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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by 김양훈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은 단순한 미덕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에게 변화를 강요하지 말고, 조건을 붙이지 않으며,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명령이다. 더 나아가 이 말이 진정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수용을 넘어, 존재의 불완전함을 함께 감당하겠다는 윤리적 결단이다.

철학적으로 이 말은 스토아 철학과 실존철학 모두에 닿아 있다. 스토아의 현자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강조했다. 운명을 사랑하라! 인간은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 다만 각자에게 안겨진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삶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사상이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태도 역시 삶의 조건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것을 긍정함으로써 삶이 짊어진 운명과 화해하려는 시도이다. 사랑이란 대상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가 지닌 결함과 한계까지 포함하여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명제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수동적 체념이 아니라 적극적 이해와 연민이 전제되어야 한다.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사랑은 자기희생’이라고 말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내 욕망의 필터를 벗겨내고 타자의 고유성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런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의 문제이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를 바꾸려 들고, 나에게 맞게 재단하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연민?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존재자 각각이 ‘그 자체로 있음’을 허락하는 태도이다. 그는 인간을 ‘세계-내-존재’로 보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존재가 드러난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타인을 나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세계에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랑’은 존재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철학적 환대의 표현인 셈이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낭만적인 이상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곧 상처와 불완전함을 함께 사랑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모순적이며 불완전하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실망하고, 이해하려다 미워한다. 그렇기에 이 말은 용서와 관용의 실천 없이는 불가능하다. 니체가 말했듯이, “사랑에는 잔인함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고통 속에서도 계속해서 그 실체적 존재를 긍정하려는 의지이다.

또한 이 말은 자기 자신에게도 향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완벽해야만 가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자기 수용은 혁명적인 행위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변화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출발점으로 인정한다는 용기이다.

결국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은 인간관계의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태도를 가리킨다. 그것은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철학적 예의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랑은 변화시키기 위한 사랑보다 느리고, 때로는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그 사랑만이 진실하다. 그것은 상대를 통해 나의 불완전함을 비추어보고, 그럼에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일종의 존재의 연대이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은 단순한 감정적 조언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윤리적 명령이다. 우리는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수정하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판단 이전의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세상 속에서 조화롭게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 그것이 철학이 가르쳐준 사랑의 궁극적 형태이다.

사람은 연민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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