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장막극 비평 (ChatGPT와 함께)
등장인물
*올가 세르게예브나 프로초로바(올랴)-장녀. 집안에서 유일하게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학교 선생으로 일하고 있지만 직업에 만족하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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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세르게예브나 프로초로바(마샤)-차녀.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우아한 여성. 열여덟 살에 표도르 일리치 쿨리긴과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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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세르게예브나 프로초로바-삼녀. 모스크바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일을 하고 싶다는 대사에서는 자신의 희망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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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세르게예비치 프로초로프-장남. 세 자매의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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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아 이바노브나(나타샤)-안드레이의 부인이 되는 여성. 안드레이의 연인이다. 1막에서는 애인이었지만 2막에서는 그의 아내가 된다. 이 희곡에서 제일 무서운 여자. 시간이 지날수록 그동안 숨겨두었던 난폭함과 저속함을 조금씩 드러낸다. 가족들 몰래 프로토포포프라는 의회의 수장과 불륜을 벌이며, 프로조로프 일가의 저택을 조금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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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일리치 쿨리긴-마샤의 남편이자 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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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이그나치예비치 베르쉬닌-육군 중령. 모스크바에서 왔다. 자살을 기도하는 아내와 두 딸이있으며 마샤와 불륜 관계가 되지만 군대가 이동하며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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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리보비치 투젠바흐-육군 중위. 남작이다. 이리나와 약혼하지만 그녀를 두고 솔료늬와 결투 끝에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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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바실리예비치 솔료늬-육군 대위.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거는게 일상이다.투젠바흐의 친구이며 둘이 있을땐 정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솔료늬 또한 이리나를 사랑하며 이후 이리나와 약혼한 투젠바흐와 결투를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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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로마노비치 체부틔킨-군의관. 네 남매의 부모와 친분이 있었던 듯하며 어머니를 좋아했던 남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 만사에 비관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고, "어찌됐든 마찬가지야" 또는 "아무려면 어때!"라는 말을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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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페도티크-육군 소위, 그러나 페도티크는 이리나에게 카드점을 봐주는데, 그때 그녀에게 모스크바에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괘를 내놓고 그것은 현실이 된다.
*블라디미르 카를로비치 로데-육군 소위.
시간의 덫
안톤 체호프의 희곡 <세 자매(Три сeстры)>(1901)는 러시아 사실주의 연극의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자, ‘시간의 덫’ 속에 갇힌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걸작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세 자매의 삶을 그린 가족극이 아니라, 근대 전환기를 살아가는 지식인 계급의 무력감과 시대적 좌절을 정밀하게 포착한 비극적 무대라 할 수 있다. 체호프는 화려한 사건이나 격정적 갈등 대신, 일상의 대화 속에 배어 있는 소멸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비극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모스크바로! 모스크바로! 모스크바로!”
작품의 무대는 러시아의 지방 소도시. 모스크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세 자매인 올가와 마샤 그리고 이리나는 죽은 아버지의 군영 저택에서 권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들은 한결같이 “모스크바로 가야 해!”라고 외치지만, 그 꿈은 끝내 실현되지 않는다. 모스크바는 현실 너머의 이상, 잃어버린 시간을 의미한다. 체호프는 이 상징적 공간을 통해 인간이 바라는 ‘다른 삶’, 즉 의미와 희망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그것이 결코 실현되지 않음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 이처럼 <세 자매>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빚어내는 세 자매의 무력감을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올가는 교사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만, 결혼하지 못한 채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린다. 마샤는 결혼한 여성으로, 지식인 남편의 공허한 말만을 견디며 불륜적 사랑인 베르시닌 중령과의 관계를 통해 잠시 생의 불꽃을 태운다. 그러나 그조차 일시적인 위안일 뿐이다. 막내 이리나는 이상을 가슴 속에 품은 젊은 처녀이지만, 결혼이 사랑이 아닌 의무로 변하는 순간 절망에 빠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모두 계속되는 ‘실패한 선택’으로 이어지며, 체호프는 이를 통해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근대인의 집착과 그 좌절을 비판적으로 비춘다.
체호프의 인물들은 행동보다 말이 앞선다. 그들의 대화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 채 허공에 떠돌며, 희망은 끝없는 지연 속에서 퇴색한다. 이 침묵과 반복, 무력한 일상의 리듬은 체호프 특유의 극적 미학이다. 그는 관객에게 사건이 아니라 정조를 체험하게 한다. 이를테면, 봄이 왔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마지막 장면—군악대의 행진 소리 속에서 세 자매가 “살아야 해”라고 되뇌는 장면—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내면의 체념이 응축된 카타르시스다. 체호프는 비극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대신 삶은 계속된다는 냉정한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을 남긴다.
“우리는 언젠가 알게 될 거예요.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고통받는지를.”
또한 <세 자매>는 러시아 근대 지식인의 몰락과 사회적 변화를 예리하게 비추는 사회극이기도 하다. 사라져가는 귀족 계층의 후예인 세 자매는 여전히 고상한 교양과 도덕적 품위를 지키려 하지만, 시대는 이미 그들을 뒤로한다. 그들의 주변에는 노동자, 군인, 하급 관리 등이 등장하며 새로운 사회 질서를 예고한다. 그러나 체호프는 이 변화를 혁명적 낙관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의식이 구조적 변화에 뒤처지는 아이러니를, “의미는 사라졌으나 습관만 남은 삶”의 형태로 드러낸다. 그래서 체호프가 그린 세계는 단순히 슬픈 것이 아니라, 조용히 붕괴하는 세계의 정경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체호프가 전통적 극 구조 즉, 명확한 갈등과 결말을 해체했다는 것이다. <세 자매>에는 극적인 사건이 없다. 대신 ‘멈춰 있는 시간’이 전면에 배치된다. 이는 19세기 사실주의극에서 20세기 모더니즘극의 전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사뮈엘 베케트, 해럴드 핀터 같은 부조리극 작가들이 체호프의 ‘정적 속의 긴장’을 계승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즉, 체호프는 일상의 사소한 대화 속에서 인간 존재의 불안을 포착함으로써, 근대 연극의 형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셈이다.
"우리의 행복은, 친구여, 앞으로 올 거예요...
수백 년 후에."
<세 자매>의 진정한 비극은 꿈의 좌절이 아니라,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의 집요한 희망에 있다. 그들은 모스크바로 가지 못했지만, 여전히 “언젠가는 이해될 날이 올 거야”라고 말한다. 체호프는 이 모순된 희망을 통해 삶의 의미를 묻는다. 인생은 부조리하고, 노력은 허망하며, 행복은 멀지만—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 바로 그 점에서 <세 자매>는 단순한 절망극이 아니라, 체호프적 휴머니즘의 섬세한 표현이다.
요컨대, <세 자매>는 한 시대의 쇠락을 그린 비극이자, 인간의 근원적 욕망—‘다른 곳에서의 삶’을 향한 그리움—을 탐구한 시적 드라마다. 체호프는 그리움이 결코 충족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살아야 해, 일해야 해.” 이 마지막 대사는 체호프가 절망 속에서도 던지는 윤리적 명령이다. 삶은 무의미해도,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된다. 바로 그 역설이, <세 자매>를 오늘날까지도 가장 현대적인 고전으로 남게 만든다.
"인간은 믿음을 가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삶은 텅 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