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는 자유와 비상을 꿈꾸는 존재이며,
동시에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연약한 존재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에서 ‘갈매기’는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좌절, 그리고 예술과 삶의 비극적 운명을 표현하는 다중적인 상징이다. 작품 속에서 갈매기는 자유와 비상을 꿈꾸는 존재로서 등장하지만, 동시에 무자비하게 희생당하고 파괴되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체호프는 바로 이 이중성을 통해 예술가의 꿈과 현실,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작품 초반부에서 갈매기는 니나의 존재를 은유한다. 니나는 고루한 시골 생활의 답답함을 벗어나 배우가 되어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날아오르기를 꿈꾸는 처녀이다. 그녀가 바라는 세계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갈매기처럼 자유롭고 찬란하다. 그러나 동시에 갈매기는 인간의 손에 쉽게 사냥당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실제로 트레플료프가 갈매기를 사냥해 죽이고, 그 시체를 니나에게 건네는 장면은 니나의 운명을 미리 보여주는 장치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니나가 트레플료프를 찾아와 “난 갈매기예요. 아니, 그게 아니에요. 당신이 갈매기를 쏘아 죽인 거 기억해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녀의 내적 갈등과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니나는 처음에 자신을 갈매기와 동일시하며, 자신이 한때 자유롭게 날아올랐던 존재임을 회상한다. 그러나 곧바로 “아니, 그게 아니에요”라고 자신의 말을 수정한다. 이는 그녀가 더 이상 단순히 희생자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지 않음을, 다시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고통과 실패를 겪었지만, 여전히 배우로서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여기서 갈매기는 단순한 ‘죽임 당한 희생자’의 상징이 아니고, 좌절된 꿈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의지의 표상으로 읽힌다. 니나의 대사는 그녀가 한때 트레플료프와의 관계 속에서, 혹은 세상 속에서 상처받고 무너졌음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예술가인 배우로서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그녀는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단순히 ‘죽은 갈매기’가 아니라 상처 입고도 다시 날아오르려는 갱생의 존재로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난 갈매기예요. 아니, 그게 아니에요.
당신이 갈매기를 쏘아 죽인 거 기억해요?”
트레플료프에게 이 대사는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트레플료프는 구태를 버리고 혁신적인 예술을 추구했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니나마저 잃었다는 절망 속에서 자살에 이른다. 니나의 위 발언은 트레플료프의 좌절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이 쏘아 죽인 갈매기처럼, 결국 스스로의 생을 끊음으로써 예술과 삶에서 실패한 존재로 남는다. 반면 니나는 상처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길을 택한다는 점에서, 두 인물의 운명은 갈매기라는 상징을 매개로 극명히 갈라진다.
따라서 <갈매기>의 제목과 마지막 장면의 이 대사는, 예술과 삶을 향한 인간의 갈망이 얼마나 아름답고 동시에 얼마나 잔혹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갈매기는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이자, 그 이상이 좌절되는 순간의 상처를 동시에 담아낸다. 니나의 대사는 그 모순을 인식하면서도 다시 날아오르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는 선언이며, 트레플료프의 몰락과 대비되며 작품 전체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이렇게 체호프의 갈매기는 한 가지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자유와 희망, 희생과 파괴, 재생과 의지의 다층적 상징이다. 니나의 마지막 대사는 이러한 상징을 응축하여 보여주며, 인간이 예술과 삶 속에서 겪는 고통과 아름다움, 좌절과 재기의 역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즉, 갈매기는 체호프가 바라본 인간 삶 자체의 은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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