 인물의 내면을 섬세히 탐구하게 된 것은 이러한 체호프적 기법과의 접촉 덕분이었습니다. 염상섭이나 현진건의 단편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공허한 독백, 불안한 의식의 흐름은 〈갈매기〉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내면적 고뇌와 닮아 있습니다. 체호프가 무대 위에서 인간을 ‘고통받는 존재’로 그렸듯, 한국 작가들도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갈매기〉의 중심 정조인 ‘좌절’은 한국문학의 근본적 주제와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트레플레프가 새 예술을 꿈꾸지만 끝내 실패하는 모습, 니나는 사랑과 예술을 좇다 파멸하는 서사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무너져가는 청년 지식인의 형상과 겹쳐집니다. 식민지 시기의 이태준이나 채만식 소설 속 인물들—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체념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체호프적 세계관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체호프가 말한 "인생은 불가능과 패배의 연속"이라는 인식은, 식민지와 전쟁, 분단이라는 격동 속에서 무기력과 허무를 체험한 한국 문학청년들의 정조와 절묘하게 겹쳐진 것입니다.

체호프가 보여준 희극성과 비극성의 모호한 경계 역시 한국문학에 잔향을 남겼습니다. 〈갈매기〉는 희극으로 분류되지만, 그 웃음은 쓰라린 뒷맛을 남기는 비극으로 변주됩니다. 이러한 희비극적 세계관은 채만식의 풍자적 소설이나 김동인의 아이러니 속에서도 재현됩니다. 우스꽝스러운 장면 속에서 문득 드러나는 삶의 비극성은 체호프가 제시한 미학을 한국적 현실이 변주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연극 무대 차원에서도 〈갈매기〉는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1920~30년대 신극 운동 시기부터 1960년대 민중극 운동에 이르기까지 체호프의 희곡은 꾸준히 번역·상연되었습니다. 그의 ‘일상의 언어’와 ‘조용한 드라마’는 한국 연극인들에게 새로운 미학적 감각을 제공했고, 이는 차범석이나 오태석 같은 극작가들의 작품 속 서정적 대화극 전통에 녹아들었습니다. 결국 체호프의 무대는 한국 연극이 단순한 교훈이나 서사 전달을 넘어, 인간 내면의 미묘한 떨림을 포착하는 장르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The Seagull 2001 directed by Oleg Efremov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세대와 예술의 갈등입니다. 〈갈매기〉에서 트레플레프와 아르카디나가 보여주는 ‘새로운 예술 vs. 구세대 예술’의 대립은, 한국문학의 문단사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 주제였습니다. 식민지 시기 ‘신경향파’와 ‘구세대 문인’의 충돌, 해방 이후 ‘순수문학 vs. 참여문학’ 논쟁은 체호프가 제기한 예술적 긴장 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예술이 시대와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가, 예술가는 사회와 어떤 거리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체호프 이후 한국 문학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했습니다.

