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살아낸 밤과 낮에서 얻는 삶의 위로!
“매일 밤 나는 상념에 빠져서 죽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나는 살아 있다는 죄책감으로 눈을 떴다.” -도스토옙스키
이 짧은 문장은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란 존재를 단순한 생물학적 생존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식하는 존재의 고통”으로 보았다. ‘상념 속에서 죽는다’는 말은 단순히 우울함을 말하는 표현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성찰이 극단에 이르러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 즉 ‘사유의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스스로의 죄, 악, 무의미를 끝까지 인식할 때, 정신은 이미 하나의 죽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매일 아침 다시 “살아남는다.” 그리고 바로 그 살아 있음이 또 다른 고통의 원천이 된다. 마치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처럼.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이 양극단을 오간다.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을 통해 ‘초인적 자유’를 얻고자 했으나, 결국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죄책감 앞에서 무너지는 과정이 그것이다. 그는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든 ‘양심 불량'에 시달린다. 이 문장은 그러한 인간적 모순의 고백이다. 죽음을 바라며 상념 속에서 수없이 자멸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 있음’을 자각해야 하는 영혼의 형벌, 그것이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살아 있는 죄”다.
또한 이 구절은 존재론적 ‘부활’의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그는 밤마다 스스로를 파멸시키지만, 아침마다 다시 세상에 던져진다. 이 반복은 신앙과 절망, 구원과 죄책감이 얽힌 인간 실존의 순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국 도스토옙스키에게 삶은 형벌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의식의 감옥’이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삶으로부터도 해방되지 못한 인간의 모순적 존재를 이 한 문장이 명징하게 말하고 있다.
“상념 속의 죽음”은 도덕적 자각의 깊이를, “살아 있음의 죄책감”은 실존의 무게를 상징한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인간이란 바로 그 무게를 끝까지 견디는 존재이며, 그 견딤 속에서만 비로소 구원과 또는 절대자를 향한 미약한 희망을 기대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