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물화」 6절

by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by 김양훈

「정물화」 6절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최근에 나는

환한 낮에 잔다.

아마도 나의 죽음이

나를 체험하는 것 같다,


거울을 입술에 대고

숨을 쉬어 본다

마치 내가

한낮의 비존재를 옮기는 듯.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두 허벅지가

얼음처럼 차다.

푸른 혈관이

대리석처럼 도드라진다.

이오시프 브로드스키(Iosif Brodskii, 1940-1997)의 시를 읽고 있으면, 사유가 아니라 감각이 시의 본령이라는 믿음을 수정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의 시편들에서 시적 사유와 감각이 경계 없이 넘나드는 풍경은, 문득문득 출몰하는 개념어들까지도 시적 육체로 감싸 안는다.
위의 시는 대체로 감각적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허벅지. 대리석처럼 도드라지는 푸른 혈관의 이미지. 잠과 죽음을 병치시키는 것은 낡고 상투적인 모티프이지만, 죽음이 잠을 통해 나를 체험한다는 시적 전도(轉倒)는 서너 개의 어휘만으로도 가볍게 삶과 죽음의 위치를 뒤바뀌어버린다. 이런 뛰어난 구절들은 브로드스키의 시적 감각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명성에 값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잠과 죽음의 사이에서 화자가 안간힘을 다해 확인하려는 것은 자신의 ‘존재’다. 두 번째 연에서 우리가 문득 만나는 “비존재(nebytie)”라는 어휘는 ‘존재(bytie)’라는 철학적 단어에 부정 접두어(ne)를 붙여 만든 관념적이며 문어체적인 단어다. 하지만 구체적이며 일상적인 어휘들 사이에 개입해 있는 이 관념어는 브로드스키 특유의 개인적이며 형이상학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정물화」 전반을 지배하는 관념적 아우라 안에서 ‘비존재’라는 어휘는 오히려 ‘시적’ 어휘로 승격된다. 마야콥스키의 의사(疑似) 관념어가 강력한 화자의 강력한 일인칭에 의해 시적 구체성을 얻는다면 브로드스키의 관념어들은 정말 철학자의 육체에서 발원한 듯한 느낌을 준다. 막 잠에서 깨어나 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입술을 거울에 대어 보는 섬세한 철학자의 감각이 그의 시에는 있다.
거울이 재현하는 ‘헛것으로서의 나’와 실존하는 나의 ‘존재’ 사이에 입김이 서릴 것이며, 이 입김을 통해 그는 위태로운 자신의 존재성을 겨우 확인할 것이다. 이런 구절들은 브로드스키의 관념어들이 어떻게 ‘관념적 육체성’이라고 부를 만한 시적 특성을 획득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 이장욱 著 「혁명과 모더니즘: 러시아의 시와 미학」(브로드스키의 생각하는 사물들) 中.
---
[註]'bytie'(비티에)는 슬라브어권에서 '존재', '실존', '삶'을 뜻하는 철학적, 문학적 용어로, 일상생활 속 영적인 의미를 담으며, 러시아 문화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이 단어는 또한 음악가, 일러스트레이터, 게임 캐릭터 등 다양한 분야의 이름이나 제목으로도 사용된다. *철학과 문학에서 '비티에(bytie)'는 인간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나 존재 자체를 의미하며, 존재론(ontology)과 연결된다.

[詩評]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정물화」 6절

이오시프 브로드스키(Iosif Brodsky)의 시 「정물화(Still Life)」는 1970년에 쓰인 연작 시의 일부로, 번역된 시의 6절은 특히 존재와 비존재,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유를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길지 않은 구절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이미지와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브로드스키 특유의 지적인 냉소와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핵심 주제 및 분석

1. 한낮의 비존재와 죽음의 체험

시의 도입부 "최근에 나는 / 환한 낮에 잔다"라는 구절은, 단순히 잠을 잔다는 행위를 넘어선다. '환한 낮'은 보통 활동과 생명력을 상징하지만, 화자는 이때 잠을 선택한다. 이는 의도적인 활동 중단이자, 역설적으로 생명력으로부터의 일시적 후퇴를 의미한다. 곧 이어지는 "아마도 나의 죽음이 / 나를 체험하는 것 같다"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적인 모티브를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죽음을 체험하지만, 여기서는 죽음이 주체가 되어 화자인 나를 체험하는 전복적인 구도가 설정된다. 이는 화자의 존재가 이미 비존재의 영역에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암시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을 포착한다. 화자는 이미 '정물화'처럼 고정되어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 죽음이라는 외부의 시선에 의해 관찰되는 대상이 된 것이다.

