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와 손창섭

한국의 체호프는 누구입니까, 묻는다면?

by 김양훈
단편소설에 있어서
한국의 체호프는 손창섭?

문학사에서 특정 작가를 “한국의 누구”라 지칭하는 일은 흔히 비교의 수사에 머물 수 있지만, 때때로 그 별칭은 문학적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담는다. 안톤 체호프는 단편소설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인물이다. 그는 극적인 사건이나 거창한 갈등보다 일상에 깃든 사소한 움직임, 인물의 미묘한 심리와 분위기의 움직임을 작품의 중심에 놓았다. “한국의 체호프”라는 별칭에 가장 근접한 소설가로 손창섭을 꼽을 수 있는 까닭은, 그의 작품 세계가 체호프가 개척한 단편 문학의 정신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첫째, 손창섭의 작품은 사소한 일상의 미시적 포착에 집중한다. 한국전쟁 이후의 사회는 거대한 이념 대립과 정치적 폭력으로 점철되었지만, 손창섭은 그 시대에 발생한 극적인 사건보다는 전후를 살아가는 개인의 무력한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 대표작 「비 오는 날」은 전쟁 직후 피폐한 환경 속에서 특별한 영웅적 행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물의 모습들담았다. 등장인물들은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흐릿한 회색빛 정서 속에 갇혀 있다. 이는 체호프의 「우수」나 「구스베리」 속 인물들이 느끼는 막연한 권태와 절묘하게 공명한다. 체호프가 대도시 변두리의 의사, 하급 관리, 소작농 같은 보통 사람들을 통해 러시아 사회의 전모를 드러냈듯, 손창섭 역시 ‘평범하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파편화된 일상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안을 응축해 냈다.

둘째, 두 작가가 근본적으로 가까운 점은 허무와 부조리에 대한 인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체호프의 인물들은 삶의 궁극적 의미를 붙잡으려 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남는 것은 희망 없는 무력감이다. 손창섭의 단편 또한 전후 사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는 공허와 패배감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잉여인간」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이며, 그는 자신의 삶을 주도할 힘조차 갖지 못한 채 허무 속에 가라앉는다. 이는 체호프가 그린 수많은 ‘작은 인간들’과 동일한 운명이다. 두 작가는 인물들의 비극을 과장된 서사로 포장하지 않고, 그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절망감과 울림을 갖게 한다.

셋째, 체호프와 손창섭의 문학적 공명은 문체와 구성의 절제에서도 드러난다. 체호프가 단문과 일상적 대화, 열린 결말을 통해 독자가 작품의 의미를 스스로 채우게 했듯, 손창섭 또한 군더더기 없는 서술과 생략의 미학을 중시했다. 그의 문장은 건조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깊고 무겁다. 「비 오는 날」의 결말은 명확한 해결이나 교훈을 제시하지 않지만, 바로 그 모호함 속에서 독자는 전후 한국 사회의 공허와 잔혹한 현실을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열린 구조는 체호프가 남긴 단편소설의 혁신적 미학과 직결된다.

넷째, 체호프와 손창섭은 모두 사회적 문제의식을 일상의 삶 속에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제기했다. 체호프는 러시아 제국 말기의 사회 부조리를 대놓고 고발하지 않고, 개인의 작은 삶을 통해 구조적 모순을 드러냈다. 손창섭 역시 전쟁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을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한 개인의 지리멸렬한 삶의 풍경 속에서 그 시대의 불안을 형상화했다. 이로써 그들은 “사회 참여적 리얼리즘”과 “내면적 사실주의” 사이의 독특한 접점을 만들어냈다.

물론 손창섭을 체호프와 완전히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체호프가 근대 러시아 지식인의 회의와 도덕적 갈등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면, 손창섭은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허무를 조명했다. 하지만 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가 공유하는 것은 “작은 인간들의 삶에서 보편적 진실을 길어 올리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체호프가 말했듯, “예술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손창섭 또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에게 질문을 남기며, 우리로 하여금 인간 존재와 시대의 모순을 되묻게 한다.

