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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Bukowski

더럽고도 솔직한 시인

by 김양훈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입니다』(1977)는 그의 문학 세계가 절정에 달한 시기 작품으로, 사랑과 예술, 인간의 고독을 거칠고도 정직한 언어로 그려냈다. 제목처럼 부코스키에게 사랑은 구원이 아닌 고통의 근원이며, 인간을 갉아먹으면서도 다시 살게 하는 역설적 힘이다. 시집 속 시들은 술, 섹스, 가난, 실패한 관계 등 일상의 밑바닥을 그리며 미화되지 않은 인간의 실존을 보여준다. 그의 문장은 난폭하지만 진실하고, 고백이자 항변이다. 글쓰기는 그에게 낭만이 아닌 살기 위한 생존의 노동이며, 자기 파괴와 재생의 반복이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입니다』는 부코스키가 인간의 절망 속에서도 삶의 온기를 포착한 작품으로, “거칠지만 진실한 인간의 목소리”를 가장 선명하게 들려주는 시집이다.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1920–1994)는 미국 문단에서 가장 ‘더럽고도 솔직한’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전통적인 시인의 미학을 거부하고, 삶의 하층부에서 꿈틀거리는 인간의 욕망, 실패, 그리고 잔혹한 일상을 낱낱이 드러냈다. 그의 시와 소설에는 문학적 장식 대신 맥주, 담배, 여자, 경마장, 그리고 고독이 등장한다. 이 거친 현실의 언어는 때로 외설적이었으나, 그 밑바닥에는 누구보다도 인간의 나약함과 구원을 갈망하는 목소리가 깃들어 있었다.

부코스키의 삶은 곧 그의 문학이었다. 독일 안더나흐에서 태어나 세 살 무렵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빈민가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청소년기의 부코스키는 가난과 폭력, 학교 내 따돌림 속에서 자라났다. 그는 이 모든 불행을 술로 버텼고, 그 술기운 속에서 인간의 진실을 바라보는 ‘하층민의 철학자’가 되었다. 부코스키의 문학은 문명이나 도덕의 외피를 찢고, 인간의 가장 날것의 욕망과 절망을 마주하게 한다. 그가 쓴 “나는 좋은 여자가 필요하다”라는 시 역시, 그 절박한 인간적 결핍의 진술이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입니다(Love is A Dog From Hell)』(1977)는 그의 문학 세계가 절정에 달한 시기의 시선집으로, 사랑과 예술, 인간의 고독을 거칠고도 정직한 언어로 그렸다. 제목처럼 부코스키에게 사랑은 구원이 아닌 고통의 근원이며, 인간을 갉아먹으면서도 다시 살게 하는 역설적 힘이었다. 시집 속의 시들은 술, 섹스, 가난, 실패한 인간관계 등 일상의 밑바닥을 그리며 미화되지 않은 인간의 실존을 보여준다. 그의 문장은 난폭하지만 진실하고, 고백이자 항변이다. 글쓰기는 그에게 낭만이 아닌 살아기 위한 노동이며, 자기 파괴와 재생의 반복이다.

이 시에서 부코스키는 “타자기보다, 자동차보다, 모차르트보다” 여자를 더 절실히 원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문학, 문명, 예술보다도 인간적인 온기를 갈망한다. 여자는 단순한 성적 대상이 아니라, 그의 세계를 복원시키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의 발이 걸을 인도”, “그녀의 머리를 위한 베개”, “그녀의 슬리퍼가 놓인 바닥” 같은 구체적 이미지들은, 부코스키 특유의 감각적 사실주의를 보여준다. 그에게 사랑은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 속의 체취이며 손끝의 감각이다.

이 시의 핵심은, 부코스키가 그토록 혐오하던 ‘문명’의 기호들—타자기, 자동차, 모차르트—보다 더 원초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를 갈망하는 점에 있다. 그는 글로 세상을 바꾸는 작가이면서도, 동시에 글보다 인간을, 시보다 온기를 더 원했다. 이 모순은 그의 전 생애를 지배했다. 그는 수백 편의 시를 쓰면서도 늘 “나는 작가가 되려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 썼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예술이 아니라 생존의 도구였고, 사랑은 그 생존의 이유였다.

부코스키의 문학은 미국 비트세대와도, 포스트모더니즘과도 다른 고유한 영역을 점한다. 그는 카페의 철학자도, 혁명의 선동가도 아니었다. 그는 술집의 낭인, 도시의 떠돌이였다. 그의 글은 세련된 은유 대신, ‘더러운 진실’을 썼다. 하지만 그 더러움 속에 인간의 순수한 진실이 있었다. 그는 가난과 좌절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을, 그리고 그 연약함 속에서 피어나는 유머와 사랑을 포착했다. 바로 그 점이 부코스키 문학의 미학이다.

말년의 부코스키는 뜻밖에도 명성을 얻고, 안정된 삶을 누렸다. 그러나 그의 시 속 세계는 끝내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술에 취해 인간의 슬픔을 노래했고, 사랑을 잃은 자의 고독을 찬미했다. “나는 좋은 여자가 필요하다”는 고백은 결국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지탱한 시적 진실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부서진 인간이 인간에게 구원을 청하는 기도였다.

그의 문학은 냉소와 절망을 말하면서도, 그 속에 ‘사랑의 가능성’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부코스키는 비루함의 시인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가장 처절한 낙관주의자였다. 세상이 거짓과 허위로 뒤덮일수록, 그는 진짜 숨결과 체온을 찾아 방황했다. 그의 시 속의 여자는 욕망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적 구원의 상징이었다.

찰스 부코스키는
‘패배자들의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노래한 패배는 패배의 미학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진실이었다. 그는 문학 귀족주의를 거부하고, 인생의 쓰레기통 속에서도 시를 찾았다. 그가 절규하듯 읊은 “나는 좋은 여자가 필요하다”는 말은, 결국 사랑과 구원을 향한 모든 인간의 근원적 외침이다. 그 절박함이야말로 부코스키 문학의 영혼이며,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다.

배우 숀펜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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