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불 켜진 창

by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

by 김양훈

또다시 불 켜진 창¹

마리나 츠베타예바


또다시 불 켜진 창

저 집 또다시 잠들지 못하네.

아마도 술을 마시거나

어쩌면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아니면 그저 두 사람

서로의 손 꼭 맞잡은 채,

친구여, 집집마다

그렇게 불 켜진 창이 있다네.


만남과 이별의 탄식 울리는

너, 한밤의 창이여!

아마도 백 자루 촛불,

어쩌면 단 세 자루 촛불…

이토록 나의 생각

안식을 모르네.

친구여, 기도해다오,

잠 못 드는 집을 위해,

불 켜진 창을 위해! (1916)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이명현 엮고 옮김) 창비세계문학 35

이명현은 러시아 문학 및 문화를 연구하는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러시아 모더니즘 시와 '러시아 은세기' 문화(19세기 말~20세기 초) 연구에 정통하며,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크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한국과 러시아 근현대 문학 비교 연구에도 힘쓰고 있다.
[註] 1) 「또다시 불 켜진 창」은 열한 편의 시로 이루어진 연작시 「불면증」(Bessonnitsa)의 열 번째 시다. 총 11편의 시로 구성된 연작시 「불면증」(Bessonnitsa)은 1916년 봄에 집중적으로 창작되었다. 츠베타예바는 이 연작을 통해 밤의 도시를 배회하거나 창가에서 보초를 서듯 깨어 있는 영혼의 상태를 탐구한다.
이 연작에서 '불면'은 저주가 아니라 일종의 선택된 고귀함으로 묘사된다. 모든 이가 잠든 시간, 홀로 깨어 있는 시인은 신의 섭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거나, 보이지 않는 타인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사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연작의 흐름 속에서 화자는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걷기도 하고, 종소리를 듣기도 하며, 결국 이 열 번째 시에 이르러 타인의 창문을 향한 간절한 기도로 나아간다.
어둠 속에 켜진 고독의 등불: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또다시 불 켜진 창」

러시아 은세기 문학의 가장 뜨거운 심장이었던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Marina Ivanovna Tsvetaeva)에게 '밤'과 '불면'은 단순히 생리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예민한 감수성이자, 타인의 고통과 고독에 접속하는 영적인 통로였다. 그녀의 연작시 「불면증」(Bessonnitsa) 중 열 번째 시인 이 작품은, 밤의 정적 속에서 홀로 깨어 있는 자가 느끼는 유대감과 근원적인 슬픔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시대적 배경:
격동의 러시아와 시인의 실존적 불안

이 시가 쓰인 1916년은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위태로운 시기 가운데 하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정점에 달해 있었고, 이듬해 터져 나올 러시아 혁명의 전조가 제국 전역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었다. 츠베타예바는 모스크바에서 이 격변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 지식인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낡은 시대의 몰락을 바라보며, 깊은 허무주의와 불안에 빠져 있었다. 츠베타예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한 안식처가 아니었으며, 개인의 내면은 시대적 폭풍우에 노출된 가냘픈 촛불과 같았다. 이러한 시대적 불안은 그녀를 잠 못 들게 했고, 그녀의 시적 화자는 밤새도록 창밖의 불빛을 응시하며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

이 시기 츠베타예바의 삶은 '결핍'과 '갈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남편 세르게이 에프론은 군에 복무 중이었고, 그녀는 홀로 아이를 키우며 시적 영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러한 개인적 고립감은 시 속에서 '잠들지 못하는 집'들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한다.


Marina Tsvetaeva. 1939

[詩評] 연대와 기도로 승화된 고독

타인의 삶을 향한 따스한 응시

시의 시작은 관찰입니다. "또다시 불 켜진 창"을 보며 화자는 그 안에 담긴 서사를 짐작한다. 술을 마시는 방탕함일 수도,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실의일 수도, 혹은 두 손을 맞잡은 사랑의 순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 밤에 깨어 있는 자들은 모두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동료라는 점이다. 츠베타예바는 이를 "친구여, 집집마다 그렇게 불 켜진 창이 있다네"라는 다정한 어조로 확산시킨다.

촛불의 메타포와 내면의 안식

"백 자루 촛불"과 "단 세 자루 촛불"의 대비는 화려한 축제와 초라한 고독을 동시에 상징한다. 하지만 촛불의 개수는 중요하지 않다. 화자는 타인의 창문을 바라보다 문득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이토록 나의 생각 안식을 모르네. 우리 집에도 그런 창이 생겼네." 타인을 향하던 시선이 내면으로 수렴되는 이 순간, 화자의 불면은 세상 모든 불면과 하나로 연결된다.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밤의 창가에서 각자의 촛불을 켜고 있다는 깨달음이다.

