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러시아가 낳은 최고의 여류 시인
석양빛이 넓고 노랗네요
안나 아흐마토바
석양빛이 넓고 노랗네요
공기가 부드러워도 4월이라 쌀쌀해요
당신은 내게 아주 늦게 왔지만
당신을 만나서 기뻐요
제 가까이 이리 와서 앉아요
그리고 환한 눈으로 한 번 보세요
여기 파란 공책이 있어요
어릴 적 시들을 적어놓은 거예요
용서해 줘요. 그동안 슬픔 속에서 살았거든요
태양을 보고서도 별로 기뻐하지 못했어요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내가 너무 많은 이들을 당신으로 잘못 알았어요
- The Evening Light is Broad and Yellow (1915) By Anna Akhmatova
20세기 러시아가 낳은 최고의 여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Anna Akhmatova)는 1889년 오뎃사에서 태어나 페테르부르크 근교의 <황제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고통과 탄압의 시기에 수많은 시들을 발표했다. 아흐마토바는 스탈린 사망 후에야 비로소 짧은 평화의 시기를 맛보았고, 1966년 숙환으로 사망했다.
조주관 교수가 펴낸 시선집 [자살하고픈 슬픔]에는 아흐마토바의 첫 시집 『저녁Vecher』을 비롯하여, 『묵주Chotki』, 『하얀 무리Belaia Staia』, 『질경이Podoroznik』, 『서력기원 MCM XXI, Anno Domini』, 『갈대Trostnik』 등의 시집에서 발췌한 아흐마토바의 대표작들이 실려 있다.
아흐마토바의 초기 시는 기독교 사상이 잘 드러나는 서정시가 많으며 사랑, 이별, 고독, 체념과 같은 단어들로 표현된다. 삶의 기쁨과 슬픔, 고독의 아픔 등을 아무런 과장 없이 고백하여 감동을 던져 준다. 후기 시는 초기의 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형식과 다양한 테마를 사용하여 시대 의식, 예술, 존재와 죽음 등의 주제를 다룬다. 이때 쓴 두 편의 서사시 『진혼곡』과 『주인공 없는 서사시』는 동포의 불행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조국의 운명을 예감하는 시로서 시인의 소명 의식과 미적 완전성을 엿볼 수 있다. 아흐마토바는 개인의 비극이나 슬픔을 민족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비극으로 승화시키고, 다양한 역사적 개인적 환경을 인내로써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통찰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사별, 사랑하는 아들의 투옥, 그녀 자신에게 강요된 침묵과 출판 금지령 등 고난의 시기를 겪으며 아흐마토바의 시는 더욱 아름다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스탈린 사후에는 외국에도 그녀의 시가 알려져 많은 찬사를 받아, 1964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에트나 타오르미나 Etna-Taormina> 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아흐마토바의 시는 동양적인 정서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이 동양시에 많은 관심을 가져 한국시를 비롯한 동양의 시를 번역하여 러시아에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의 시인 가운데 러시아에 소개된 시인은 김종서, 성삼문, 이색, 정철 윤선도, 황진이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슬픈 운명을 지닌 아흐마토바의 시는 그것이 서정시이든 서사시이든 모두 한 많은 여인의 침묵의 노래이고 인간의 존재와 고독의 문제에 대한 고백이며, 삶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표상된다. 아흐마토바의 시를 통하여 아끄메이즘 시의 전형이 어떤 것인지 알고, 러시아의 격변기를 살았던 시인들의 삶의 고통을 함께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푸닌 (Никола́й Никола́евич Пу́нин , 1888년 ~1953년)은 러시아의 미술 학자이자 작가였다. 그는 《이조브라지텔노예 이스쿠스트보》 를 비롯한 여러 잡지를 편집했으며, 국립 러시아 박물관의 도상학과를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 푸닌은 <레퀴엠>이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평생 친구이자 사실혼 관계였다 . 둘 사이에 딸 이리나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