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나를 묻어다오

by 안나 아흐마또바

by 김양훈

바람아 나를 묻어다오

안나 아흐마또바


바람아 나를 묻어다오, 바람아!

아는 이는 아무도 오지 않았고

내 죽은 육신 위에는

방랑하는 저녁과 대지의 적막한 숨결뿐.


나 또한 너처럼 자유를 노래했었다.

그러나 삶은 너무도 큰 유혹이었다

보라, 바람이여, 차디찬 내 육신을

내 임종을 지켜볼 이 아무도 없구나.

저녁 어둠의 수의로

이 검은 상처를 덮어다오

푸르른 안개에게

나를 위해 시편을 읽으라 말해다오.


내 외로운 영혼이 가볍게

마지막 잠으로 떠나가도록

울어라, 바람이여! 키다리 사초 ¹처럼

가버린 봄을, 가버린 나의 봄을 기리며.


석영중 옮기고 엮음, 『레퀴엠』혁명기 러시아 여성시인 선집(고려대학교 출판부, 2004) 中


사초(莎草, sedge)
[註] 사초(莎草, sedge)는 벼목과와 모양이 비슷하나 줄기가 세모 형태로 각(角)지며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 풀이 주류다. 2000종이 넘는 사초속 식물의 분류나 구분 설명은 웬만한 식물학자들도 어려워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사초는 자랄 때는 벼와 비슷해 보이지만 줄기 단면이 삼각형인 사초과의 외떡잎식물로, 습지나 척박한 들판에서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인류 최초의 종이인 파피루스나 돗자리를 만드는 왕골 등이 모두 이 사초과 사초속에 속한다.
문학적으로 사초는 가늘고 긴 줄기가 바람에 흔들릴 때 내는 '서걱거리는 소리' 때문에 고독과 슬픔을 대변하는 식물로 자주 등장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군락을 이루어 자라기에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아흐마토바의 시 <바람아 나를 묻어다오>에서 사초는 화자의 임종을 지켜보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바람과 함께 곡(哭)을 하는 장례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화자는 사초가 바람에 부대끼는 처연한 소리를 통해 자신의 가버린 청춘과 고통스러운 삶이 위로받기를 소망한다. 즉, 사초는 인간이 외면한 화자의 영혼을 보듬어 주는 대자연의 슬픈 목소리라 할 수 있다. 어릴 적 제주에선 ‘고랭이’라고 불렀던 기억!
Anna Akhmatova, 1921. Gouache, crayon and pencil on paper, 50.3x32.6cm. by Yuri Annenkov(1889-1974)

러시아 시문학의 ‘은세기’를 대표하는 거장 가운데 한 사람, 안나 아흐마토바(Anna Akhmatova)의 이 초기 시는 상실과 고독, 그리고 운명에 맞서는 시적 자아의 애처로운 호소를 담고 있다.

1. 시대적 배경: 격동의 러시아와 '은세기'

이 시가 쓰인 20세기 초반(1910년대) 러시아는 제국이 몰락하고 혁명의 기운이 감돌던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다.

•아크메이즘(Acmeism) 운동: 아흐마토바는 당시 유행하던 모호하고 상징적인 시풍에 반대하여, 구체적이고 선명한 이미지를 중시하는 ‘아크메이즘’ 유파의 핵심이었다. 이 시에서 '바람', '상처', '수의' 같은 단어들이 매우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개인적 고난: 아흐마토바는 화려한 명성을 얻었으나, 뒤이어 닥친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체제 아래에서 남편(니콜라이 구밀료프)이 처형당하고 아들이 수감되는 등 모진 풍파를 겪었다. 이 시는 그 비극이 본격화되기 전인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닥칠 고립된 운명에 대한 예언적 슬픔이 투영되어 있다.

2. [시평] 고독을 승화시키는 '바람의 장례식'

•바람에게 맡긴 마지막 부탁

이 시의 화자는 철저하게 혼자다. 임종을 지켜볼 사람도, 무덤을 파 줄 사람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화자가 손을 내미는 대상은 오직 '바람'뿐이다. 인간 사회에서 소외된 영혼이 자연의 원소인 바람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모습은 처절하면서도 숭고하다.

•삶이라는 유혹과 죽음의 대비

"나 또한 너처럼 자유를 노래했었다

그러나 삶은 너무도 큰 유혹이었다"

이 구절은 시의 핵심이다. 바람처럼 자유롭기를 갈망했으나, 인간으로서의 삶, 사랑, 혹은 세속적인 고통에 매여 있었음을 고백한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야 비로소 그 '유혹(삶)'으로부터 벗어나 대지의 적막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시각적 이미지와 종교적 승화

•검은 상처와 저녁 어둠의 수의: 자신의 고통을 밤의 어둠으로 덮으려는 시도는 아픔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이다.

•시편을 읽는 안개: 죽음을 단순히 끝으로 보지 않고, 안개가 읊어주는 기도를 통해 영혼이 가볍게 떠나기를 바라는 종교적·영적 평온함을 추구한다.

총평

이 시는 극한의 고독 속에서도 잃지 않는 인간의 품격을 보여준다. 아무도 오지 않는 죽음 앞에서도 비굴해지지 않고, 자연(바람, 안개, 사초)을 자신의 장례위원으로 초대함으로써 슬픔을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치환한다. '가버린 나의 봄'을 슬퍼하며 우는 바람 소리는,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 깊은 공명으로 남는다.


여담(餘談)


찰나의 선과 영원한 문장:
모딜리아니와 아흐마토바

1910년과 1911년 사이, 파리의 몽파르나스 거리에서는 20세기 예술사에서 신비롭고도 순수한 두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졌다. 이탈리아에서 온 무명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러시아의 젊은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만남은 비록 짧은 시간에 불과했으나, 그들이 서로의 생애에 남긴 흔적은 예술적 뮤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들이 교류하며 사랑을 나눈 몽파르나스는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마침내 도달한 '예술의 성소'와 같았다.

크로키 : 아흐마토바 by 모딜리아니
모딜리아니는 아흐마토바를 모델로 많은 크로키를 그렸지만, 러시아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부분 소실되었다. 아흐마토바는 침대 머리맡에 평생 모딜리아니가 그려준 자신의 드로잉 한 점을 걸어두었다.

모딜리아니에게 아흐마토바는 단순히 모델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외면에서 고대 이집트 왕비와 같은 고귀한 아우라를 발견했으며, 이는 그의 독창적인 화풍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두 사람은 혹독한 가난 속에서도 공원 벤치에 앉아 비를 피하며 베를렌의 시를 읊조렸고, 루브르 박물관의 이집트 유물실을 거닐며 지적 교감을 나누었다. 모딜리아니가 아흐마토바를 그린 수많은 드로잉 중 그녀가 평생 머리맡에 간직했던 단 한 점의 크로키는 "외모가 아닌 영혼을 그린 것"이라는 그녀의 고백처럼, 육체적 매력을 넘어선 그녀의 내적 아름다움을 그린 작품이었다.

이들의 짧았던 사랑과 교류가 숭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뒤에 이어진 비극적인 삶의 모습 때문이다. 모딜리아니는 서른다섯의 나이에 요절하며 전설이 되었고, 아흐마토바는 러시아의 혹독한 정치적 탄압과 전쟁 속에서 고통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노년의 회고록에서 모딜리아니를 "내 인생의 단 한 번뿐인 빛"이라 기록했다. 이는 그 짧았던 파리에서의 시간이 그녀에게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평생을 버티게 해 준 예술적 원동력이었음을 시사한다.

Amedeo Modigliani의 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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