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
질투의 시도
마리나 츠베타예바
다른 여자랑 사니 어때요,―
편하죠?―노를 내려친다!―
강둑의 선을 따라
나, 울고 있는 섬에 대한
기억이 서둘러 사라진 건지
(강물이 아니라―하늘을 따라!)
영혼, 영혼들아! 너희는 자매가 되어라,
정부(情婦)는―되지 말아라!
그저 그런 여자랑 사니
어때요? 우상 없이?
왕후를 왕좌에서
끌어 내리고(그곳에서 내려오시었도다),
수선 떨고―웅크리고 살아보니
어때요?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건―어때요?
불멸하는 저속함으로 세금도
내는지요, 가난뱅이여?
“시도 때도 없는 발작도―
지겨워! 내 집을 구하겠어.”
아무랑 살아보니 어때요―
내가 선택한 이여!
입에 맞고 먹을 만한가요―
음식은? 질리더라도―투정 마요…
비슷한 여자랑 살아보니 어때요―
시나이산을 짓밟은 이여!
낯선, 이 세상 여자랑 살아보니
어때요? 갈비뼈의―짝인가요?
부끄러움이 제우스의 고삐처럼
이마를 후려치지 않나요?
살아보니 어때요―건강하겠죠―
그렇겠지요? 노래가―절로 나오나요?
불멸의 양심에 남은 상처는
치료하고 있나요, 가난뱅이여?
시장 물건이랑 살아보니
어때요? 연공(年貢)이―무거운가요?
카라라대리석과 살다가
석고 부스러기랑 살아보니
어때요?(고귀한 암석으로 만든
신은―깨질 때도 말끔하죠!)
10만이나 널려 있는 여자랑 살아보니
어때요, 릴리트¹를 알았던 이여!
시장에 구르는 신상품이
만족스러운가요? 마법에는 마음이 식고,
지상의 여자랑 살아보니
어때요, 여섯 번째
감각 없이?
뭐, 됐어요: 행복하죠?
아니라고? 밑 빠진 구덩이에서―
어떻게 사나요, 내 사랑? 힘겨운가요?―
다른 이랑 살고 있는―나만큼?
1924년 11월 19일
이현종 옮김.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의 시선집 끝의 시> 中.
[주1] '릴리트'는 유대인의 민담에 따르면 아담의 첫 아내로 전해진다. 구약성서에서는 그녀가 나오지 않지만 <벤 시라의 알파벳(Alphabetum Siracidis, Othijoth ben Sira)>(700-1000경) 78장에 따르면, 신은 아담과 마찬가지로 릴리트를 흙으로 빚어 만들었다. 릴리트는 아담과 관계할 때, 두 사람 모두 흙에서 왔는데 그녀만 항상 그의 아래에 눕는 것이 불만스러워 신의 금지된 이름을 외치고는 도망쳤다.
연인 로제비치와의 이별
여왕의 분노, 냉소와 연민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질투의 시도(Попытка ревности)>는 세계 문학사에서 '질투'라는 감정을 가장 오만하면서도 처절하게, 그리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꼽힙니다. 1924년 망명지인 프라하에서 쓰인 이 시는 단순한 연애의 질투를 넘어, '비범한 존재'가 '평범한 세속'으로 추락한 것에 대한 매서운 질책을 담고 있습니다.
1. 작품의 배경: "버림받은 여왕의 분노"
이 시의 직접적인 배경은 츠베타예바의 연인이었던 콘스탄틴 로제비치(Konstantin Rodzevich)와의 이별입니다.
■치명적인 사랑: 츠베타예바는 프라하 망명 시절 로제비치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졌으나, 결국 그는 츠베타예바의 강렬한 정신적 세계를 감당하지 못하고 평범한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를 떠납니다.
■복수의 방식: 츠베타예바는 매달리거나 구걸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을 떠나 '평범함'을 선택한 남자의 삶이 얼마나 지루하고 가련할지를 집요하게 캐묻는 방식을 택합니다.
2. [시평] 고귀한 정신이 보내는 냉소와 연민
① 대조의 미학: 카라라 대리석 vs 석고 부스러기
이 시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화자(나)와 상대방의 새 여자를 대비시키는 비유입니다.