기도로 맺는 연대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독자(혹은 보이지 않는 청자)에게 요청한다. "친구여, 기도해다오, 잠 못 드는 집을 위해." 이는 츠베타예바 시학의 정수다. 그녀는 고독을 개인의 불행으로 가두지 않고 '공동의 기도'로 끌어올린다. 전쟁과 혁명의 불길이 곧 닥쳐올 운명 앞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서로의 창가에 켜진 불빛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결론]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또다시 불 켜진 창」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닌다. 현대인들에게도 밤에 켜진 창문은 소외와 고립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츠베타예바는 비극적인 생애를 살았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이 시에서만큼은 가장 따스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듬는다. 1916년의 모스크바나 지금의 도시나, 불면의 밤을 보내는 영혼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녀의 시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당신의 창에 불이 켜져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는 당신의 안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 시는 고독을 슬퍼하는 노래가 아니라, 고독을 통해 타인에게 닿으려는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손짓이다.


천상에서 맞잡은 두 손:
시적 영혼 츠베타예바와 릴케

문학의 역사 속에는 현실의 물리적 거리와 시간의 제약을 비웃듯, 오직 '언어'라는 투명한 실로 연결된 운명적 조우가 존재한다. 러시아의 격정적인 영혼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와 독일어권 최고의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관계가 바로 그러하다. 이들의 교류는 1926년이라는 단 한 해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 밀도와 깊이는 한 세기의 문학사를 관통할 만큼 강렬했다.

1. 지상의 유배자들이 만든 '제3의 영토'

1926년, 츠베타예바는 혁명 후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에서 비참한 망명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고국에서는 잊혔고 타국에서는 이방인이었던 그녀에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통해 연결된 릴케는 단순한 동료 시인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평생을 바쳐 추구해 온 '시적 진리'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실제로 만나 손을 맞잡거나 눈을 맞춘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편지를 통해 서로의 영혼을 가장 깊숙이 응시했다. 릴케는 스위스의 뮤조트 성에서 백혈병과 사투를 벌이며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고, 츠베타예바는 가난과 고립 속에서 시적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읽는 행위는 현실의 고통을 증발시키고, 시적 실존만이 허용되는 '천상의 영토'를 창조하는 의식(儀式)이었다.

2. 츠베타예바의 고백: "당신은 언어 그 자체입니다"

츠베타예바가 릴케에게 보낸 편지들은 그 자체로 절절한 산문시다. 그녀는 릴케를 향해 지상의 언어가 아닌, 영혼의 언어로 말을 건넸다.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는 릴케라는 존재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라이너,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시를 읽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안 뒤로, 나는 당신이라는 시 속에서 삽니다. 당신은 독일인이 아닙니다. 당신은 언어입니다. 당신은 독일어보다 더 깊은 곳에서 태어난 시 그 자체입니다.“

이 고백은 츠베타예바가 릴케를 문학적 우상을 넘어 자신의 영적 뿌리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릴케는 국적이나 육체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목소리를 지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3. 릴케의 응답: 츠베타예바에게 바친 헌사

릴케 역시 츠베타예바의 강렬한 생명력과 시적 재능에 깊이 매료되었다. 죽음을 예감하던 노(老)시인은 러시아에서 온 이 젊고 뜨거운 영혼에게 자신의 마지막 시적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릴케가 그녀에게 헌사한 시 「마리나에게(An Marina)」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이 담겨 있다.

"오, 마리나,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는 끊임없이 흐르며 서로를 스치네.

우리의 눈길은 저 별들 사이에서 교차하고,

우리는 이 지상의 중력을 견디며

서로를 향해 떨어지네.“

릴케는 이 시를 통해 자신들의 만남이 지상의 인연이 아닌, 우주적 질서 속에서의 조우임을 선언했다. 그는 츠베타예바를 '바다(Marina)'에 비유하며, 자신의 영혼이 그녀라는 거대한 물결 속으로 잦아들고 있음을 표현했다.

4.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연대

1926년 12월 릴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츠베타예바의 슬픔은 우주적 상실에 가까웠다. 그녀는 릴케의 죽음 이후에도 그에게 편지를 썼다. "라이너, 이제 당신은 어디에나 있군요. 당신은 내가 쓰는 모든 시의 공기가 되었습니다."라고 말이다.

문학사적 시야에서 이들의 관계는 '고독의 가장 높은 형태'가 어떻게 타인과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츠베타예바의 「불면증」 연작에서처럼 밤을 지키던 그 '불 켜진 창'은, 결국 국경과 죽음의 벽을 넘어 릴케의 창문과 하나의 빛으로 합쳐진 것이다. 이들의 서간은 인간이 육체 없이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시가 어떻게 죽음마저 초월하는 연대의 도구가 되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고귀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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