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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와 스타니슬랍스키

― 내적 진실로 살아나는 일상의 비극

by 김양훈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는 1896년 초연 당시에는 차갑게 외면당했지만,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을 통해 재탄생하며 러시아 연극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체호프가 쓴 인물들은 전통적 의미의 극적 사건이나 화려한 갈등 구조보다는, 미묘한 감정과 삶의 무력감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갈등은 폭발하지 않고, 속으로 스며들어 파문처럼 번져간다. 따라서 이 작품을 무대 위에서 진실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내면을 실제로 체험하며 무대 위에서 ‘살아내는’ 새로운 연기 방식이 필요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은 체호프의 예술과 만나 하나의 사실주의 혁명을 일으켰다.

The Seagull 1960 directed by Viktor Stanitsyn and Joseph Raevsky

『갈매기』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젊은 극작가 트레플레프는 자신만의 새로운 예술을 꿈꾸며 모스크바 예술계를 비판하지만, 어머니 아르카디나와 그녀의 애인인 성공한 소설가 트리고린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트레플레프가 사랑하는 니나는 배우를 지망하지만, 결국 트리고린과 엮이며 좌절을 겪는다. 작품 말미에서 트레플레프는 절망 속에서 자살한다. 표면적으로 사건은 이렇게 요약되지만, 체호프가 그리고자 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 사건 속에서 각 인물이 겪는 희망과 좌절, 욕망과 무력감의 일상적 리듬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작품의 연출에서 배우들에게 “대사를 외치지 말고, 생활하듯이 말하라”라고 요구했다. 그의 ‘마법의 만약(Magic If)’ 훈련은 배우가 단순히 트레플레프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그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새로운 연출로 『갈매기』는 과장된 비극이 아니라, 관객의 삶과 닮아 있는 진실한 인간 드라마로 다가왔다.

특히 『갈매기』는 “주어진 상황(Given Circumstances)”을 섬세하게 분석해야만 설득력을 얻는다. 아르카디나는 화려한 배우로서의 삶을 즐기지만, 가족 관계에서는 냉정하고 자기중심적이다. 트레플레프는 새로운 연극 양식을 창조하려 하지만 사회와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니나는 꿈과 열정을 가졌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한다. 이런 인물들의 상황을 배우가 체화하지 않으면, 그들의 대사는 공허한 수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들에게 인물의 목표(Objective)를 세밀하게 탐구하게 하면서, 각 장면이 단순한 대화가 아닌 인생의 투쟁이 되도록 지도했다.

The Seagull 2001 directed by Oleg Efremov

체호프가 의도한 ‘사건 없는 드라마’라는 아이러니는 바로 이런 연기를 통해 완성된다. 트레플레프와 니나의 사랑 이야기는 흔한 삼각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예술과 삶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담겨 있다. 배우가 이를 억지로 드러내려 한다면 관객은 감정 과잉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스타니슬랍스키가 강조한 ‘행동 중심 연기’는 다르다. 트레플레프가 원고를 찢거나, 니나가 무대에서 갈매기를 상징적으로 등장시키는 순간 같은 구체적 행위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감정은 자연스레 따라 나온다. 이렇게 해서 『갈매기』는 관객에게 인물의 고통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함께 경험하게 하는’ 작품으로 변모한다.

무엇보다 『갈매기』의 공연은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이 추구하는 ‘무대 위에서 진실하게 살라’는 원칙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초기 공연에서 관객은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대사’가 아니라 ‘삶의 한 장면’으로 느꼈다. 특히 니나 역을 맡은 배우가 마지막에 “나는 진짜 배우야”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배우 자신의 고백처럼 관객에게 다가왔다. 이는 정서 기억(Emotional Memory) 기법을 통해 배우가 실제 경험과 감정을 배역에 이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갈매기』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덕분에 체호프가 꿈꾼 새로운 연극 언어를 구현할 수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관객을 단순히 감동시키려는 과장된 무대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작은 떨림과 미묘한 진실을 드러내는 사실주의 연극이었다. 체호프의 희곡은 이 시스템을 통해 살아 움직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와 삶의 경계가 허물어진 듯한 체험을 하게 했다.

결국 『갈매기』에서의 성취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과 체호프 희곡이 서로에게 얼마나 필연적인 동반자였는지를 증명한다. 체호프의 문학은 배우에게 진실한 체험을 요구했고,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 체계는 그 요구에 응답했다. 두 사람의 협업은 연극이 단순한 오락이나 장식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실존의 깊이를 탐구하는 예술임을 보여주었다. 오늘날에도 『갈매기』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으며, 그 근간에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이 놓여 있다. 배우가 내적 진실을 체험하며 무대 위에서 ‘살아낼’ 때, 체호프가 남긴 비극적 삶의 단면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관객과 만나게 된다.

The Seagull 2001 directed by Oleg Efrem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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