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의 'Poems by Yuri Zhivago' 中
겨울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눈보라가 휘몰아쳤지.
세상 끝에서 끝까지 휩쓸었지.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여름날 날벌레 떼가
날개 치며 불꽃으로 달려들듯
밖에서는 눈송이들이 창을 두드리며
날아들고 있었네.
눈보라는 유리창 위에
둥근 원과 화살들을 만들었고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 비친 천장에는
일그러진 그림자들
엇갈린 팔과 엇갈린 다리처럼
운명이 얽혔네.
그리고 장화 두 짝
바닥에 투둑 떨어지고
촛농이 눈물 되어 촛대서
옷 위로 방울져 떨어졌네.
그리고 모든 것은 눈안개 속에
희뿌옇게 사라져 갔고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촛불 날리고
유혹의 불꽃은
천사처럼 두 날개를 추켜올렸지.
십자가 형상으로.
눈보라는 2월 내내 휘몰아쳤지.
그리고 쉬임 없이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
[詩評] 〈겨울밤〉
혁명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파스테르나크의 고독한 영혼의 증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 1890-1960)의 시 〈겨울밤〉(Зимняя ночь)은 그의 유일한 장편 소설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유리 지바고의 시’ 중 가장 유명하며, 소설 전체의 주제를 응축적으로 담아낸 명작이다. 이 시는 격변하는 러시아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배경과 그 속에서 피어난 개인의 고독한 사랑, 그리고 예술적 영혼의 존재 양식을 '눈보라'와 '촛불'이라는 극명한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절묘하게 형상화한다.
1. 대비의 미학: 눈보라와 촛불
이 시의 구조는 중심 이미지인 ‘눈보라’(Метель)와 ‘촛불’(Свеча)의 상호작용과 대립에 의해 구축된다.
*눈보라: 시의 첫 연부터 “세상 끝에서 끝까지 휩쓸었지”라며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는 눈보라는, 러시아 혁명과 내전의 광기, 그리고 개인의 삶을 짓밟고 파괴하는 거대하고 냉혹한 역사적 폭력을 상징한다. 눈보라는 외부 세계의 혼돈과 무질서, 그리고 개인의 의지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운명적인 힘을 보여준다.
*촛불: 반면,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라는 반복 구절로 시 전체를 관통하는 촛불은, 눈보라가 상징하는 외부의 암흑 속에서 위태롭게 타오르는 개인의 영혼, 예술적 영감, 그리고 주인공 유리 지바고와 라라의 불멸적인 사랑을 상징한다. 촛불은 고립된 방 안에서 유일하게 생명력과 온기를 제공하는 존재이며, 꺼질 듯 흔들리면서도 끝내 타오르는 저항의 의지를 보여준다.
2. 사랑의 비극과 기독교적 수난의 이미지
뒤로 갈수록 촛불은 단순한 빛의 의미를 넘어 복합적인 뜻을 가지게 된다. 특히 네 번째 연에서 “촛불 비친 천장에는 / 일그러진 그림자들 / 엇갈린 팔과 엇갈린 다리처럼 / 운명이 얽혔네”라는 구절은, 지바고와 라라가 폭풍우 치는 밤에 함께 나누는 은밀하고 격정적인 순간을 암시한다. 그림자의 엇갈림은 두 사람의 운명적인 결합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비극적으로 얽히고 풀리지 않는 관계를 예고한다.
그 절정은 일곱 번째 연에서 나타난다.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촛불 날리고
유혹의 불꽃은
천사처럼 두 날개를 추켜올렸지.
십자가 형상으로.
이 ‘십자가 형상’의 이미지는 시의 중요한 상징적 전환점이다. 촛불은 이제 한낱 빛이 아니라 기독교적 희생과 수난의 상징이 되며,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이 세속적인 열정을 넘어 시대의 폭력에 맞선 영적인 순교의 의미를 내포함을 암시한다.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두 사람의 사랑이 시대의 풍파 속에서 언제든 꺼질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 마지막 불꽃이 만들어낸 십자가는 그들의 사랑이 파괴를 넘어 영원한 가치로 승화되었음을 선언하는 듯하다.
3. 반복과 리듬: 영원의 속삭임
“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 촛불이 타고 있었네.”라는 후렴구의 반복은 이 시에 음악성을 갖게하는 동시에, 격변하는 외부 세계(눈보라)와 대비되는 개인의 내면세계의 고독하고 변치 않는 리듬을 만들어 준다. 눈보라가 “세상 끝에서 끝까지 휩쓸었”고 “2월 내내 휘몰아쳤”듯이 역사는 끊임없이 폭력을 반복하지만, 촛불의 반복적인 존재는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지속하려는 영혼의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한다.
〈겨울밤〉은 파스테르나크가 러시아 혁명이라는 참혹한 시대를 관통하며 주장했던 '개인의 삶과 예술적 자유의 존엄성'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간결한 증언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 개인이 지닐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은, 바로 그 고독한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촛불' 같은 영혼을 지키는 것임을 이 시는 역설하고 있다. 이 불꽃은 결국 유리 지바고가 독자들에게 남긴, 모든 것을 초월한 생명력(Zhivago)의 메시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