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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술

“Everything happens at the right time”

by 김양훈
“모든 일은 제때 일어난다(Everything happens at the right time)”는 문장은 겉으로는 단순한 위로의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살펴보면, 이 말은 인간 존재와 시간, 운명, 그리고 자유의 관계를 사유하게 하는 깊은 사변적 명제다. 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발견할 것인가에 대한 오래된 고전적 질문이기도 하다.

우선 이 문장은 스토아 철학(Stoicism)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스토아학파는 세계가 ‘로고스(logos)’라는 이성적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었다. 인간의 이성은 그 우주적 이성의 한 부분이므로, 우리가 겪는 모든 일 역시 그 질서 안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이나 실패, 지연 또한 우주적 질서의 일부이며, 그것은 “지금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난다.” 스토아의 현자는 이를 이해하고 저항하지 않는다. 그는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주어진 순간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유로워진다. 이때 “모든 일은 제때 일어난다”는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우주적 필연성을 인식한 지혜가 된다.

한편 동양철학, 특히 노자의 『도덕경』에도 유사한 사유가 나타난다. “도(道)는 억지로 나아가지 않는다(無爲而無不爲)”는 구절은 모든 것은 그 자연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때를 가진다는 뜻이다. 강을 거슬러 흐르려는 자는 결국 힘을 잃고,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긴 자만이 강을 건넌다. 인간의 조급함은 도의 질서를 깨뜨리지만, 인내와 신뢰는 그 질서 속에서 스스로의 시간을 열어준다. 이 맥락에서 “모든 일은 제때 일어난다”는 문장은 도가적(道家的) 시간관, 즉 인위가 아닌 자연의 시기와 조화를 이루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이 명제를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또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사르트르나 카뮈에게 인간은 본질 없는 존재이며, 우주에는 어떤 필연적 질서나 예정된 시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든 일은 제때 일어난다”는 말은 외부의 질서를 인정하기보다, 자신의 선택을 통해 그 순간을 ‘의미 있는 때’로 만드는 인간의 능동적 결단을 뜻한다. 즉, 일이 제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때’를 제때로 만드는 것이다. 고통의 시기도, 성공의 시기도 본래 정해진 것은 없으며, 오직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실존주의적 해석에서는 이 문장이 운명론이 아니라 의미 창조의 선언이 된다.

이 명제를 현대적 맥락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불확실성과 조급함의 시대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성취와 속도의 논리에 지배된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앞서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때’를 앞당기려 한다. 그러나 삶의 어떤 사건들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늦게 오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찾아온다. 그럴 때 “모든 일은 제때 일어난다”는 문장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시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도록 돕는 존재론적 위로가 된다. 그것은 기다림의 미학이며, 불완전한 인간이 완성으로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긍정하는 철학이다.

결국 이 문장은 각 철학적 전통 속에서 서로 다른 층위를 가진다. 스토아적 맥락에서는 우주 질서에 대한 수용, 도가적 관점에서는 자연의 리듬에 대한 신뢰, 실존주의적 시각에서는 자기 해석을 통한 시간의 창조로 읽힌다. 그러나 세 접근 모두 공통적으로 말한다 — 인간은 자신의 시계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 수 없으며, 삶에는 인간 이성으로 재단할 수 없는 ‘적절한 때’가 존재한다.

따라서 “Everything happens at the right time”은 단순한 위안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이 시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다. 그것은 운명과 자유, 수용과 창조의 경계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묻는 말이다. 결국 우리가 이 문장을 믿는다는 것은, 우주의 리듬이든 인간의 의식이든, 어느 쪽이든 ‘때’를 만들어내는 어떤 질서가 존재한다고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 신뢰가 바로 철학이 말하는 평온한 삶의 조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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