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냐 아저씨

안톤 체호프의 희곡

by 김양훈

Stephen Rea as Uncle Vanya in Uncle Vanya, 1995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Uncle Vanya, 1897)는 러시아 사실주의 연극의 정점이자, 인생의 권태와 인간의 무력함을 가장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겉보기에는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지만, 그 침묵과 정적 속에서 인물들의 삶이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체호프가 만들어 낸 이 ‘조용한 비극’은 오늘날 한국 무대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질문으로 관객과 함께 하고 있다.

Ian Rickson's acclaimed production of Conor McPherson's adaptation of Uncle Vanya at the Harold Pin

작품의 무대는 한적한 러시아 시골 영지다. 그곳에는 평생 영지를 관리하며 헌신해 온 바냐(이반 보이니츠키)와 조카 소냐가 있다. 그들의 일상은 소박하고 단조롭다. 그런데 어느 날 도시에서 교수 세레브랴코프와 그의 젊은 아내 옐레나가 내려오면서 평화로운 생활에 균열이 시작된다. 바냐는 자신이 헌신해 온 교수가 실은 무능한 허명가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한다. 옐레나에 대한 욕망과 소냐의 헛된 사랑, 그리고 의사 아스트로프의 냉소가 얽히며 영지는 감정의 소용돌이치는 공간으로 변한다. 그러나 체호프는 시끄러운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바냐의 분노는 허공에 흩어지고, 교수 부부는 도시로 떠나며, 남겨진 바냐와 소냐는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가며 일상의 노동으로 돌아간다. 소냐의 마지막 대사, “우리는 쉬지 않고 일할 거야, 삼촌. 그리고 죽으면 쉬게 되겠지.” 이는 체호프가 절망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Stephen Rea as Uncle Vanya in Uncle Vanya, 1995

[등장인물]

알렉산드르 프라디미로피치 세레브랴코프-은퇴한 대학의 교수

엘레나 안드레예프나 세레브랴코바-은퇴한 교수의 아름답고, 어린 두 번째 아내(27살).

소피아 알렉산드로프나 세레브랴코바("쏘냐")-은퇴한 교수의 똑똑한 딸(첫 번째 부인의 딸).

마리아 바실예프나 보이니트스카야-은퇴한 교수의 첫 번째 아내의 어머니.

이반 페트로비치 보이니트스키("바냐 아저씨")-마리아의 아들 이자 쏘냐의 백부(주인공)

미하일 르보비치 아스트로프-시골 의사이자 철학자

일리야 일리치 텔레진 ("와플")-곤궁한 땅 주인

마리나-늙은 유모


[개요]


1막

세레브랴코프 가(家)의 정원. 아스트로프는 늙은 유모 마리나에게 시골 의사로서의 삶이 얼마나 지루한지와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한다. 이때, 막 낮잠에서 깨어난 바냐가 하품하며 등장한다. 바냐는 은퇴한 교수와 엘레나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세레브랴코프, 엘레나, 쏘냐, 그리고 텔레진이 산책에서 돌아온다. 바냐는 교수에게 그의 허풍과 거만한 태도를 비난하며, "많이 배운 말라비틀어진 고등어"라고 조롱한다. 세레브랴코프를 존경하는 바냐의 어머니, 마리아 바실예프나는 아들의 경멸적인 발언을 꾸짖으며 엘레나의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아스트로프는 환자 진료를 위해 자리를 뜨기 전 나무를 보호해야 한다며 연설한다. 엘ㄹ나는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바냐에게 크게 화를 내며 1막이 끝난다.


2막

(며칠 후) 늦은 밤 세레브랴코프의 응접실. 세레브랴코프가 침실로 들어서며, 나이가 들어 온몸이 성한 곳이 없다며 불만을 터트린다. 쏘냐가 부른 의사 아스트로프가 도착하지만, 세레브랴코프는 진료를 거절한다. 세레브랴코프가 잠든 밤, 엘레나와 바냐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엘레나는 집안의 불화를 이야기하고, 바냐는 망가진 희망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바냐는 자신이 유년 시절을 엉망으로 보냈으며, 자신의 황폐한 삶은 엘레나에 대한 대답 없는 사랑과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엘레나는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한다. 홀로 남게 된 바냐는 왜 엘레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때 사랑했었더라면 엘레나와 결혼도 하고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중얼거린다. 한때, 바냐는 세레브랴코프가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고 믿었으나 그러한 믿음이 사라진 지금 그의 삶은 공허했다. 바냐가 과거를 회상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아스트로프가 등장한다. 아스트로프와 바냐는 술에 취해 이야기를 나눈다. 쏘냐는 술에 취한 바냐에게 삶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라고 잔소리한다.

