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벨라 아흐마둘리나
우리가 헤어질 때
벨라 아흐마둘리나
우리가 헤어질 때
낯설음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변절을 향한 열정이 그토록 위대해
강물은 기슭을 꺼리고
구름은 하늘에 냉담하고
왼손은 오른손을 흔들며
거만하게 말합니다-안녕!
4월은 이미 5월을 예고하지 않고
당신에겐 결코 5월이 보이지 않습니다.
산산이 흩어지는 오랑캐꽃
아, 노란색과 푸른색의 적의!
여름은 자기가 만든 초목을 짓밟고
시공의 길이는 넓이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하여 흰색은 죽어 버리고
일곱 빛깔만이 고아처럼 남았습니다.
몰락한 자연
밀물이 된 썰물
그리고 소리는 잠잠해집니다.
우리 이별의 술잔에서.
석영중 옮기고 엮음, 『레퀴엠』혁명기 러시아 여성시인 선집(고려대학교 출판부, 2004) 中
벨라 아흐마둘리나의 「우리가 헤어질 때」는 이별이라는 보편적인 슬픔을 단순한 감상에 가두지 않고, 온 세상의 질서가 해체되고 우주적 균형이 무너지는 거대한 '파국(破局)'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시평] 해체되는 세계와 소멸의 미학
이 시에서 '이별'은 단지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던 모든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실존적 위기를 의미한다.
■낯설음과 절연: 시의 도입부에서 "낯설음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표현은 이별 후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강물과 기슭, 구름과 하늘처럼 본래 하나였던 것들이 서로를 거부하고 냉담해진다. 심지어 자신의 '왼손'이 '오른손'에게 작별을 고한다는 대목은 자아 내부의 분열과 소외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시간과 색채의 붕괴: 4월이 5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생의 연속성이 파괴되었음을 뜻한다. 특히 "흰색은 죽어 버리고 일곱 빛깔만이 고아처럼 남았다"라는 표현은 이 시의 압권이다. 모든 색을 품고 있던 순수한 통합체인 '흰색'이 사라지고, 남겨진 색들이 '고아'가 되었다는 설정은 이별이 가져온 존재론적 고독을 시각화한다.
■적의와 몰락: 꽃의 노란색과 푸른색이 서로 '적의'를 품고, 여름이 자신이 키운 초목을 짓밟는 행위는 자연의 섭리마저 뒤집혔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이별은 "밀물이 된 썰물"처럼 방향을 잃은 혼돈이며, 모든 소리가 잦아드는 죽음과 같은 침묵으로 귀결된다.
러시아 시의 '보석', 벨라 아흐마둘리나
벨라 아흐마둘리나(Bella Akhmadulina, 1937–2010)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음성을 가진 시인 중 한 명이다.
•혈통과 예술성: 타타르족 아버지와 러시아·이탈리아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동양적인 신비로움과 서구적인 세련미가 공존하는 외모와 목소리를 가졌다. 그녀의 시는 섬세하면서도 고전적인 격조를 유지하여, '러시아 시의 태양' 푸시킨과 은세기 시인들의 전통을 잇는 후계자로 평가받는다.
•낭독의 여왕: 그녀는 단순히 글을 쓰는 시인이 아니라, 노래하는 듯한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낭독하여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낭독회는 늘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으며, 시 자체가 가진 음악성을 극대화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시대적 배경: '해빙기'의 열망과 상실
이 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 이른바 '해빙기(The Thaw)'라 불리는 소련의 시대적 상황을 보아야 한다.
•스탈린 사후의 자유: 스탈린의 철권통치가 끝나고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소련 사회에는 유례없는 자유의 바람이 불었다. 금기시되었던 개인의 감정과 내면적 고통이 문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세대 시인들의 등장: 아흐마둘리나는 에브투셴코(한때 그녀의 남편이기도 했던), 보즈네센스키와 함께 이 시대를 상징하는 '신세대 시인'의 선두 주자였다. 이들은 국가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개인(Individual)'의 삶과 사랑에 집중했다.
•정치적 압박과 실존적 고뇌: 그러나 해빙기는 짧았다. 다시 검열이 강화되고 자유가 위축되는 과정에서 시인들은 깊은 환멸과 상실감을 느꼈다. 「우리가 헤어질 때」에 나타나는 '변절', '냉담', '몰락'과 같은 어두운 시어들은 개인적인 연애의 실패를 넘어, 자유를 갈망하던 한 시대의 꿈이 저물어가는 풍경을 은유적으로 투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結]
벨라 아흐마둘리나의 시는 이별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슬픔을 통해 '관계의 단절이 곧 세계의 종말'임을 선언한다. 그녀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언어의 기품을 잃지 않으며, 상처 입은 영혼이 느끼는 감각을 예리하게 포착하였다.
이 시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변함없는 울림을 준다. 사랑하는 대상과 분리되는 순간, 우리가 믿었던 상식적인 세계(4월 뒤에 5월이 오고, 밀물 뒤에 썰물이 오는 질서)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