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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by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Vladimir Mayakovsky)

by 김양훈

아침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음울한 비가 눈을 찌푸렸다.

강철 회로로 된 생각의

명료한

창살

너머에는―

새털 이불.


그리고 그

위로

떠오르는 별들의

발이 가볍게 얹혀졌다.


그러나 가로등의,

가스 왕관을 쓴

황제의 죽―

음은,

그걸 바라보는

적의를 품은 꽃다발 같은 거리의 창녀들을

더 아프게 했네.


그리고 사악한

농담,

쪼아대는 웃음은―

노랗게

독으로 물든 장미에서

지그재그로

피어났다.


소요와

공포 넘어

눈에 즐거운 풍경을

볼 것.


고통스럽고-평온하고-무심한

십자가들의

노예와,

사창가 집들의

묘지를

동녘 하늘은 어느 타오르는 꽃병 속으로 던져버렸다.


[詩評]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의 시 '아침'은 러시아 미래주의(Futurism)의 미학적 선언을 넘어, 20세기 초 러시아의 도시적 붕괴와 혁명적 희망을 가장 극적이고 예언적으로 담아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912년경 그의 나이 열아홉 살, 제정 러시아의 몰락 직전에 발표된 이 시는, 전통적인 서정 양식을 철저히 거부하고 언어의 충돌과 기계적 은유를 통해 낡은 세계의 죽음과 새로운 문명의 탄생이라는 격렬한 드라마를 연출한다.

1. 언어의 해체와 시각적 공격성

마야콥스키는 이 시에서 파편화된 줄 나눔(Staggered Line)을 통해 언어의 시각적 형태를 해체한다. 이는 독서의 리듬을 파괴하고, 마치 도시의 소음이나 기계 부품이 덜컹거리는 듯한 불안정하고 역동적인 청각적 효과를 창출한다. 이러한 형식적 실험은 시의 내용과 직결된다.

"강철 회로로 된 생각의 / 명료한 / 창살"

이 구절은 이성과 산업 문명이 인간의 정신(생각)을 강철처럼 차갑고 비인간적인 '창살' 속에 가두었음을 고발한다. 인간의 의식마저 도시의 기계적 질서에 의해 포획된 이 시대의 비극을, 마야콥스키는 가장 물질적이고 단단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음울한 비가 눈을 찌푸렸다'는 활유법은 자연적 요소마저 도시의 우울과 감정적으로 동기화된 상태임을 보여준다.

2. 가로등 황제의 죽음과 하층민의 조롱

시의 핵심 서사는 밤의 소멸, 즉 구시대의 몰락에 초점을 맞춘다. 마야콥스키는 밤의 지배자를 '가스 왕관을 쓴 황제'인 가로등으로 설정하며, 이에 대한 하층민의 태도를 통해 혁명적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가스 왕관을 쓴 / 황제의 죽음은, / 그걸 바라보는 / 적의를 품은 꽃다발 같은 거리의 창녀들을 / 더 아프게 했네."

'가스 왕관을 쓴 황제'는 곧 차르 체제나 부르주아적 권위의 허약함(가스)을 상징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몰락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창녀들'은 도시의 가장 소외된 계층, 즉 프롤레타리아를 은유한다. 그들은 낡은 권위의 소멸을 '적의를 품은 꽃다발'처럼 바라보며, '쪼아대는 웃음'과 '사악한 농담'을 던진다. 이 웃음은 낡은 질서에 대한 증오이자, 다가올 파괴에 대한 기대감이다.

이와 함께 등장하는 '노랗게 독으로 물든 장미'는 낭만주의적이고 전통적인 미(美)가 이미 병들고(노란색) 타락했음(독)을 선언하며, 마야콥스키의 파괴적 미학을 대변한다.

3. 타오르는 꽃병: 구원으로서의 파괴

시의 정점은 새벽의 빛이 낡은 세계의 잔해를 정화하는 장면에 있다.

"고통스럽고-평온하고-무심한 / 십자가들의 / 노예와, / 사창가 집들의 / 묘지를 / 동녘 하늘은 어느 타오르는 꽃병 속으로 던져버렸다."

'십자가들의 노예'는 러시아 정교회가 강요했던 무기력하고 고통스러운 전통과 순응의 삶을 상징하며, '사창가 집들의 묘지'는 도시의 퇴폐적이고 타락한 도덕성을 의미한다. 이 모든 낡고 병든 잔해들은 동녘 하늘, 즉 혁명적 미래의 태양이 빚어내는 '타오르는 꽃병' 속으로 던져져 소멸한다.

'타오르는 꽃병'은 그냥 일상적인 일출이 아니라, 과거를 불태워 정화하는 혁명의 불꽃이자, 마야콥스키가 꿈꾸었던 새로운 공산주의 세상의 도래를 의미한다. 시인은 '소요와 공포 넘어 눈에 즐거운 풍경'을 보겠다는 의지를 통해, 파괴가 곧 구원이라는 미래주의의 비전을 드라마틱하게 선언하고 있다.

마야콥스키의 '아침'은 이처럼 도시의 새벽이라는 캔버스 위에 언어와 이미지를 충돌시켜, 차르 체제의 몰락과 다가올 혁명의 시대를 통찰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위해 모든 낡은 것을 불태워야 한다는 미래주의의 불타는 열망을 불어넣은작품이다.