2. 호흡과 존재 증명의 역설

두 번째 연은 존재의 증명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그 방식은 지극히 불안정하다. 화자는 "거울을 입술에 대고 / 숨을 쉬어 본다"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려 한다. 이 행위는 삶의 가장 근원적인 징표인 '호흡'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 목적은 마치 죽어있는 상태를 재연하거나 확인하려는 듯하다. 뒤따르는 "마치 내가 / 한낮의 비존재를 옮기는 듯"이라는 구절은 화자의 존재가 '비존재'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고 운반하는 매개체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즉, 화자의 '숨'은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죽음의 징후 혹은 부재의 증거를 생산하는 역설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한낮의 비존재'라는 표현은 다시 한번 삶의 한가운데에서 역설적으로 비존재의 상태를 인식하는 화자의 심리를 강조한다.

3. 차가운 미감과 정물화 이미지

마지막 연은 화자의 육체에 대한 묘사를 통해 시의 제목인 '정물화'의 이미지를 가장 선명하게 완성한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정물화의 근본적인 속성인 정지와 고정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이어서 육체는 "두 허벅지가 / 얼음처럼 차다"라는 촉각적 이미지를 통해 생명력의 소실과 죽음의 임박을 차갑게 묘사한다. '얼음'이라는 차가운 비유는 1, 2연에서 암시된 죽음의 테마를 감각적으로 구체화한다.

클라이맥스는 "푸른 혈관이 / 대리석처럼 도드라진다"라는 구절에서 나타난다. '푸른 혈관'은 일반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체의 내부 순환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대리석'에 비유됨으로써 혈관의 역할은 생명 유지에서 조각상 혹은 기념비의 표면으로 변모한다. 대리석은 차갑고 단단하며 영구적인 물질로, 고대 그리스 조각처럼 정지된 완벽성과 동시에 생명 없는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살아있는 인간의 육체가 돌처럼 변해가는 과정, 즉 죽음으로의 이행을 극적으로 시각화하는 동시에, 화자의 몸이 시간의 흐름을 멈춘 완성된 예술 작품(정물화)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총평

브로드스키의 「정물화」 6절은 짧지만, 밀도가 높은 응축된 언어로, 삶과 죽음, 존재와 예술의 관계를 탐색하는 시다. 이 시는 단순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슬픔을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의 비존재 상태를 냉철하고 지적으로 관찰하는 화자의 태도를 통해 독특한 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역설적이고 섬뜩하리만큼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독자에게 깊은 사색을 요구하며, '정물화'라는 제목처럼 화자 자기 육체를 객관화하고 예술 작품화하려는 시인의 고독한 자기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에 대하여

고독과 망명의 언어,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시적 승리

이오시프 브로드스키는 20세기 후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시인이자, 냉전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러시아와 미국 문단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그의 삶은 문학적 천재성과 고독한 저항, 그리고 강제된 망명이라는 비극적 요소로 점철되어 있으며, 이는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동력이 되었다. 그가 살아낸 삶은 단순히 한 예술가의 연대기가 아니라, 전체주의 국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영혼을 어떻게 억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어떻게 생존하고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증언이다.

억압 속에서 꽃 피운 천재성: 초기와 재판

1940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브로드스키는 유대계 혈통으로, 소비에트 체제의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15세에 학교를 자퇴했다. 그는 자유로운 독서와 자발적인 학습을 통해 시적 재능을 키웠으며, 초기에는 안나 아흐마토바(Anna Akhmatova)와 같은 위대한 선배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시는 형식적 엄격함과 지적인 깊이를 갖추고 있었으나, 당대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멀었다.

브로드스키의 삶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1964년에 발생한 '사회 기생죄' 재판이다. 소비에트 당국은 정규 직업 없이 시만 쓰는 그를 '사회 기생분자(Social Parasite)'로 낙인찍어 기소했다. 법정에서 판사가 "당신이 일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묻자, 브로드스키는 "인류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미래입니다."라고 답변한 것은 그의 저항적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재판은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결국 그는 러시아 북부의 외딴 마을로 5년간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이 유배 기간은 혹독했지만, 그는 이곳에서 오히려 깊은 성찰과 독서에 몰두하며 시적 역량을 더욱 단련했다.

망명: 고독과 새로운 언어의 습득

1972년, 브로드스키는 당국의 압력으로 조국을 떠나 강제 망명길에 올랐다. 서방으로 추방된 그는 미국의 미시간 대학교 교수로 정착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 망명은 그의 삶에 깊은 상흔을 남겼지만, 동시에 그에게 언어적 자유문화적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모국어인 러시아어에 대한 집착과 고독 속에서 더욱 치열하게 시를 썼으며, 동시에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영어로 된 에세이를 발표하는 등 탁월한 문학적 이중생활을 해나갔다.

