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론 브란도, 그리고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를 중심으로
헐리우드의 연기사(演技史)를 돌아볼 때, 20세기 중반 이후의 가장 뚜렷한 혁명은 ‘자연스러움’과 ‘진실성’을 무대와 스크린 위로 끌어올린 연기 방식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이 변화의 뿌리에는 러시아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가 창안한 시스템이 있었고, 그것이 미국으로 건너와 엘리아 카잔, 리 스트라스버그, 스텔라 애들러 등을 거치며 독자적으로 변용된 것이 곧 ‘메소드 연기’다. 이 과정은 단순한 기술의 전수라기보다, 연기에 대한 철학이 어떻게 문화적 토양과 시대정신에 맞추어 재해석되었는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말론 브란도는 이 지점에서 혁명의 아이콘이었다. 브란도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와 <워터프론트>(1954)에서 보여준 연기는 당시 할리우드의 정형화된 발성, 과장된 동작, 영웅적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마치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을 지워내고,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으로 살아내는 듯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강조했던 ‘내적 진실’, 즉 배우가 배역의 심리적 동기를 스스로 설득하고 그 감정을 현재의 순간에 실제로 경험해야 한다는 원리가 브란도의 몸짓과 목소리에서 구현되었다. 동시에 그는 뉴욕 액터스 스튜디오의 훈련을 통해 감정 기억(emotional memory)과 개인적 체험을 연기 속에 녹여내는 ‘메소드’적 기법을 흡수했다. 이로써 브란도는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을 넘어, 관객이 마치 그의 고통이나 분노를 함께 겪는 듯한 몰입을 가능케 했다.
브란도의 뒤를 이어 1970년대 헐리우드를 대표한 두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는 메소드 연기를 또 다른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파치노는 <대부> 시리즈에서 보여준 마이클 콜레오네를 통해 극적 긴장 속에서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정교하게 조율했다. 그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만약에(What if)’라는 질문을 메소드적 접근과 결합시켜, 한때 평범했던 인물이 어떻게 냉혹한 권력자로 변모하는지를 단계별로 설득력 있게 체화했다. 파치노의 연기에는 외적 폭발보다는 내적 균열이 중심에 있었고, 그것은 관객에게 더 깊은 긴장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반면 드 니로는 메소드 연기의 육체적·심리적 몰입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배우다. 그는 <택시 드라이버>(1976)에서 사회적 소외와 내면적 분노를 폭발시킨 트래비스 빅클을 창조했는데, 이는 단순히 대사를 외우는 차원을 넘어, 실제로 뉴욕의 택시를 몰며 캐릭터의 고립감을 체험하고, 체중을 극단적으로 조절하거나 새로운 신체 습관을 습득하는 등 자기 몸 전체를 배역에 헌신한 결과였다. 이러한 몰입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체험적 사실성’이 미국식 개성과 실험정신 속에서 변용된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드 니로의 연기는 관객에게 불편할 만큼 사실적이면서도, 스크린이라는 매체가 감당할 수 있는 진실성의 한계를 넓혔다.
이처럼 브란도, 파치노, 드 니로로 이어지는 계보는 단순한 배우 개인의 기교가 아니라, 연기를 통한 인간 탐구의 궤적이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지향한 것은 연극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었고, 메소드는 이를 미국적 맥락에서 현실의 도시, 사회적 긴장, 개인적 고립과 같은 주제와 결합시켰다. 그 결과 1950~70년대 헐리우드 영화는 고전적 영웅 서사에서 벗어나, 모순적이고 불완전한 현대인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었다. <대부>, <택시 드라이버>, <사슴 사냥꾼>과 같은 작품들이 바로 그러한 성과다.
그러나 동시에 메소드 연기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나친 내적 몰입은 배우를 소모시키거나, 작품 전체보다 배우 개인의 고통과 체험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위험을 내포한다. 드 니로의 극단적 변신이나, 일부 후배 배우들이 보이는 ‘캐릭터에 갇히는’ 현상은 그러한 폐단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란도에서 파치노와 드 니로로 이어진 흐름은 연기의 미학을 ‘꾸민 것’에서 ‘진실한 것’으로, 그리고 ‘보이는 것’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옮겨놓았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가 단순한 오락 산업을 넘어, 인간의 내면과 시대의 불안을 드러내는 예술적 장르로 성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많은 배우들이 메소드와 비(非)메소드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고 있지만, 여전히 브란도, 파치노, 드 니로의 계보는 헐리우드 연기의 주요한 기준으로 남아 있다. 그들이 체현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정신은 단순히 특정한 기법이 아니라, 배우가 무대와 스크린 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지금도 유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