결국 “한국의 체호프”라는 명명은 수사가 아니라 비평적 규정으로서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손창섭은 체호프처럼 삶의 사소한 풍경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탐구했고, 허무와 부조리를 담담히 응시하며, 절제된 문체와 열린 결말로 독자에게 여운을 남겼다. 그의 작품 세계는 한국 단편소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동시에, 문학이 어떻게 시대의 상처와 인간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 단편소설의 계보 속에서 손창섭을 체호프에 견주는 일은 과장이 아니라 올바른 평가일 수 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체호프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역사와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작은 인간들’의 삶을 응시하게 만든다. 손창섭을 한국의 체호프라 부른다면, 그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한국 문단의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손창섭
손창섭은 서기원·장용학·김성한·오상원·이범선 등과 함께 6·25전쟁 이후 1950년대 한국문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소설가였다. 1952년 ‘문예’지에 소설 ‘공휴일’을 발표하면서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 손창섭은 참혹한 전쟁을 겪은 현대인의 절망스럽고 허무하고 불안한 의식세계를 리얼하게 파헤쳐 주목을 끌었다. 55년 ‘혈서’로 ‘현대문학’ 신인상을, 59년 ‘잉여인간’으로 제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손창섭은 50년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 문단에 확고한 자리를 구축해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나온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하고 해방 후 돌아와 소설을 쓰고 있다’는 정도였다.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는 등 성격이 괴팍하고 폐쇄적이어서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 데다 아무에게도 자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식도 없이 일본인 부인과 함께 산다는 것도 훨씬 후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손창섭 자신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단편적으로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의 지나온 삶의 모습들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61년 ‘신의 희작(戱作)’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신이 만들어낸 우스꽝스러운 작품’이라는 뜻인데 바로 손창섭 자신을 의미한다. ‘자화상’이라는 부제가 곁들여져 있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그의 ‘자전적 소설’이었다. 서두에서 주인공 S는 ‘삼류작가 손창섭씨’라 밝히고 있다.
‘S가 겨우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커다란 충격을 체험하게 된 것은, 어머니가 모르는 남자와 동침하는 현장을 발견했을 때였다. 열세 살이었다.’
작가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할머니·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던 S는 어머니가 그 남자와 함께 자취를 감춰버리자 소학교를 졸업한 뒤 혼자 만주로 가서 1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열다섯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에 입학한다.
S는 신문 배달, 우유 배달로 힘겹게 고학하지만 반항적인 기질과 저항의식이 몸에 밴 탓에 사사건건 충돌하고 말썽을 부려 중학교를 네 곳이나 옮겨 다닌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니혼대학에 입학한 S는 중학교 시절의 친구 여동생인 지즈코와 관계를 갖게 되고 마침내 동거에 들어간다.
해방되던 무렵 지즈코는 한 아들의 엄마가 돼 있었고,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도저히 식솔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S는 훗날을 기약하고 혼자 귀국한다.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날품팔이, 노숙자, 부랑자로 밑바닥 삶을 살던 S는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피란민 대열에 휩쓸려 부산까지 왔다가 어느 비 오는 날, 거리에서 지즈코와 극적으로 해후한다. 지즈코는 S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두 아이를 친정에 맡긴 채 한국에 왔다가 사기만 당하고 식모살이, 여공 등으로 전전하면서 기약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서울에서 살림을 시작한 부부에게 세 번째 아이가 들어서면서 남편의 강요로 아이를 지운 지즈코가 ‘당신은 가엾은 사람이에요, 가엾은 사람’이라며 애처롭게 우는 데서 마무리된다.
몇몇 신문에 연재소설도 집필하는 등 전업작가로서 손창섭의 60년대까지의 삶은 비교적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서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안양에서 파인애플 농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72년의 어느 날 손창섭은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아내와 함께 홀연히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다. 왜 갑자기 조국을 등져야 했는지 그 까닭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모국어와 문학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유독 그의 소설을 좋아했던 한국일보 장기영 사주의 간곡한 요청을 뿌리치지 못해 76년에는 ‘유맹’을, 78년에는 ‘봉술랑’을 연재하기도 했지만 크게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그것이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래도 한국과 문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미련은 남아 있었던지 그는 꽤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이름도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涉)로 바꾸었다. 지난 2월 한 신문은 87세의 손창섭이 도쿄에 살고 있으며 치매를 앓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08615 (중앙선데이 2009.8. 2 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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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 후 이름은 일본인 아내의 성을 따서 지은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涉)이며, 2010년 6월 23일 도쿄 인근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88세.

