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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메레시콥스키

종교와 예술, 그 불가능한 화해를 향한 탐구

by 김양훈
러시아 상징주의 문학의 핵심 인물

드미트리 세르게예비치 메레시콥스키(Dmitry Sergeyevich Merezhkovsky, 1865–1941)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 문학의 사상적 전환기 한가운데를 산 인물이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였으며, 동시에 사상가·비평가로서 러시아 상징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 메레시콥스키의 문학은 단순한 미학적 탐미주의를 넘어서, 신(神)과 인간, 육체와 영혼, 과거와 미래의 화해라는 거대한 종교철학적 문제를 품고 있었다.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이 인간의 사회적 현실을 탐구했다면, 메레시콥스키는 그 반대의 방향에서 인간의 영적 실존을 탐색했다. 그는 톨스토이적 도덕주의와 도스토옙스키적 심연을 모두 계승하면서도, 그 너머에서 “새로운 종교적 르네상스”를 꿈꾸었다. 그의 비평집 『원인 없는 예술』(1893)은 러시아 상징주의 선언문에 가까웠다. 여기서 그는 고전적 리얼리즘이 인간의 외적 현실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비판하며, 예술은 인간의 ‘내면의 진리’와 신성의 징후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그는 브류소프, 블록, 그리고 벨리 등 후배 시인들에게 미학적·철학적 토대를 제공했다.

소설가로서의 메레시콥스키는 종교적 상징과 역사적 인물을 결합하는 독특한 서사를 창조했다. 대표작인 ‘신들의 연속 3부작’(『유방한 신(Юлиан Отступник)』,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의 제자』, 『피터와 알렉세이』)에서 그는 인간의 역사를 ‘영적 진화’의 과정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육체의 신’과 ‘영혼의 신’이라는 대립은, 결국 기독교적 금욕과 고대의 생명력 사이의 투쟁을 상징한다. 메레시콥스키에게 예술은 단순한 미적 창조가 아니라, 신과 인간의 새로운 계약을 중개하는 예언적 행위였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늘 모순 속에 놓여 있었다. 그는 기독교의 절대적 도덕률을 부정하면서도, 그 근원을 떠나지 못했다. 신을 죽이지 않고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그의 시도는, 종교와 세속, 성과 속의 이중구조를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드러냈다. 바로 그 모순이 메레시콥스키 문학의 긴장과 아름다움을 형성한다. 그의 언어는 상징적이고 신비주의적이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난해하다. 하지만 그 난해함 속에는 20세기 초 러시아 지성의 불안과 초월 욕망이 응축되어 있다.

Dmitry Filosofov, 아내 Zinaida Gippius, Dmitry Merezhkovsky

메레시콥스키의 비평적 활동 또한 그 시대의 문학을 규정지었다. 그는 아내 지나이다 기피우스, 철학자 드미트리 필로소포프와 함께 ‘신인교동맹(새 종교 의회)’을 조직하며 러시아 종교사상운동의 중심에 섰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한 문예 운동이 아니라, 예술을 통한 신앙의 갱신이었다. 이 시도는 훗날 러시아 종교철학의 거장 베르자예프나 불가코프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학은 궁극적으로 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신이 없는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신성에 이를 수 있는가?”

메레시콥스키는 이 물음에 답하지 못했지만, 그 질문 자체를 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바로 그 점에서 그는 러시아 근대문학의 ‘영적 전위’였다.

결국 메레시콥스키의 문학은 인간의 구원을 예술 속에서 찾으려는 근대적 영성의 실험이다. 그는 이성과 신앙, 고대의 생명력과 기독교의 금욕, 그리고 리얼리즘의 객관성과 상징주의의 신비성을 동시에 품으려 했다. 그 불가능한 화해를 향한 긴 여정이 바로, 드미트리 메레시콥스키라는 이름이 러시아 문학사 속에서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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