밖은 폭풍전야. 아스트로프는 쏘냐와 질식해 버릴 것 같은 집안 분위기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아스트로프는, 세레브랴코프는 괴팍하고, 바냐는 위산저하증 환자이며, 엘레나는 매력적이지만 게으르다고 말한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해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며 비탄에 잠긴다. 쏘냐는 그런 아스트로프에게 그가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관하여 이야기하며 제발 그의 삶을 이렇게 망가뜨리지 말 것을 부탁한다. 쏘냐는 아스트로프에게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아스트로프는 눈치채지 못한다.

아스트로프가 떠난 후, 엘레나가 등장하며 분위기는 평화롭게 전환된다. 과거의 감정들을 해결하고자, 엘레나는 쏘냐에게 자신이 얼마나 세레브랴코프를 사랑했었는지 그러나 지금 현재는 얼마나 불행한지 고백하고, 쏘냐는 아스트로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기분이 좋아진 쏘냐는 세레프랴코프에게 피아노를 연주해도 되는지 허락을 받으러 간다. 세레프랴코프에게 부정적인 대답을 들은 쏘냐는 다시 우울하다.


3막

바냐, 쏘냐, 그리고 엘레나는 세레브랴코프의 부름을 받고, 응접실에 앉아 있다. 바냐는 엘레나를 물의 정령이라고 부르며, 세레브랴코프와 이혼하고 자신에게 올 것을 종용한다. 쏘냐는 자신은 6년 동안 아스트로프를 사랑해 왔지만, 그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아마도 그 이유는 자신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엘레나에게 하소연한다. 엘레나는 아스트로프의 마음을 알아봐 주겠다며 쏘냐를 다독인다. 쏘냐는 엘레나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한편으론 차라리 아스트로프의 마음을 확인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린다.

엘레나는 아스트로프에게 쏘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아스트로프가 자신은 쏘냐에게 아무 감정이 없다고 말하자, 엘레나는 아스트로프를 종용하여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도록 한다. 아스트로프와 엘레나는 포옹하며 키스한다. 이때, 바냐가 등장한다. 이러한 엘레나의 행동에 분노한 바냐에게 엘레나는 용서를 구한다.

세레브랴코프가 가족 모임을 소집한 이유에 대해 말하기 전에, 엘레나는 쏘냐에게 아스트로프는 쏘냐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알려준다. 세레브랴코프는 부동산을 처분해 가족이 겪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한 후, 엘레나와 자신은 핀란드에 빌라를 하나 사들여 떠나겠다고 말한다. 바냐는 자신과, 쏘냐,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는 어디에 살라는 것이냐며 따진다. 화가 난 바냐는 급기야 교수에게 자신이 교수의 빚을 갚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쏘냐 소유의 부동산을 왜 멋대로 처리하려 드는지, 제2의 쇼펜하우어나 제2의 도스토옙스키가 될 수가 있었던 교수가 왜 실패했는지 비난하기 시작했다. 자포자기한 바냐는 어머니를 붙잡고 울기 시작한다. 그러나 바냐의 어머니는 아들을 다독이는 대신 교수의 말을 귀담아들으라며 꾸짖고, 교수는 바냐에게 모욕을 준다. 엘레나는 교수에게 어디든 멀리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고, 쏘냐는 바냐를 대신해 교수에게 잘못을 빈다. 세레브랴코프는 밖으로 나가버린 바냐를 쫓아가고, 곧 무대 뒤에서 총성이 울린다. 세레브랴코프가 무대 위로 다시 등장하고, 그 뒤를 바냐가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쫓아온다. 바냐는 교수를 향해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기지만 불발로 끝나자, 중심을 잃고 의자에 주저앉는다.


4막

(몇 시간 후) 마리나와 테레진이 세레브랴코프와 엘레나가 마을 떠나기로 한 일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때, 바냐와 아스트로프가 등장한다. 아스트로프는 자신과 바냐만이 이 마을에서 정상적인 문명인이었다고 말하며, 10년 동안의 편협한 삶이 자신과 바냐를 저속하게 만들었다며 불평한다. 바냐는 자살하기 위해 아스트로프의 병원에서 수면제가 들어있는 약병을 훔친다. 쏘냐와 아스트로프는 바냐에게 수면제를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엘레나와 세레브랴코프는 마을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아스트로프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엘레나를 끌고 가 포옹하며 자신을 잊지 말라며 자신이 아끼는 펜을 선물로 준다. 세레브랴코와 바냐는 다시 전처럼 잘 지내자며 화해의 악수를 한다.