■나(츠베타예바): 카라라 대리석(이탈리아의 최고급 대리석), 왕후, 시나이산, 릴리트(아담의 첫 아내이자 신비로운 존재), 여섯 번째 감각.
■그녀(새 여자): 석고 부스러기, 시장 물건, 10만 명이나 널려 있는 여자, 저속함, 지상의 여자.
화자는 자신을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예술적 존재'로 설정하고, 남자가 선택한 여자를 '대체 가능한 공산품'으로 격하합니다. 이를 통해 남자가 저지른 실수는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정신의 타락'임을 강조합니다.
② 역설적 호칭: "내 선택한 이여"와 "가난뱅이여"
그녀는 남자를 향해 "가난뱅이여(бедный)"라고 부릅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라는 '풍요로운 영혼'을 잃고 평범함이라는 '빈곤' 속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선택한 이"라는 표현을 통해, 여전히 주도권이 남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선택했던 자신에게 있음을 명시합니다.
③ 마지막의 반전: "나만큼 힘겨운가요?"
시는 내내 서슬 퍼런 독설을 내뱉다가 마지막 연에서 급격히 무너집니다.
"어떻게 사나요, 내 사랑? 힘겨운가요?― 다른 이랑 살고 있는―나만큼?"
이 구절은 앞선 모든 오만함이 사실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그리움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었음을 드러냅니다. 남자를 저주하던 칼날이 결국 자신을 향하며, '평범한 삶'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남자뿐만 아니라 그를 잃은 화자 자신임을 고백하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3. 문학적 가치
이 시는 츠베타예바 특유의 대시(―) 사용이 두드러집니다. 이 문장 부호들은 화자의 가쁜 호흡, 끊어질 듯한 감정의 격동, 그리고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하는 행간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녀에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었으며, 이 시는 그 증명이 실패했을 때 한 천재 시인이 겪는 영혼의 파열음을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남편 세르게이 에프론과의
운명적 사랑과 비극적 최후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삶은 러시아 근대사의 가장 참혹한 비극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남편 세르게이 에프론(Sergei Efron)과의 관계는 사랑을 넘어선 '운명적 굴레'였으며, 그 끝은 처절한 파멸이었습니다.
1. 세르게이 에프론과의 만남과 엇갈린 운명
츠베타예바는 19세에 해변에서 예쁜 조약돌을 찾아준 소년 에프론을 만나 운명적으로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은 이 단란한 가정을 완전히 찢어놓았습니다.
■백군과 적군의 대립: 남편 에프론은 혁명 반대파인 백군(White Army) 장교로 참전했고, 츠베타예바는 모스크바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자녀의 비극: 내전 중 닥친 기근으로 인해 그녀는 차녀 이리나를 고아원에 맡겨야 했고, 결국 아이는 그곳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이는 평생 그녀의 영혼에 씻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남았습니다.
2. 망명 생활과 남편의 변절
1922년,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살아 있다’라는 소식을 듣고 츠베타예바는 프라하로 망명을 떠납니다. 하지만 재회한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남편의 스파이 활동: 백군 장교였던 에프론은 망명 생활의 가난과 절망 속에서 돌연 친소련파로 전향합니다. 그는 소련의 비밀경찰(NKVD)의 첩자가 되어 망명객들 사이에서 암살 사건에 연루됩니다.
■고립된 시인: 츠베타예바는 남편의 간첩 행위를 알지 못했으나, 주변 망명 문인들은 그녀를 남편과 한패로 몰아 외면했습니다. 그녀는 조국에서도, 망명지에서도 설 곳이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3. 죽음의 땅으로의 귀환과 최후
남편과 딸 아리아드나가 먼저 소련으로 돌아가자, 츠베타예바 역시 1939년 아들 무르를 데리고 귀국합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가혹한 숙청이었습니다.
■가족의 붕괴: 귀국 직후 남편 에프론은 간첩 혐의로 총살당했고, 딸은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엘라부가에서의 자결: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녀는 타타르 공화국의 작은 마을 ‘엘라부가’로 강제이주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땔감을 구걸하고 설거지 일자리를 구해야 할 정도로 비참한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1941년 8월 31일 "아들을 부탁한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4. 츠베타예바의 문학적 초상
그녀의 시가 그토록 날카롭고 격정적인 이유는, 그녀의 삶 자체가 단 한 순간도 평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늘 "사랑은 결핍이며, 시는 그 결핍을 채우려는 비명"이라고 믿었습니다.
