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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길을 가네

레르몬토프가 그린 “외부세계와 내면세계의 불화”

by 김양훈

나홀로 길을 가네

레르몬토프


나홀로 길을 가네

안개로 덮인 자갈길에

별은 어렴풋이 빛나고

광야의 밤은 적막하여

신의 음성까지 들릴 듯하네

별들은 조용조용 말을 걸고

나는 혼자 길을 나섰다네


하늘 모든 것이 장엄하고 경이롭구나

대지는 맑고 푸른빛에 잠들어 있는데

나는 왜 이토록 아프고 괴로울까?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기다리는가?


삶에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고

가버린 날에도 아쉬움이 없네

그저 자유와 평화만을 구하고 싶고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다 잊고 잠들고 싶을 뿐...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시 「나홀로 길을 가네」는 러시아 낭만주의가 지닌 고독의 정서와 존재론적 탐색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시는 단순히 한밤중 길 위에 선 한 개인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외부 세계의 장엄함과 내면의 불안 사이의 대비를 통해 ‘왜 인간은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도 고통을 느끼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1. 장엄한 자연과 대비되는 내면의 고독

시의 첫 연에서 화자는 “안개로 덮인 자갈길”, “어렴풋이 빛나는 별”, “광야의 적막한 밤”을 묘사하며 길 위의 고독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 자연묘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화자의 심리적 상태를 투영하는 상징적 무대다. 별빛과 신의 음성이 들릴 만큼 고요하고 숭고한 밤의 풍경은 외형적으로는 평온하고 장엄하지만, 그 안에 서 있는 화자는 오히려 더 큰 고립감을 느낀다.

이는 낭만주의 전통의 핵심인 ‘숭고함 속의 불안’을 그대로 드러낸다. 세계가 신비로울수록,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불완전함을 더 선명하게 경험한다는 역설이 작동한다.

2. 세계의 경이로움과 인간적 고통의 충돌

둘째 연에서 화자는 자연을 찬미한다. “하늘 모든 것이 장엄하고 경이롭구나 / 대지는 맑고 푸른빛에 잠들어 있는데”라는 구절은 조화로운 우주를 바라보는 경탄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질문, 아프고 날카롭다.

“나는 왜 이토록 아프고 괴로울까?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기다리는가?”

장엄한 우주와 괴로움에 쌓인 인간이 충돌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의 감성적 진폭이 극대화된다. 화자는 자연의 질서와 평화의 오묘함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속에는 원인 모를 상처와 미해결의 질문을 안고 있다. 이는 인간 내면의 공허함과 정체성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3. 해탈의 열망과 낭만주의적 허무

마지막 연에서 시는 더 깊은 내면으로 침잠한다. 화자는

“삶에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고

가버린 날에도 아쉬움이 없네”

라고 말하며 일종의 체념 또는 해탈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 체념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와 평화를 향한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다.

그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 / 다 잊고 잠들고 싶을 뿐”이라 말함으로써,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난 고요한 자기 발견의 순간을 꿈꾼다. 여기서의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존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근원적 평화를 뜻한다. 일종의 영혼의 안식, 또는 낭만주의적 의미의 ‘영원한 침잠’에 가깝다.

4. 전체적 해석: 떠도는 영혼의 자기 탐색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길 위의 방랑자를 그리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내면을 헤매는 영혼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외부 세계는 완전하고 조화롭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인간의 의식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고, 과거를 되돌아보며,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고통을 겪는다. 따라서 이 시의 핵심은 “외부 세계와 내면세계의 불화”이다. 누구나 스스로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독과 자기 성찰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레르몬토프는 이 시를 통해 세계의 아름다움보다 더 큰 무게를 지닌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며, 인간 존재가 지닌 비극성과 숭고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작가는 “홀로 걷는 길”이라는 시적 이미지를 통해, 인간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여정을 깊이 생각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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