소설가 손창섭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1950년대의 사회적 혼란과 전쟁 이후의 황폐한 정신세계를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였으며, 전후 문학의 암울한 시대정신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손창섭의 작품은 대체로 소시민적 인물, 사회적 주변부의 인물, 혹은 ‘잉여’로 규정되는 자들의 내면에 깊숙이 천착한다. 특히 그는 인간 존재를 비극적 상황 속에 내던져진 존재로 바라보며, 그들의 불안, 소외, 무력감을 독특한 문체와 시선으로 포착한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비 오는 날」과 장편소설 《잉여인간》은 그의 문학적 세계관과 시대 인식이 가장 선명히 드러나는 텍스트이다.

우선 「비 오는 날」은 전쟁 직후의 피폐한 삶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비가 내리는 날이라는 공간적·기후적 배경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전후 한국 사회의 우울과 절망을 상징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절대적 빈곤과 도덕적 붕괴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가족조차 생존의 논리 앞에서 무너진다. 손창섭은 이 이야기에서 인간의 선악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비 오는 날이라는 자연 현상 속에서, 인간의 무기력함과 원초적 욕망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은 전쟁 이후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근원적 불행을 날카롭게 응시하며,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존엄과 연대가 어떻게 쉽게 붕괴되는지를 목격하게 한다.

장편소설 《잉여인간》은 손창섭의 문학적 주제의식을 집대성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제목 자체가 가리키듯, 이 소설은 사회적·경제적 구조 속에서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개인의 초상을 그린다. 주인공은 생존 자체가 곤란한 현실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잉여’로 남는다. 그는 노동과 생산에서 배제되고, 가족과 사회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개인의 실패담이 아니라, 전쟁 이후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결핍과 병리적 상황을 반영한다. 손창섭은 주인공의 무력감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 그리고 체제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드러낸다. 나아가 주인공의 좌절과 고독은 독자로 하여금 전후 사회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배제되고 소외되는지를 체감하게 한다.

「비 오는 날」과 《잉여인간》은 서로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실존적 무력감’과 ‘사회적 소외’라는 공통된 주제를 공유한다. 손창섭은 특히 인간이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결국 타인의 불행 위에서 생존을 영위하는 상황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차갑고, 극적인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적 갈등과 황폐한 정서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이는 당시 다른 작가들이 보여주던 낭만적 서정성이나 민족주의적 열정과는 대조적인데, 그만큼 손창섭은 냉혹하게 시대를 바라본 리얼리스트였다.

또한 손창섭의 문학은 체호프적 단편 서사의 전통과도 연결된다. 체호프가 일상의 사소한 사건 속에서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공허를 드러냈듯, 손창섭 또한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의 근원적 불안을 포착한다. 그러나 그의 서사는 러시아 사실주의의 잔향을 지니면서도, 한국 전쟁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더 극단적이고 황폐한 인간 군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 손창섭은 전후 세대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한 작가로서 위치한다. 그는 국가 재건이나 민족의식 고양 같은 집단적 담론보다, 개인의 무력감과 좌절에 집중했다. 이는 일견 비관적이고 암울해 보일 수 있으나, 바로 그 지점에서 손창섭 문학은 존재론적 성찰의 깊이를 획득한다. 「비 오는 날」의 음습한 풍경과 《잉여인간》의 절망적 자화상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성찰하게 한다.

결국 손창섭은 인간 존재가 사회적·역사적 조건 속에서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가였다. 그의 인물들은 불행하고 무력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 나약함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다. 「비 오는 날」과 《잉여인간》은 한국 현대문학이 단순한 민족주의적 서사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질문을 제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바로 이 점에서 손창섭은 20세기 한국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극적 리얼리스트이자,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본질적 불안을 증언한 문학적 증인이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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