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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로 느끼는 북악산 산행

추석 번개-조선의 등뼈를 걸으며 한양의 심장을 바라보다.

by 김양훈

북악산(北岳山)은 조선 건국의 풍수 설계도에서 ‘백악(白岳)’이라 불리며, 도성의 북쪽을 수호하는 주산(主山)의 자리를 차지한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 천도 시 “북악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면 왕권이 안정된다”는 풍수지리에 따라 경복궁을 북악의 품 안에 두었다. 산은 나라의 등뼈요, 궁궐은 조선의 심장이었다. 북악은 그 심장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영산(靈山)으로 작동하기를 바란 것이다.

백악의 기운은 백두대간에서 이어진 산맥이 삼각산(북한산)을 타고 내려와 머무는 곳에 자리한다. 풍수에서는 이를 ‘기혈이 응결한 자리’라 한다. 그 기운이 청정하여 불의 기운을 제압한다고 하였고, 그래서 경복궁 앞에는 해태상을 두어 화(火)를 막았다. 산행을 시작하는 창의문은 바로 그 기운이 도성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입구다. 풍수적으로 창의문은 “도성의 목구멍”이라 불리며, 기운이 드나드는 통로 역할을 한다.

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청운대 쉼터가 나온다. ‘청운(靑雲)’이란 높은 관직과 출세를 뜻한다. 이곳은 도성의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는 지점으로, 조선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전 이곳에서 기도를 드렸다고 전한다. 이어지는 백악마루는 풍수적으로 가장 높은 양(陽)의 자리다. 남쪽으로는 경복궁과 남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북한산의 음기(陰氣)가 멀리서 감싸며 균형을 이룬다. 이곳 백악마루는 곧 거대한 음양의 기운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양기는 음기를 껴안고 음기는 양기를 품어서 잠시 숨을 고를지어다.

정상부에서 숙정문(肅靖門) 방향으로 내려가면, 산의 기운이 서서히 흩어지며 완만해진다. 숙정문은 도성의 북문으로, 엄숙하고 고요한 에너지를 간직한 곳이다. 풍수에서는 ‘정기(正氣)가 모여 부정을 막는 문’이라 하여 평소에는 닫아두었다. 지금은 등산객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그 앞에 서면 문이 아니라 일종의 기문(氣門), 즉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경계처럼 느껴질 것이다.

북악산의 능선은 마치 용이 몸을 틀며 흐르는 형상이다. 창의문에서 출발해 백악마루를 넘어 삼청공원으로 내려가는 루트는, 풍수에서 말하는 ‘승룡(昇龍)의 길’이다. 올라갈 때는 산의 양기를 받으며 기운을 충전하고, 내려올 때는 그 기운을 도성 쪽으로 흘려보내는 흐름이다. 때문에 조선시대 문인이나 관료들이 이 코스를 자주 걸으며 사색했다고 한다.


정도전의 풍수적 국가 철학

조선의 건국은 단지 왕조 교체가 아니라, 세계를 새로 그리는 사유의 혁명이었다. 고려의 불교적 세계관을 지우고, 유교적 도덕과 질서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문명의 기초를 놓는 일이었다. 이 거대한 혁명의 선두에 섰던 정도전(鄭道傳)은 풍수지리를 정치철학으로 승화시킨 사상가이자 도시 설계자였다.

정도전이 북악에 부여한 의미는 왕권의 신성화가 아니라, 도덕의 제도화였다. 그는 군왕이 산의 기운을 등에 업는 것은 권력을 신격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의 법도를 지키겠다는 약속이라 보았다. 북악은 왕을 감싸는 보호막이 아니라, 군왕이라면 끊임없이 도덕군자로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북악을 ‘성군의 산’이라 부르지 않고, ‘성인의 산’이라 일컬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경복궁과 광화문, 그리고 한강이 한 줄로 이어진다. 그 선 위에 정도전의 철학이 살아 숨 쉰다. 정도전은 오늘도 북악을 빌어 묻고 있다. “왕은 산을 두려워하는가, 혹 산을 닮아가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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