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아흐또바 백 주년을 기리며

by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by 김양훈

안나 아흐또바 백 주년을 기리며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종잇장에 등불, 알곡과 절구

도끼날과 잘려진 머리칼―

신은 그 모든 것을 보존하신다. 특히

이별과 사랑의 말들을, 마치 자신의 음성인 양.

그 속에서 뛰는 단속적인 맥박 소리,

-뼈 바서지는 소리

삽으로 두드리는 소리, 균일하고 아득한데,

삶은 단 하나이므로,

-필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들

천상의 그름 사이로 들려오는 말씀보다

-더 낭랑하게 울린다.


위대한 영혼이여, 그대가 그 말들을 찾았음에

바다 저편으로 경배를 올린다.

-그대와 고향 땅에 잠든

썩어가는 육신을 향해, 귀먹고 눈먼 우주 속에서

말의 재능을 발견한 그대에게 감사드리며.

(1989)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이명현 엮고 옮김) 창비세계문학 35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 1940~1996 )가 자신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안나 아흐마토바(Anna Akhmatova, 1889~1966)를 기리며 쓴 이 시는, 단순한 추모시를 넘어 ‘말(언어)의 영원성’에 대한 선언과도 같다.

[詩評]

이 시의 핵심은 ‘필멸의 삶’과
‘불멸의 언어’ 사이의 대조에 있다.

•신의 보존 방식: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신(神)은 인간의 하찮은 물건인 절구와 도끼날뿐만 아니라, 특히 인간이 뱉은 ‘사랑과 이별의 말’을 자신의 음성처럼 소중히 보존한다고. 이는 아흐마토바가 남긴 시어(詩語)들이 신적(神的)인 가치를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육체적 고통과 영적 승화: "뼈 바서지는 소리", "삽으로 두드리는 소리(매장의 이미지)"는 아흐마토바가 겪은 가혹한 삶과 수용소의 비극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천상의 목소리보다 더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우주적 감사: 브로드스키는 "귀먹고 눈먼 우주", 즉 무심하고 잔인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언어'라는 재능을 통해 인간의 품격을 지켜낸 그녀의 영혼에 경배를 올린다.

Joseph Brodsky and Anna Akhmatova
브로드스키와 아흐마토바의 관계:
스승과 제자 그 이상

두 사람의 관계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신적 계승 중 하나로 꼽힌다.

•만남: 1961년, 20대의 청년 시인이었던 브로드스키는 이미 거장이 된 아흐마토바를 만난다. 아흐마토바는 브로드스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아흐마토바의 고아들(그녀를 따르던 젊은 시인 그룹)' 중 한 명으로 받아들였다.

•정신적 지주: 브로드스키가 '사회적 기생충'¹이라는 죄목으로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았을 때, 아흐마토바는 그의 구명 운동에 앞장섰다. 그녀는 브로드스키에게 "시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비굴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도덕적 엄격함을 가르쳤다.

•문학적 유산: 브로드스키는 훗날 "그녀를 만난 것 자체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아흐마토바는 그에게 러시아 고전시의 전통과 엄격한 형식을 전수했다.


시대적 배경과 문학사조

1. 시대적 배경: 스탈린주의와 '해빙기' 사이

아흐마토바가 살았던 시대는 피의 숙청이 자행되던 스탈린 시대였다. 그녀의 첫 남편인 니콜라이 구밀료프는 조작된 음모사건으로 총살형을 받았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레프는 반복되는 체포 끝에 결국엔 수용소에 갇혔고, 그녀의 시는 검열당했다. 브로드스키가 활동하던 1960년대는 소위 '해빙기'였으나 여전히 반체제 작가들에 대한 탄압이 존재했다. 이 시는 아흐마토바 탄생 100주년(1989년)에 쓰였는데, 이때는 소련이 붕괴하기 직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시기로, 금기시되었던 위대한 시인들을 다시 공식적으로 기릴 수 있게 된 시점이었다.

2. 문학사조: 아크메이즘(Acmeism)

아흐마토바는 아크메이즘 운동의 기수였다.

•특징: 당시 유행하던 모호한 '상징주의'에 반대하여,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미지, 절제된 감정, 단단한 시적 형식을 중시했다.

•시적 영향: 본문 중 "알곡과 절구", "도끼날" 같은 구체적인 사물의 등장은 이러한 아크메이즘적 전통을 따르고 있다. 브로드스키는 이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서구의 형이상학적 시 전통과 결합시켰다.

요약: 말(언어)은 죽음을 이긴다

브로드스키는 이 시를 통해 육신은 썩어 고향 땅에 잠들지라도, 시인이 발견해 낸 '말'은 우주의 허무(귀먹고 눈먼 우주)를 뚫고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진리를 노래했다. 그것은 그가 스승 아흐마토바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였다.

[註1] 이오시프 브로드스키가 '사회적 기생충'이라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은 사건은 20세기 문학사에서 국가 권력이 예술적 재능을 어떻게 탄압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에피소드다. (아래 글 참조)

"누가 당신을 시인으로 임명했소?"

1964년, 당시 23세였던 청년 시인 브로드스키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법정에 서게 된다. 당시 소련 당국은 정해진 직장 없이 시를 쓰고 번역을 하던 그를 '사회적 기생충(Social Parasite)'으로 몰아세웠다.

1. 법정에서의 전설적인 문답

재판 과정에서 판사와 브로드스키 사이에 오간 문답은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판사: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

‣브로드스키: 나는 시를 쓰고 번역을 합니다.

‣판사: 누가 당신을 시인으로 인정했나? 당신을 시인의 대열에 합류시킨 자가 누구냐?

‣브로드스키: (담담하게)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나를 인류의 일원으로 임명했습니까?

‣판사: 시인이 되기 위해 공부를 했나?

‣브로드스키: 공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판사: 그럼 무엇으로 되나?

‣브로드스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답변은 "예술은 국가의 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천부적인 소명"이라는 예술가의 자존감을 드러낸 대담한 반항이었다.

2. 재판의 결과와 유배

결국 브로드스키는 '노동 기피 및 사회적 기생 행위'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북극권 근처의 아르한겔스크주로 유배되어 5년 동안 강제 노동 형을 선고받았다. 쇠똥을 치우고 돌덩이를 나르는 고된 노동을 해야 했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등불 아래 시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3. '비밀 녹취록'의 힘

당시 재판정에 잠입했던 언론인 프리다 비그도로바(Frida Vigdorova)가 이 문답을 몰래 기록하여 서방 세계에 폭로했다. 이 비밀 녹취록이 공개되자 장 폴 사르트르, 안나 아흐마토바 등 전 세계 지식인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결국 브로드스키는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18개월 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

그 이후: 망명(Exile)에서 노벨상까지

소련 당국은 그를 계속 감시했고, 결국 1972년 그를 강제로 해외로 추방했다. 비행기 티켓 한 장만 든 채 고국을 떠난 브로드스키는 미국으로 망명했고, 198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자신이 '사회적 기생충'이 아닌 '인류의 보석'임을 증명해 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시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 브로드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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