요컨대 〈갈매기〉가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단순한 모방이나 직수입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내면 심리의 탐구, 좌절과 허무의 정조, 희비극적 미학, 예술관의 세대 갈등이라는 형식과 주제의 층위에서 한국문학의 흐름과 깊이 교차했습니다. 체호프의 세계가 보여준 ‘조용한 비극’은 한국적 현실 속에서 또 다른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는 한국문학의 그늘진 주제들 속에서, 여전히 〈갈매기〉의 날갯짓을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체호프의 <갈매기>와 스타니슬랍스키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1896)는 초연 당시 관객에게 냉담한 반응을 얻으며 실패한 작품이었다. 겉보기에 사건은 미약하고 대사 역시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898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을 창립한 스타니슬랍스키가 이 작품을 새롭게 연출하면서, <갈매기>는 근대 연극사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만남은 한 편의 작품이 부활한 사건일 뿐 아니라, 현대 연극의 사실주의가 확립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체호프의 대사가 지닌 일상성과 단조로움 속에서 인물들의 내적 욕망과 심리적 긴장을 발견했다. 그는 배우들에게 겉으로 드러난 대사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숨은 텍스트(subtext)’를 탐구하게 했다. 이를 통해 무대 위에서 인물들은 단순한 말과 행동을 넘어서 복잡한 인간 심리를 체현하게 되었고, 관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실적 리얼리티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은 더욱 정교하게 발전했고, 이는 훗날 미국의 메소드 연기와 전 세계 현대 연극의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긴장으로 점철되어 있기도 했다. 체호프는 자신의 희곡을 아이러니와 코미디의 성격으로 이해했지만,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를 지나치게 비극적이고 무겁게 연출했다. <갈매기>의 마지막 장면, 트레플레프의 자살은 체호프에게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장치였으나,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적 절정으로 처리했다. 이 차이는 체호프의 희곡이 지닌 다성적 해석 가능성과 스타니슬랍스키의 사실주의적 시각이 교차하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매기>와 스타니슬랍스키의 만남은 근대 연극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었다. 체호프의 희곡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을 통해 비로소 세계 문학사에 자리매김했고, 스타니슬랍스키는 <갈매기>를 통해 자신의 연기론을 체계화할 수 있었다. 요컨대 이 작품과 연출가는 서로를 통해 완성되었으며, 그 결과 현대 연극은 인간의 내면과 일상적 진실을 탐구하는 새로운 예술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상의 소설 <날개>의 유명한 첫 문장,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라는 이 구절! 이상이 체호프의 <갈매기>를 읽고 감명을 받아 쓴 문장임을 그 스스로 밝혔다.
체호프의 <갈매기>와 이상의 <날개>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1896)는 예술적 열망과 현실의 충돌, 사랑과 인정의 좌절, 그리고 세대 갈등을 그린 러시아 사실주의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 관객에게 외면받았으나, 이후 현대 연극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 근대문학의 기수라 할 수 있는 이상(李箱)의 소설 <날개>(1936) 역시, 체호프의 희곡에서 드러나는 예술가적 자아의 비극적 운명과 맞닿아 있다. <갈매기>가 보여준 예술과 삶의 불화는 한국 근대문학에 수용되면서, <날개> 속 ‘나’라는 주체의 고립과 소외를 형상화하는 데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갈매기>에서 트레플레프는 기성의 연극 형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예술을 모색하지만, 현실은 그의 실험을 무시한다. 그는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이자, 사랑에서도 버림받은 비극적 인물이다. <날개> 속 화자 ‘나’ 또한 자유로운 비상을 갈망하지만, 그는 방 안에 갇혀 무력한 자아로 존재할 뿐이다. “날개가 돋아나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철저히 고립된 상황만을 허락한다. 두 작품 모두 예술적 이상과 현실적 무력감의 대비를 통해, 근대적 주체가 겪는 절망을 드러낸다. 이상의 작품은 체호프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한국적 상황 속에서 재맥락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갈매기>의 니나는 자유롭고 순수한 예술적 열망을 지닌 인물이지만, 결국 현실의 파도 속에서 상처받고 추락한다. 그러나 니나는 끝내 연극을 향한 열정을 버리지 않고, 상처받은 상태로 돌아와 다시 연기를 꿈꾼다. 이는 <날개> 속 ‘나’가 끝내 방구석에서 무너져내리면서도, 동시에 허공을 향해 날아오르고자 하는 양가적 열망과도 맞닿아 있다. 두 인물 모두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예술적 욕망의 화신이다. 체호프가 갈매기의 추락을 통해 ‘무너진 꿈 속에서도 예술은 잔존한다’는 역설을 보여주었다면, 이상은 날개의 불가능한 비상을 통해 ‘현실을 돌파하지 못한 예술가의 내적 갈망’을 드러낸 것이다.

세대적 맥락에서도 두 작품은 연결된다. 트레플레프와 아르카디나의 대립은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예술관 충돌을 보여준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이상이 속한 세대 역시 식민지 상황 속에서 전통적 가치와 근대적 욕망이 충돌하는 경계에 있었다. 트레플레프가 실패한 혁신가라면, <날개>의 ‘나’ 또한 근대적 주체로서 사회적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인물이다. 이처럼 두 작품은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근대라는 조건 속에서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지 못하는 비극을 공명시킨다.

결국 체호프의 <갈매기>는 이상의 <날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예술적 이상과 현실의 불화, 예술가적 주체의 좌절이라는 근대 문학의 보편적 주제를 한국적 맥락 속에 변주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이상의 <날개>는 체호프가 던진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한국 근대인의 고립된 자아와 불가능한 비상을 형상화한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태어났지만, 모두가 무너짐 속에서 예술을 꿈꾸는 인간의 역설적 조건을 선명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깊은 친연성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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