망명 이후 그의 시는 더욱 지적이고, 철학적이며, 동시에 고독과 소외의 정서가 짙어졌다. 특히 '시간(Time)'이라는 주제는 그의 시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요 모티브가 된다. 그는 시간을 곧 공간적 유배와 존재론적 고독의 근원으로 인식하며, 시의 형식적 구조와 리듬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통제하고 극복하려는 시적 투쟁을 벌였다.

시적 승리와 유산

브로드스키는 미국 망명 생활 중에도 꿋꿋이 시를 쓰고 대학에서 강의하며 문학적 명성을 쌓았다. 그의 에세이들, 특히 《슬픔과 이성》(Less Than One)은 탁월한 지성과 비평적 통찰을 보여주며 당대 최고의 산문가로 인정받게 했다.

1987년, 브로드스키는 "시와 산문 전반에 걸친 총체적 작품 활동, 특히 시대를 초월한 사유의 깊이와 격정적인 시적 명료성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점"을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던 한 시인이 세계 문학의 정점에 우뚝 선 시적 승리이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체제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

브로드스키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시인이 가져야 할 '언어의 절대적 우위'에 대한 신념을 피력하며, "시인이란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평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역설했다. 그의 시는 고전적인 운율과 엄격한 형식미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 그리고 문명의 몰락에 대한 지적 비관론을 담아냈다. 그의 시어는 차갑고 냉소적이지만, 그 기저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과 구원에 대한 희미한 희망이 깔려 있다.

브로드스키는 1996년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베니스에 묻히기를 원했고, 그의 유해는 그가 사랑했던 이탈리아의 산 미켈레 섬(Isola di San Michele)에 안장되었다. 그의 전기는 개인의 자유로운 목소리가 전체주의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끝내 승리할 수 있음을 증명한 모범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그의 시는 망명, 고독, 상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 자체가 곧 고향'이라는 믿음 아래 구축된, 20세기 가장 견고하고 빛나는 문학적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브로드스키와 '사회기생죄'에 대하여

[註]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사회기생죄(Social Parasitism)' 재판은 문학과 권력, 그리고 개인의 자유에 대한 논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20세기 냉전 시대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브로드스키와 '사회기생죄':
문학을 심판대에 세우다.

1. 시대적 배경과 '사회기생죄' 재판

1964년 2월, 당시 23세의 젊은 시인이었던 이오시프 브로드스키는 소비에트 연방의 레닌그라드에서 '사회기생죄'라는 명목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이는 공식적인 직업 없이 시를 쓰는 행위를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기생' 행위로 규정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한 1961년 법령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재판의 핵심은 브로드스키가 '노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표면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의 작품이 당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소비에트 체제에서 작가나 예술가는 국가의 공식적인 기관인 '작가동맹'에 소속되어야 했으며, 그들의 창작 활동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규범을 따라야 했다. 브로드스키는 이러한 틀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언어로 '자유로운' 시를 써왔다. 따라서 이 재판은 사실상 '문학 활동'에 대한 재판이자, 개인의 창조적 자유에 대한 국가의 탄압이었다.

2. 재판 기록: 문학과 권력의 대결

이 재판의 기록은 브로드스키의 문학 세계와 당시 소비에트 사법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브로드스키와 판사 간의 문답은 문학의 본질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판사: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브로드스키: 시인입니다.

판사: 시인으로서 누가 당신을 인정했습니까? 당신을 시인으로 인정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브로드스키: 아무도. 누가 인류에 저를 인정했습니까? 저는 작가동맹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신으로부터 시인임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화는 문학적 권위의 원천이 국가나 이데올로기에 있는지, 아니면 창조자 개인의 영혼과 재능에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충돌을 보여준다. 브로드스키에게 시 쓰기는 선택 가능한 직업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 소명이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은 그 소명을 '노동'이 아닌 '기생'으로 폄하하고 처벌하려 했다.

결국 브로드스키는 5년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받고 아르항겔스크 지역의 노넨스카야 마을에서 복역하게 된다.

3. '사회기생'의 의미 전복과 시적 승리

브로드스키는 감옥과 강제노동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시야를 더욱 확장한다. 물리적 자유를 박탈당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그의 시는 고독, 시간, 기억, 그리고 자유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 깊어진다. 그의 후기 시편들, 특히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브로드스키에게 '시인'은 단순한 직업을 넘어 언어의 최전선에서 진실을 수호하는 존재다.