엘레나와 세레브랴코프가 떠난 후, 쏘냐와 바냐는 지급해야 할 영수증을 챙기고, 마리아는 팸플릿을 읽고 있고, 마리나는 뜨개질하고 있다. 바냐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하고, 쏘냐는 삶, 일, 그리고 저승에서 받을 보답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가 이승에서 받은 고통을 천사들이 보답해 줄 거야. 평화롭고, 부드럽고, 달콤한 포옹과 함께…. 이승에서는 맛보지 못한 행복….


이 작품이 한국 무대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이후 여러 세대를 거치며 <바냐 아저씨>는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다시 태어났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연극계는 체호프의 정서를 단순한 리얼리즘이 아니라 ‘정서(情緖)의 미학’, 혹은 ‘정적(靜寂)의 드라마’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윤택 연출의 1998년 국립극단 공연은 체호프 특유의 일상적 리듬 속에 한국 농촌의 정서를 이식하여 ‘바냐’를 민중적 인물로 재해석했다. 이 버전의 바냐는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 농민의 무력감으로 변주된 것이다.

이후 양정웅의 연출(2010, 서울예술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체호프의 공간을 미니멀한 무대로 축소하고, 배우들의 내면 독백과 침묵을 극의 중심에 두었다. 인물 간 대사는 거의 속삭임처럼 흘러갔고, 관객은 그 정적의 여백 속에서 ‘행동하지 못하는 인간’의 초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사실주의 전통에서 벗어나, 체호프의 심리적 리얼리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도였다.

가장 최근의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2023년 국립극단의 윤시중 연출 <바냐 아저씨>를 들 수 있다. 이 공연은 체호프의 서사를 거의 해체하듯 재구성하며, 무대를 농촌 저택이 아닌 낡은 공장 창고로 옮겼다. 배우들은 관객과 같은 공간에서 대사를 주고받으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었다. 바냐의 절규 “내 청춘을 헛되이 바쳤어!”는 단순한 인물의 대사가 아니라, 관객 모두가 공유하는 시대적 통증처럼 울려 퍼졌다. 체호프의 ‘보편적 절망’을 오늘의 한국적 현실, 특히 청년 세대의 상실감과 중첩시킨 연출로 평가받았다.

한국 연극계에서 <바냐 아저씨>가 꾸준히 재공연 되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단지 러시아의 농촌 비극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모두가 고통받는 사회’를 그리기 때문이다. 바냐의 분노는 체념으로, 소냐의 희망은 노동으로 귀결된다. 이는 여전히 삶이 소모되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결국 <바냐 아저씨>는 인간이 어떻게 절망 속에서도 하루를 견디는가를 묻는 연극이다. 체호프는 ‘삶의 무의미’를 결론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무의미 속에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 “그래도 일하고 사랑해야 한다”를 이야기한다. 한국의 연출가들이 이 작품을 반복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바로 그 시끄럽지 않게 진실한 그 무엇을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호프가 말한 희극적 비극, 혹은 비극적 희극의 세계는 계속해서 우리 무대 위에 펼쳐진다.


이윤택 연출 바냐 아저씨 2016
이윤택·중견 연극인, 대학로는 살아있다 '바냐아저씨’

대학로를 지켜온 중견 연극인들과 극단 연희단거리패 이윤택(64) 예술감독이 만났다. 40~70대 배우들로 구성된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이 이 예술감독에게 연극 '바냐 아저씨'의 연출을 맡겼다.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은 2014년 극단 전설과 합작공연 '현자나탄' 이후 네트워크 활성화에 힘썼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사업 중 중견예술인들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중견 원로 출연료 지급 지원 사업에 선정됐고, 이후 공연예술센터의 심사를 거쳐 '바냐아저씨'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바냐아저씨'는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인 체홉이 1897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갈매기', '세 자매', '벚꽃동산' 등과 함께 그의 4대 희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죽은 누이동생의 딸 '소냐'와 함께 교수인 매부 '세레브랴코프'의 시골 토지를 지키며 사는 '바냐'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퇴직한 매부가 젊고 아름다운 후처 '엘레나'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오고, 바냐는 '엘레나'에게 사모의 정을 품게 된다. 이번 중견연극인 창작집단 버전은 이 연출의 장기인 블랙코미디가 도드라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 연출은 7일 오후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체홉의 전원 버전"이라며 웃었다. "'바냐아저씨'는 체홉 작품 중 가장 민중적이고 유일한 희극이다. 다른 작품의 결말이 자살하거나 (터전을) 떠나거나 하는데 이 작품은 바냐의 승리로 끝난다. 바냐가 땅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다. "민중의 승리를 다룬 작품이라 전원 버전이 좋다고 생각했다"라고 강조했다.