Vladimir Mayakovsky on Red Square, May 1st, 1928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마야콥스키(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Маяко́вский, 1893~ 1930)는 조지아의 추운 지방인 바그다티의 산림관(山林官)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쿠 유전지대의 혁명적 분위기는 소년기의 마야콥스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겨 볼셰비키 혁명 운동에 가담했다가 2년 동안 세 번이나 체포되었다. 그 후 모스크바의 미술학교에 입학, 미래파 시인 그룹에 속하면서 과거의 문학 유산 및 부르주아 문학의 전통에 대해 철저한 반항적 태도를 보였다. 노란색 재킷을 허리 아래까지 내려뜨려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는 화려한 복장 시위로 유명해진 마야콥스키는 실제 작품 면에서도 <바지를 입은 구름>(1915)이나 <등뼈로 만든 플롯>(1916) 등의 거친 리리시즘(lyricism)¹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마야콥스키는 혁명을 '나의' 혁명으로 받아들여 인간의 해방을 초래하고 개인의 역량을 개화시키는 혁명의 승리를 노래했다. 그는 모든 재능을 혁명의 대의명분을 위해 바쳤고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와 일상의 생활 속에서 시의 제재(題材)를 찾았다.

[註1] 리리시즘(Lyricism)은 주로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주관적인 감정이나 정서,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특성이나 경향을 말한다. 한국어로는 주로 서정성(抒情性) 또는 서정미(抒情美)로 번역한다.

그의 시법 또한 혁명적이었다. 토막토막 잘린 짧은 시구문이 그랬고 의미 및 음조를 강조할 수 있도록 단어를 행으로 나누어 나열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일상어의 교묘한 구사와 거친 유머의 사용도 혁명적이었다. 그는 집회나 공장에서 자작의 시를 자주 낭독했는데 그의 이러한 낭송하기 쉬운 시는 고정화된 시어의 파괴를 지향했고 억센 힘과 동적인 비유에 충만해 있었다. 거기에다 뛰어난 서정적 재능과 기발한 발상과 넘치는 유머 감각으로 해서 그의 작품이 단순한 프로퍼갠더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있다. 특히 혁명 초기의 작품이 그러하여 유토피아적이고 예언적인 밝음이 있다.

혁명 전부터 전위시인(前衛詩人)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의 창조적인 정열이 폭발한 것은 10월 혁명 이후로서 1918년 소련 극문학의 제일성(第一聲)이 된 <미스테리 부프>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장대한 비유 형식을 빌려 혁명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미래의 사회를 엮은 것으로 아리스토파네스²를 연상케 하는 활력이 있다. 한편 희곡 <빈대>(1928)와 <목욕탕>(1929)은 몽환희곡(夢幻戱曲), 혹은 기상천외의 풍자적 수법으로 시정인(市井人)의 근성과 관료주의를 폭로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비난한 서사시 <150000000>(1920)도 공상의 비약과 거친 유머에 차 있다. 20년대에 들어와 미래파의 옛 동지들을 중심으로 한 잡지 <레프>(예술좌익전선)를 발간, 전위적 문학운동의 중심이 되는 한편, 레닌의 죽음을 노래한 <블라디미르 일리이치 레닌>(1924) 등을 내놓았다.

[註2]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기원전 450년경~기원전 386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희극 작가이자, 오늘날까지 그의 44편의 작품 중 11편이 온전히 남아있는 유일한 고대 희극(戱劇, Old Comedy)의 대표 작가다. 그는 그리스의 황금기인 아테네 민주정 시대에 활동했으며,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를 풍자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그의 희극 연출 방법은 당시의 병화(甁畵) 등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에 의하면, 아주 외설스러운 듯한 모양이며, 대사에 넘쳐흐르는 식욕·성욕·금전욕 등에 대한 번뇌에서 볼 수 있는 노골적인 표현을 그대로 시각적으로 호소하는 듯한 가면의상(假面衣裳)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에 다른 작가와 아리스토파네스와의 사이에 큰 차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비극과는 달리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의 구성은 기발하고 풍자적인 에피소드를 대충 이어 맞춰놓은 것이 많아 극으로서의 각 부의 유기적 통일성의 결여, 나아가서는 이른바 희극적 성격의 불안전한 파악이라고 하는 결점 또한 다른 희극작가와 공통되는 점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위키백과> 발췌.

그러나 혁명의 정열을 격렬하게 노래하는 가운데 내부로부터 좌절감이 싹텄고 시사적 문제에 관해 노래하는 것이나 시를 낭독하는 일에도 싫증이 났다. 그의 국가에 대한 봉사는 자발적으로 자신이 부과한 의무였으나 그 노력도 헛되어 당시 점차로 재편성기에 접어든 문단을 차지한 관료적 권위자들이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1930년 4월 권총 자살을 했는데 죽기 직전에 쓴 유고에는 "사랑하는 작은 배는 세속에 충돌했다"라고 씌어 있었다. 그의 자살은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스탈린이 그를 소비에트의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세르게이 예세닌처럼 냉대를 받지는 않았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야콥스키의 명성은 높다.

Secret meeting with Lilya, Mayakovsky, Eisenstein, and Pasternak
Lilya Brik and Vladimir Mayakov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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