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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브리스트

by 오시프 만델슈탐

by 김양훈

데카브리스트

오시프 만델슈탐

“이교도의 원로원이 증거이다”

이러한 일들은 소멸하지 않는다!

그는 긴 담배를 피우고,

두루마기의 옷깃을 여몄다,

그런데 옆에선 사람들이 체스를 두고 있다.


그는 야심만만한 꿈을 들리지도 않는 머나먼

시베리아 지방의 요새와 맞바꿨다,

이 세상의 애처로운 진실을 말하는

독기 서린 입술 근처의 화려한 담뱃대.


독일 참나무들이 처음으로 웅성거리고,

덫에 걸린 유럽이 눈물을 흘렸다.

승리의 전환점에서

네 마리의 검은 말이 끄는 이륜 전차가 날뛰었다.


잔에 든 하늘색 펀치 술이 타오르곤 했다.

넓게 퍼지는 사모바르의 소음과 함께

자유를 사랑하는 기타가

라인 강의 여자 친구가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살아 있는 목소리들이 여전히 흥분한다,

시민의 달콤한 자유에 대하여!”

그러나 희생자들은 눈먼 천국을 원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더 진실한 노동과 불변을.


모두가 뒤엉켰고, 말할 사람이 없고,

점점 추워지면서

모든 것이 뒤엉켰고, 달콤하게 반복한다.

러시아, 레테 강, 로렐라이.


[詩評]

불멸의 꿈, 레테를 건너는 네 마리의 검은 말: 오시프 만델슈탐의 「데카브리스트」

오시프 만델슈탐(Osip Mandelstam)의 시 「데카브리스트」(Декабрист)는 19세기 초 러시아 역사상 가장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데카브리스트의 봉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는 하나의 역사적 기록을 넘어, 시대를 초월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 숭고한 희생, 그리고 역사와 망각의 순환이라는 깊은 주제를 담고 있다.

데카브리스트: 러시아 자유주의의 서곡

데카브리스트는 1825년 12월(러시아어로 '데카브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니콜라이 1세의 즉위에 반대하며 봉기를 일으킨 일단의 러시아 귀족 장교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주로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하여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을 접한 청년 엘리트들이었으며, 러시아의 전제정치와 농노제를 철폐하고 헌법을 도입하여 국가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이상을 품었다. 그러나 봉기는 곧 진압되었고, 주동자 5명은 처형당했으며 수백 명이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다. 만델슈탐의 시는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묵상하며 시작된다.

“이교도의 원로원이 증거이다”

이러한 일들은 소멸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교도의 원로원'은 데카브리스트들이 봉기를 도모했던 비밀 결사 조직의 이념적 근거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들의 이상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확신은, 이 봉기가 실패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러시아 자유주의 역사에 불멸의 씨앗을 뿌린 정신적 사건임을 선언한다.

담배와 체스: 영웅의 일상적 비장미

시의 전반부, 만델슈탐은 봉기 직전 혹은 그들의 숙고의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는 긴 담배를 피우고,

두루마기의 옷깃을 여몄다,

그런데 옆에선 사람들이 체스를 두고 있다.

‘긴 담배’는 사색과 고뇌의 시간을, ‘두루마기’는 러시아적인 정체성을, 그리고 옆에서 진행되는 ‘체스’는 그들이 짊어진 대의명분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평온함, 혹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냉철한 전략적 사고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들의 결정이 가져온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는 야심만만한 꿈을 들리지도 않는 머나먼

시베리아 지방의 요새와 맞바꿨다,

데카브리스트들은 권력과 안락을 버리고, '야심만만한 꿈' 즉, 조국의 미래에 대한 이상을 위해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고난의 현실을 선택했다. '애처로운 진실을 말하는' 그들의 독기 서린 입술은, 시대의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섰던 지식인의 고독한 결단을 말한다.

유럽의 눈물과 레테: 역사와 망각의 교차로

만델슈탐은 데카브리스트의 정신적 뿌리를 유럽의 자유주의적 흐름과 연결 짓는다.

독일 참나무들이 처음으로 웅성거리고,

덫에 걸린 유럽이 눈물을 흘렸다.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유럽의 계몽주의와 혁명 정신을 흡수한 데카브리스트들의 사상은 '독일 참나무'로 상징되는 유럽의 지적 전통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은 러시아 내부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제주의의 억압 속에 갇힌 '덫에 걸린 유럽' 전체의 비극을 대변하고 있다.

후반부의 이미지는 낭만주의 시대의 살롱 문화와 봉기의 정신을 결합하고 있다.

잔에 든 하늘색 펀치 술이 타오르곤 했다.

넓게 퍼지는 사모바르의 소음과 함께

자유를 사랑하는 기타가

라인 강의 여자 친구가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펀치 술', '사모바르', '기타'는 데카브리스트들이 모여 이상을 논하던 친밀하고도 열정적인 러시아 귀족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불러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라인 강의 여자 친구'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에 나오는 로렐라이와 연결되며, 러시아의 비극적 봉기가 낭만주의적 이상과 유럽적 정서와 깊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진실한 노동과 로렐라이: 시대를 초월하는 메아리

시의 정점은 그들의 희생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구절이다.

그러나 희생자들은 눈먼 천국을 원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더 진실한 노동과 불변을.

데카브리스트들은 이상만을 좇는 맹목적인 '천국'이 아니라, 진실하고 변함없는 실천, 즉 '노동과 불변'을 통한 현실 개혁을 원했습니다. 만델슈탐은 여기서 그들의 행동이 단순한 꿈이 아닌, 역사 속에서 실제로 구현되어야 할 '진실'임을 강조한다. 시의 마지막은 시대를 초월하여 울려 퍼지는 모호하고도 강력한 메아리로 마무리된다.

모두가 뒤엉켰고, 말할 사람이 없고,

점점 추워지면서

모든 것이 뒤엉켰고,

달콤하게 반복한다.

러시아, 레테 강, 로렐라이.

'러시아', '레테 강' (그리스 신화의 망각의 강), 그리고 '로렐라이' (위험한 낭만적 매혹)라는 세 개의 상징적 단어가 뒤섞여 있다. 데카브리스트들의 희생은 러시아의 역사가 되었지만, 시간 속에서 잊힐 위험('레테 강')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낭만적이고도 비극적인 이야기는 '로렐라이'처럼 영원히 사람들의 영혼을 매혹하며 되풀이될 것임을 암시한다.

만델슈탐은 이 시를 통해 데카브리스트들이 품었던 고귀한 이상이 당대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처형되고 유배되었을지라도, 그들의 자유를 향한 정신은 러시아의 영적, 지적 토양에 깊이 뿌리내려 훗날에도 계속해서 메아리칠 불멸의 유산임을 웅변하고 있다. 이 시는 만델슈탐 자신의 운명, 즉 스탈린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시인의 고독하고 비극적인 저항 정신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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