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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카우프만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의 아내이자 당대의 유명 피아니스트

by 김양훈
음악과 문학의 교차로: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의 아내 로자 카우프만이 아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문학에 끼친 영향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의 문학 세계를 논할 때, 그의 어머니이자 저명한 피아니스트였던 로자 카우프만(Rosa Kaufman)이 드리운 예술적 그림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유명 화가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의 아내인 로자 카우프만은 아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기 예술적 감수성과 문학적 경향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가 보리스의 문학에 끼친 영향은 직접적인 주제나 서사보다는, 그의 스타일, 리듬, 그리고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피아노를 치는 라흐마니노프 by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

1. 음악적 구조와 시적 리듬

로자 카우프만의 가장 분명한 영향은 파스테르나크 시의 음악성에서 찾을 수 있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덕분에 보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 가득 울려 퍼지는 낭만주의 시대의 선율과 엄격한 클래식 음악의 구조 속에서 성장했다. 이러한 환경은 그가 시를 쓸 때 청각적 요소와 운율의 짜임새에 깊이 몰두하도록 이끌었다.

파스테르나크의 초기 시는 종종 산문보다 음악에 더 가깝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시는 단순한 의미 전달을 넘어, 음의 강약, 템포, 악센트가 만들어내는 복잡하고 미묘한 리듬의 변화를 통해 감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마치 음악 작품이 주제(theme)를 변주(variation)하듯이, 그의 언어는 특정 이미지나 감정을 반복하고 확장하며 독특한 청각적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음악적 구조에 대한 선호는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 특히 스크랴빈(Scriabin)과 같은 작곡가들의 격렬하면서도 섬세한 음악을 접하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2. '음악가'로서의 정체성 모색과 문학으로의 전이

파스테르나크는 문학을 선택하기 전, 한때 진지하게 작곡가의 길을 걸으려 했다. 이 짧지만 강렬했던 '음악가'로서의 정체성 모색은 전적으로 어머니인 로자 카우프만의 영향 아래 이루어졌다. 그녀는 아들의 재능을 믿고 적극적으로 음악 교육을 지원했다.

비록 파스테르나크가 작곡을 포기하고 문학으로 돌아섰지만, 이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에 깊고 긴 흔적을 남겼다. 음악을 포기했다는 '배신감' 또는 '결핍'은 그의 글쓰기를 음악의 본질을 언어로 재현하려는 시도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즉, 문학은 그에게 음악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하려는 대리적인 예술 형식이 되었다. 그의 소설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에서 유리는 종종 음악적인 영감을 통해 시를 쓰는데, 이는 작가 자신의 음악-문학적 전이 경험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모스크바의 릴케 by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

3. 예술적 환경과 '총체적 예술'의 경험

로자 카우프만의 예술가적 기질은 남편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의 미술 활동과 시너지를 이루어, 집안 전체를 당대 러시아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교류하는 문화적 중심지로 만들었다. 톨스토이(Tolstoy), 라흐마니노프(Rachmaninoff), 스크랴빈 등이 드나들던 이 환경에서 보리스는 미술, 음악, 문학이 경계를 허물고 상호작용하는 총체적 예술(Gesamtkunstwerk)¹의 경험을 했다.

[註1] 게삼트쿤스트베르크:
Gesamtkunstwerk, 즉 '총체적 예술'은 예술 용어를 넘어 19세기 유럽, 특히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미학적 이상을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개념이다. 독일어로 "통합 예술 작품(total artwork)"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예술의 파편화된 영역을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재통합하려는 열망의 산물이다.
[바그너, 음악극으로 통합을 선언하다] 이 개념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실현하려 했던 중심인물은 다름 아닌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였다. 바그너는 당대의 오페라가 화려한 아리아와 무대 장치에 치중하여 극의 본질인 '드라마'와 '시(詩)'적 요소가 희생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영감을 받아, 시(가사), 음악(오케스트라와 성악), 무용, 회화(무대 디자인), 건축(극장 설계), 연기(드라마)의 모든 요소가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고 하나의 드라마적 목적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그너에게 Gesamtkunstwerk는 단순히 여러 예술을 한 무대에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요소가 서로를 침범하고 보완하며 새로운 차원의 미학적 경험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대작인 《니벨룽의 반지》와 이를 위해 설계된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Bayreuth Festspielhaus)은 이러한 통합된 비전을 실현하려는 건축적, 음악적 시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예술로 확장되는 '통합'의 유산]Gesamtkunstwerk의 개념은 바그너의 오페라 무대를 넘어 20세기 현대 예술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건축과 디자인: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은 예술가와 장인의 구분을 철폐하고 건축, 공예, 디자인을 통합하여 '삶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다. 이는 환경 자체를 총체적인 미학적 경험으로 만들려는 Gesamtkunstwerk의 정신적 계보를 잇는 것이다.
*시각 및 행위 예술: 20세기 후반의 해프닝(Happening), 퍼포먼스 아트, 설치 예술은 관객을 단순한 관람자에서 벗어나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공간, 시간, 행위가 융합된 총체적인 예술적 환경을 조성하려 했다.
*미디어 아트: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아트나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들 역시 사운드, 영상, 코딩, 공간을 결합하여 몰입감 있는 경험을 제공하며, 이는 본질적으로 Gesamtkunstwerk의 현대적 발현이라 볼 수 있다.
[시대와 경계를 초월한 미학]결론적으로 말하자면, Gesamtkunstwerk는 예술이 단순한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이성을 동시에 자극하며 세계를 이해하는 총체적인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미학적 신념을 담고 있다. 이는 예술 장르 간의 엄격한 경계를 허물고,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 미학적 통일성을 제시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이자, 현재 진행형인 예술의 이상향으로 남아있다.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는 단순히 소리의 향연이 아니라, 그림자, 빛, 움직임과 결합된 종합적인 감각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파스테르나크의 문학에서 사물과 현상을 묘사할 때 공감각적(Synesthetic) 표현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예를 들어, 그는 소리를 색으로, 빛을 소리로 치환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음악가인 어머니와 화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감각의 혼합이며, 그의 문체를 독특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결론적으로, 로자 카우프만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게 피아노 선율 그 이상을 물려주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음악적 사고방식을 심어주었고, 이는 파스테르나크 문학의 리듬, 구조, 그리고 공감각적 표현이라는 세 가지 기둥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아들의 문학적 재능을 피워낸 예술적 토양 그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Self-portrait with his wife Rosa Kaufman by Leonid Paster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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