■청년기; 에프론과 결혼, 순수 문학 지향-낭만적 열정
■내전기: 남편의 실종, 딸의 죽음-처절한 생존 본능
■망명기: 에프론의 간첩 연루, <질투의 시도> 집필-고독과 지적 오만
■말기: 귀국 후 가족의 숙청, 자살-절대적 절망
츠베타예바는 죽기 전 자신의 시(詩)들이 언젠가는 "귀한 포도주처럼 자신의 차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녀는 러시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4대 시인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우리 넷>
1961년 안나 아흐토바는 네 명의 동년배 시인들에게 바치는 <우리 넷>이라는 시를 썼다.
…나는 모든 것에서 물러났다.
세상 모든 복락으로부터
옹이가 많은 나무는
“바로 여기”를 지키는 정령이 되었다.
삶에서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손님이다.
산다는 것은―습관.
하늘길 따라
두 개의 목소리가 서로를 부른다.
두 개일까?
동쪽 벽 아래
무성하게 자란 억센 산딸기.
물이 올라 거무튀튀한 딱총나무 가지…
마리나가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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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마토바가 가리키는 네 명의 시인은 자신을 포함하여 오시프 만델시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마리나 츠베타예바다. 1960년 파스테르나크가 죽고 넷 중 홀로 남은 아흐토바는 러시아혁명, 스탈린 대숙청, 제2차 세계대전 등 세파에 쓰러져간 자신의 동료들을 이렇게 기억했다.
아흐마토바의 시에서 츠베타예바는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두 남성 시인들이 서로를 부르는 두 개의 목소리로 묶인 반면, 츠베타예바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편지를 보낸다. 1910년대 아흐마토바와 만델시탐은 신비주의적인 상징주의를 벗어나 두 발로 대지를 딛자는 문학적 흐름인 '아크메이즘'으로 결합했다. 한편, 파스테르나크는 상징주의, 아방가르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넘나들다 마침내는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계승한 공로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츠베타예바는 살아서 어느 곳에서도 속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 레닌 그라드에서 아흐마토바가 젊은 시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을 때에도 죽은 츠베타예바는 계파를 이루는 후배들을 거느리지 못했다. <후략>
-이종현이 옮긴 마리나 이바노브나 츠베타예바의 시선집 『끝의 시』 (역자 후기) 中 발췌.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 <우리 넷(Нас четверо)>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은의 시대(Silver Age)'라고 불리는 찬란한 예술적 정점을 찍었던 네 명의 거장이 어떻게 역사의 거센 풍랑 속에서 사러져 갔는지, 그리고 그들의 영혼이 어떻게 문학 안에서 재회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이며 숭고한 진혼곡입니다.
1. 작품의 배경: 마지막 생존자의 증언
1961년, 아흐마토바가 시 <우리 넷>에서 언급한 '4인방'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는 자신뿐이었습니다.
■오시프 만델시탐(1938년 사망): 스탈린을 비판하는 시를 썼다가 수용소로 가는 길에 사망.
■마리나 츠베타예바(1941년 사망): 망명 후 귀국했으나 가난과 고립 속에 자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960년 사망): 소설 《닥터 지바고》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소련 당국의 압박으로 수상을 거부하고 쓸쓸히 병사.
1960년 파스테르나크마저 세상을 떠나자, 아흐마토바는 "이제 나만 남았다"는 고독감과 함께, 먼저 떠난 동료들의 영혼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기 위해 이 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2. [시평] 죽음을 넘어선 예술적 연대
① "삶에서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손님이다"
아흐마토바는 인간의 생을 영원한 거처가 아닌 잠시 머무는 '습관' 같은 것으로 정의합니다. 이는 가혹한 숙청과 전쟁 속에서 언제든 죽음이 들이닥칠 수 있었던 러시아 지식인들의 허무주의적 현실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이 허무는 절망에 그치지 않고, 육체를 벗어난 영혼들이 "하늘길"에서 교감하는 초월적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② "두 개의 목소리"와 "마리나가 보낸 편지"
시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은 이미 지상에 없는 이들의 영혼입니다.
