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미와 준지

감성의 갑옷 : 영포티의 초상

by 김양훈

40대 남성, 이른바 ‘영포티(Young Forty)’라 불리는 세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독특한 존재다. 청춘은 이미 저물었지만, 여전히 젊음을 향한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이. 그들은 사회의 중심에 서 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한 걸음 떨어져 있다. 이 세대가 선택한 방식은 행동이 아니라 소비이며, 그 소비의 언어는 패션이다. 특히 두 디자이너 브랜드, 우영미(Woo Young Mi)와 준지(Juun.J)는 영포티의 정체성과 욕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시각적 상징이다.

Défilé Wooyoungmi Automne-hiver 2013-2014 Homme
Défilé Wooyoungmi Automne-hiver 2015-2016 Homme

우영미의 옷은 감성적이다. 구조적인 테일러링 위에 섬세한 곡선을 얹고, 단단함 속에 여백을 둔다. 어깨는 강인하지만 시선은 부드럽고, 색채는 절제되어 있으나 감정은 선명하다. 그의 남성은 결코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내면을 가진 남자’로 존재한다. 런웨이 위에서 그들은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자신을 감추는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우영미의 남성상은, 세련된 외피 아래 감정을 품은 중년의 초상이다. 그는 사회적 피로 속에서도 여전히 감수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며, 우영미의 옷은 그 감정을 정제된 형태로 시각화한 감정의 갑옷이다.

JUUN.J Fall 2025
Juun.J Spring 2023

반면 준지는 해체의 미학으로 접근한다. 전통적인 수트를 뒤집고, 실루엣을 과장하며, 어깨선을 부풀린다. 그의 옷은 안정보다 불안을, 질서보다 혼란을 택한다. 볼륨감 있는 재킷과 드롭된 라인은 마치 “나는 규칙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러나 이 해체는 무질서가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균형 속에서 이뤄진다. 준지의 남성은 거칠고 도전적이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세공된 존재다. 도시적이고 실험적인 조형미 속에서, 그는 불안한 자아를 과시한다.

이 두 브랜드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결국 같은 세대의 초상을 그린다.
우영미는 감정의 귀족화를,
준지는 구조적 반항을 제시한다.
전자는 내면의 감정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후자는 사회적 규율을 미학적으로 전복한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옷은 결국 ‘자기 연민의 장치’로 작동한다. 우영미의 감성은 “나는 아직도 감정적인 사람이다”라는 선언이며, 준지의 과감한 실루엣은 “나는 여전히 중심에 있다”는 자기확인이다. 영포티 세대의 패션은 젊음을 회복하려는 몸짓이면서 동시에 젊음의 상징을 소비하는 행위다.

이 세대에게 브랜드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갑옷이다. 사회적 위치는 정점에 있지만, 자기 내면의 방향은 흔들린다. 영포티는 더 이상 ‘행동하는 젊음’이 아니지만, 여전히 ‘젊음을 연출하는 세대’다. 우영미의 재킷은 감정을 세련되게 가두는 도구이고, 준지의 코트는 불안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패다. 두 브랜드 모두 그들의 불안을 이해하고, 그것을 미학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그 감성의 갑옷은 점점 더 두꺼워진다. 옷은 완벽해지지만, 그 안의 인간은 공허해진다. 브랜드가 자아의 언어가 되는 순간, 자아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는다. 우영미의 부드러움은 감정을 진정시키는 대신 감정을 ‘디자인’으로 대체하고, 준지의 과감함은 자기 실험의 흉내를 내며 불안을 상품으로 바꾼다. 그 결과, 영포티의 소비는 자기 표현이라기보다 자기 방어로 변한다.

이런 소비의 이면에는 구조적 피로가 있다. 40대는 여전히 조직의 중추이자 가정의 버팀목이다. 그러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만의 서사를 잃었다. 청춘의 열정은 사라졌지만, 노년의 평온함은 아직 멀다.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이 감성적 소비다. 우영미의 미니멀리즘은 그들에게 여전히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는 착각을 주고, 준지의 아방가르드는 “나는 여전히 실험 중인 사람”이라는 자기 위안을 제공한다. 패션은 그들에게 현실의 대안이자 심리적 피난처가 된다.

그러나 감성의 갑옷은 결국 두 얼굴을 가진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는 동시에, 진짜 자신과의 거리를 만든다. 감정은 연출이 되고, 젊음은 표면이 된다. 우영미의 남성은 여전히 감성적이지만, 그 감성은 브랜드의 언어로 번역된 감성이다. 준지의 남성은 여전히 저항적이지만, 그 저항은 체제 안에서 소비되는 연출된 반항이다. 결국 두 브랜드는 영포티 세대의 욕망을 포착함과 동시에, 그 욕망의 한계를 드러낸다.

파리의 런웨이에서 걸어 나오는 우영미의 남성과 준지의 남성은, 사실 같은 사람이다. 그는 더 이상 청춘은 아니지만, 여전히 청춘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 하는 남자다. 그에게 옷은 단순한 외피가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문법이다. 그리고 그 문법은 점점 더 세련되고, 더 비싸지고, 더 감정적으로 진화한다. 하지만 그 진화의 끝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들은 정말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가?”

영포티의 패션은 멋지게 늙어가는 기술을 가르쳐주지만, 정직하게 나이 드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젊음을 입고 있지만, 그 젊음은 오래된 상징이다. 감성의 갑옷 속에서 그들은 빛나지만, 동시에 외롭다. 우영미와 준지의 세계는 그 외로움을 우아하게 감싸준다. 그러나 언젠가 그 갑옷을 벗을 날이 온다면, 그때 비로소 진짜 젊음은, 시간이 아니라 진정성 속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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