브로드스키를 '사회기생충'으로 몰았던 소비에트 체제는 역설적으로 그의 문학적 위상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재판은 서방 지식인들에게 소비에트의 지식인 탄압 실태를 고발하는 증거가 되었고, 브로드스키를 자유와 예술적 저항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1972년, 브로드스키는 결국 소련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망명 이후에도 그의 시는 고향에 대한 상실감과 유럽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개인의 고독한 사유를 특유의 지적이고 복잡한 형식으로 표현해 냈다.

4. 문학사적 의의

브로드스키의 '사회기생죄' 재판은 단지 한 시인의 개인적 비극을 넘어, 다음과 같은 문학사적, 사회적 의의를 가진다.

*문학의 자율성 선언: 국가의 통제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자 한 시인의 숭고한 저항을 보여준다.

*권력 비판의 상징: 전체주의 체제가 예술과 지성을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드러내는 교과서적인 사례가 되었다.

*시적 깊이의 원천: 고통과 억압의 경험이 브로드스키의 시를 더욱 깊고 보편적인 진실로 이끌었다.

브로드스키의 '사회기생죄' 재판은 국가가 문학을 '노동'의 잣대로 재단하려 했을 때, 시인이 어떻게 저항했는지를 보여주는 20세기 문학의 중요한 기록이다. 그는 스스로를 '사회기생'으로 낙인찍은 체제에 대해 시라는 언어의 무기로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의 작품은 세상을 향해 진정한 자유와 예술의 가치에 대해 묻고 있다.

▪︎Iosif Brodskii=Iosif Brodsky=Joseph Brodsky이오시프 브로드스키=요시프 브로드스키=조셉 브로드스키▪︎


문학적 정체성과 언어적 전이: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이름 분석

이오시프 브로드스키(Iosif Brodsky, 1940-1996)의 이름에 니타나는 다중적 표기(이오시프/요시프/조셉)는 단순한 음역의 문제가 아닌, 한 시인의 복잡다단한 문학적 정체성과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언어적, 지리적 '전이(Transition)'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곧 그의 "망명 시학(Poetics of Exile)"을 대변하는 하나의 텍스트다.

1. 러시아적 근원과 'Iosif'의 음성적 무게

'Iosif Brodsky' (이오시프/요시프 브로드스키)라는 표기는 그의 문학적 기원, 즉 러시아 문화와 언어에 뿌리내린 그의 초기 시 세계를 반영한다.

'이오시프(Иосиф)'는 구약성서의 인물 '요셉(Joseph)'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형태이며, 이는 시인의 삶에 투영된 운명적인 고난과 유배의 서사를 은유적으로 암시한다.

이 이름은 그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낸 청년 시절과, 1960년대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사회 기생(social parasitism)' 혐의로 기소당했던 억압과 저항의 경험을 담고 있는, '원본'에 가장 가까운 음성적 표식이다.

2. 'Joseph Brodsky'의 영어식 채택과 정체성의 변형

1972년 추방 후 미국으로 건너가 1977년 시민권을 획득하며 공식적으로 'Joseph Brodsky' (조셉 브로드스키)를 사용한 것은 그의 정체성이 겪은 가장 결정적인 변형을 보여준다.

'Joseph'으로의 변환은 단순히 행정적인 절차를 넘어, 시인이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가진 채 영어를 새로운 모국어, 즉 문학적 안식처로 받아들이는 '언어적 귀화(Linguistic Naturalization)'의 순간을 나타낸다.

이는 그가 노벨 문학상(1987) 수상 연설에서 밝혔듯이, 언어를 '운명의 피난처'이자 '사유의 집'으로 여겼던 태도와 일치한다. 이제 그의 시는 러시아어로 쓰였지만, 그의 문학적 명성과 활동 무대는 영미권의 학계와 평단으로 옮겨갔다.

3. 언어 간의 전이(Transliteration)가 낳은 비극적 아이러니

브로드스키의 이름이 겪는 이오시프 → 요시프 → 조셉으로의 전이는, 그가 평생 짊어진 이중 언어, 이중 문화권의 경계인(Marginal Man)으로서의 숙명을 보여준다.

러시아 독자들에게 그는 여전히 'Iosif'였으며, 서구 독자들에게는 'Joseph'이었다. 하나의 이름이 두 개의 발음, 두 개의 국적을 품고 있는 이 현상은 브로드스키 문학의 핵심 주제인 '고향 상실(Nostalgia)'과 '정체성의 분열(Identity Fragmentation)'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결국 그의 이름은, 러시아어 시의 마지막 거장이었지만 영어로도 뛰어난 산문을 남긴 '경계의 예술가(Artist of the Border)'로서의 그의 지위를 확연히 드러내며, 문학사 속에서 영원히 두 개의 이름으로 공명하게 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겨울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