■두 개의 목소리: 생전 깊은 우정을 나눴던 파스테르나크와 아흐마토바, 혹은 만델시탐의 목소리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마리나(츠베타예바)의 편지: 생전에 츠베타예바는 아흐마토바를 열렬히 숭배하며 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두 사람은 실제로 깊은 교류를 나눌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아흐마토바는 죽은 츠베타예바가 자연(딱총나무, 산딸기)의 형상으로 보내오는 영적인 메시지를 수신하며, 지상에서 못다 한 연대를 완성합니다.
③ 자연의 형상으로 남은 시인들
아흐마토바는 죽은 동료들을 비석이 아닌 '딱총나무 가지', '억센 산딸기' 같은 생명력 있는 자연물로 묘사합니다. 이는 육체는 소멸했을지언정 그들의 시(詩)는 러시아의 대지에 뿌리 내리고 살아있음을 상징합니다.
3. 문학적 의의: "은의 시대"의 마침표
이 시는 단순한 추모시를 넘어, 러시아 현대 문학을 지탱해온 네 개의 기둥을 하나로 묶는 문학적 선언입니다.
■역사적 증언: 스탈린 체제 하에서 금기시되었던 이름들(만델시탐, 츠베타예바)을 호명하며 그들을 역사 속으로 복권시켰습니다.
■시인의 소명: 아흐마토바는 스스로를 "모든 것에서 물러나 '바로 여기'를 지키는 정령"이라 칭하며,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하는 '기억의 파수꾼'으로서 자신의 소명을 다합니다.
"비극은 개별적이었으나,
그들의 고통은 하나의 합창이 되었다."
아흐마토바의 이 시는 독재와 검열도 위대한 시인들의 영적 교감과 그들이 남긴 텍스트의 불멸성을 꺾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츠베타예바가 마야콥스키에게 보낸 편지
위 이미지에 써 있는 글은 마리나 츠베타예바가 1928년 12월 3일, 프랑스 뫼동(Meudon)에서 당시 파리를 방문 중이었던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Vladimir Mayakovsky)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츠베타예바가 마야콥스키를 향한 경의를 표했다는 이유로 망명지 신문사들로부터 배척당하기 시작한 결정적인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편지 내용 번역
뫼동(S. et O.) 잔 다르크 가 2번지,
1928년 12월 3일
친애하는 마야콥스키에게!
제가 당신에게 보낸 "프라하에서의 인사"가 어떻게 끝났는지 아시나요? 제가 글을 실을 수 있었던 유일한 신문인 『최신 소식(Posledniye Novosti)』에서 저를 제명시켰습니다. 그것도 벌써 10~12일 전의 일이에요! (보세요! 『최신 소식』이라니!)
"그녀는 단지 시인 마야콥스키를 환영한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을 통해 새로운 러시아(소련) 전체를 환영했다..."
이것이 그들의 결론이고, 이것이 저의 상황이며, 이것이 당신의 처지입니다.
당신의 이름 뒤에 오는 이 "환영"의 문구들을 가슴에 새기시고, 이 구절을 파스테르나크에게, 그리고 당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누구에게든 전해 주세요. 원하신다면 공개하셔도 좋습니다.
안녕히! 당신을 사랑하는 마리나 츠베타예바
배경 설명
사건의 발단: 1928년 마야콥스키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츠베타예바는 공공연하게 그를 "위대한 시인"이라 칭송했습니다. 당시 반소련 성향이 강했던 백계 러시아 망명 사회에서, '혁명의 시인' 마야콥스키를 찬양하는 것은 금기시된 행동이었습니다.
고립의 시작: 편지에 언급된 『최신 소식』 신문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츠베타예바의 원고 게재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그녀에게 큰 타격이었으며, 망명지에서 그녀가 문학적으로 고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술적 연대: 편지 중간에 언급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츠베타예바와 깊은 영적, 문학적 교감을 나누던 시인이었습니다. 츠베타예바는 정치적 이념보다 예술적 가치를 우위에 두었기에, 마야콥스키에 대한 자신의 지지가 '정치적 전향'이 아닌 '예술적 경의'임을 분명히 하고자 했습니다.
이 편지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츠베타예바의 강직한 성격과,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고독을 잘 보여주는 사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