작품 외적으로는 "어른들이 해온 것을 지키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해랑의 백서에도 있다. 내면 연기라는 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라, 웃지 마라, 우지 마라라는 거다. 우리 연극의 지켜야 할 도리다. 전통 연극이 지켜야 할 도리라는 거다. 우리가 전통 연극을 하는 거다."

기주봉(61)이 바냐,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인 김지숙(60)이 엘레나, 배우 곽동철이 몽상가 아스토르프를 연기한다. 이 연출은 '왕년의 스타'들이 1, 2배 또는 1.3배로 느리게 연기하라고 주문하는 중이다. "멋있는 척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목적은 중년 배우들이 멋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김지숙이 40대로밖에 안 보인다. 그러니 그녀 목소리와 연기가 정말 젊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곽동철은 정말 멋있고, 기주봉은 친절한 아저씨로 그리고 싶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새삼 하체 운동을 하고 있다. 하체에 힘을 싣기 위해서"라고 귀띔했다. "대신 상체는 아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고 있다. 인물들의 개성이 아주 드러난다. 개성이 다들 강하면 난장판이 되니, 묶어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신 하체(의 움직임)는 맡겨달라고 했다."

연극은 영화나 드라마의 카메라처럼 클로즈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객의 시선을 잡고 풀 수 있는 거리를 배우 스스로가 해내야 한다. 배우가 천천히 연기하면 클로즈업이 된다. 영화배우, 탤런트와 다른 연극배우의 기본은 하체를 쓰는 워킹이다. 무대 위에서 제대로 걸어야 한다. 하체 움직임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김지숙은 "이번 '바냐아저씨'의 매력은 이윤택 연출의 해석이 너무 재미가 있다는 것"이라며 "외국에서 '바냐아저씨'를 봤고 국내에서도 '바냐아저씨'를 다 찾아봤는데 이 작품은 보면 볼수록 자신감이 생긴다"며 흡족해했다.

특히 바냐에 대한 해석이 마음에 든다. "권태롭고 지루한 바냐가 아니라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스꽝스럽지만 너무 사랑스럽게 그렸다. 힘들고 지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와 에너지를 대본에서 찾고 있다. 엘레나의 본질도 그런 부분에서 찾고 있다."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이 가벼워진 대학로 연극 풍토에 그래도 기준이 됐으면 한다. "전설이 될 수 있는 단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40대, 50대, 60대, 70대에 대한 지원이 없다. 그럼에도 좋은 연극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한편 이 연출가는 대학로에서 거장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학창작기금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도 탈락, 당시 연극계에 불던 '외압' 논란의 한 편에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지난해 11월 말부터 위탁 운영한 부산 기장군의 어린이 극장 '안데르센 극장'이 개관 한 달여 만에 문을 닫으면서 또 다른 의혹이 싹트고 있다.

이 연출은 그러나 정치적인 연관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며 "나는 내가 수명이 다 됐구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좌파가 아니고 진보적인 사람도 아니다. 단지 내 학교 동기(초등학교 동기동창인 문재인)라서 (지지 연설을) 했는데 후회는 없다."

다만 "요즘 들어 괴로운 것은 안팎으로 받는 스트레스"라고 했다. "왜 많은 소극장이 있는데 이윤택 하고만 하려고 하나라는 말이 있다. 이윤택이 쌓아온 분야라는 게 있다. 한국사회에서 특혜를 받고 있지. 이제는 특혜를 받으려는 입장이 아니다. 조용히 물러나 있겠다. 그래서 국공립(에서 연극을) 안 하고 민간 소극장하고. 이제 내가 세우는 극장에서 할 거다. 현재 세상에 대해 가타부타하거나 저항, 순응할 생각은 아니다. 올해 30주년인데 내 정리의 해로 삼고 올해 7월까지 있다가 처음 시작한 부산 가마골 소극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조용하게 연극을 할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던 차에 '바냐아저씨' 제안을 받았다. "내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 연극계에서 사랑을 받은 사람이니까. 촌놈인데 배타적인 대접을 받지 않았다. 임영웅, 김동훈, 김의경, 연극계 세 포스들. 즉 산울림, 실험극장, 현대극장에서 다 연극을 했다. 이분들이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대접을 해줬다. 연극 선생들로부터 받은 혜택을 이제는 돌려줘야 한다. 대학로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번 작업에 상상 이상으로 힘을 쏟고 있다. 정말 대학로 연극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 분들이 증명할 거다." <뉴시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풍수로 느끼는 북악산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