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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헌법 제1조 위원회의 부활

제인 폰다의 활동을 중심으로

by 김양훈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First Amendment to the United States Constitution)
의회는 종교의 설립을 존중하거나 그 자유로운 실행을 금지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으며, 언론·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적으로 집회하고 정부에 대해 불만을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

할리우드의 역사는 미국 정치와 긴밀히 얽혀 있다. 1940~50년대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그 시절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수많은 배우와 감독들이 ‘불온한 사상자’이라는 낙인에 찍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때 험프리 보가트, 로런 바콜, 진 켈리와 같은 스타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가 바로 수정헌법 제1조 위원회(Committee for the First Amendment)였다. 그들의 목적은 정부가 ‘사상 검열’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이 보장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막자는 것. 이는 당시 할리우드가 정치적 두려움 속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위해 몸부림쳤던 상징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70여 년이 지난 지금,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한 장면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정치적 후원자들이 만들어낸 ‘트럼피즘(Trumpism)’이 배경이다. 자신들을 비판하는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 부르고, SNS 플랫폼을 통제하려 하며, 비판적 목소리를 ‘가짜뉴스’로 몰아붙이는 전략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언론 자유를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침묵할 때
권력은 더욱 오만해진다.

트럼피즘이 미국 사회를 불안에 떨게 하는 오늘날, 사회운동가로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87세 원로 배우 제인 폰다(Jane Fonda)가 트럼피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녀는 과거 반전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에서처럼 이번에도 선두에 섰다. 폰다는 “우리가 침묵할 때 권력은 더욱 오만해진다. 표현의 자유를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라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과거 험프리 보가트가 매카시즘 청문회를 비판하며 남긴 연설과도 묘하게 겹쳐진다.

최근 새롭게 부활한 ‘수정헌법 제1조 위원회’는 단순한 추억의 재판이 아니다. 그때와는 달리 디지털 시대라는 새로운 전장(戰場)을 마주하고 있는 위원회는 첫 선언문에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21세기의 공론장”이라 규정하며, “정부 권력이나 거대 자본이 이를 독점하거나 침묵시키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천명했다. 또한 위원회는 △언론 탄압 감시 보고서 정기 발간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는 기자·언론인 지원 △시민 사회와 연계한 표현의 자유 캠페인 △젊은 세대를 위한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등을 활동계획으로 내걸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번 위원회가 기성세대의 스타 배우들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의 아티스트와 디지털 크리에이터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인 폰다와 함께 이 운동에 참여한 배우들은 머릴 스트립, 마크 러팔로, 케리 워싱턴, 그리고 힙합 아티스트 커먼과 같은 인물들이다. 그야말로 ‘할리우드 리버럴 연대’가 트럼피즘의 위협에 맞서 다시 뭉친 것이다.

제인 폰다는 젊은 시절부터 전쟁 반대, 사회정의, 여성의 권리, 환경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소리를 높여 왔다. 배우는 단지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며, 대중문화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란 것이 제인 폰다의 생각이다. 그녀의 주도적인 참여는 이 새로운 위원회에 무게를 실어 주었고, 젊은 세대에게는 과거의 투쟁이 현재와 이어진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이번 수정헌법 제1조 위원회의 부활 선언은 할리우드가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버팀목으로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인 폰다라는 살아 있는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녀의 발언은 단지 추억 어린 과거 회고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의 사이렌이다.


트럼피즘과 매카시즘

미국 현대정치사에서 ‘매카시즘’과 ‘트럼피즘’은 서로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대중의 불안과 분노를 동원하는 방식에서는 닮아 있다. 매카시즘은 1950년대 초반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주도한 반공주의 선동 정치로, 미국 사회에 광범위한 ‘빨갱이 사냥’을 불러왔다. 이는 냉전의 긴장 속에서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내부의 반대세력을 ‘국가의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전략이었다. 공포는 곧 권력이 되었고, 매카시는 이를 이용해 언론, 학계, 예술계까지 위축시켰다.

반면 트럼피즘은 냉전이 끝난 뒤 미국 사회가 겪은 세계화와 불평등, 다문화주의의 도전에 대한 반발 속에서 등장했다. 트럼프는 ‘America First’를 외치며, 불법 이민자·중국·기성 정치인·주류 언론을 적으로 규정했다. 매카시즘이 이념과 사상의 적(공산주의자)을 사냥했다면, 트럼피즘은 정체성의 적(이민자, 진보 세력, 엘리트 언론)을 겨냥한다. 공포의 대상은 변했지만, 내부의 불안을 외부의 적으로 투사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차이점도 뚜렷하다. 매카시즘은 의회 권력과 냉전 체제를 발판으로 삼아 제도권 안에서 작동한 반면, 트럼피즘은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성격을 띤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건은 그 대표적 사례다. 또한 매카시즘은 반공이라는 국가적 이념과 결합했지만, 트럼피즘은 트럼프라는 개인적 카리스마와 대중적 열광에 더 의존한다.

그럼에도 두 현상은 미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두려움과 증오의 정치에 휘둘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매카시즘이 민주적 절차 속에서도 자유를 억압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면, 트럼피즘은 민주주의 제도를 스스로 붕괴시킬 위험성을 경고한다. 결국 두 사례는 민주주의가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으며, 시민의 비판적 사고와 사회적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매카시 시대는 미국인들이 정치적 차이를 극복하고 힘을 합쳐 억압 세력에 맞서 헌법의 원칙을 수호했을 때 끝장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세력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헌법상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일어설 차례예요.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신념에 관계없이 모든 미국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말입니다. 권력자들을 비판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항의하고, 심지어 조롱할 수 있는 능력은 미국이 항상 지향해 온 모습의 근간입니다." - 제인 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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