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파리

추억의 제주사투리

by 김양훈

자고 났더니, 지난밤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코흘리개 시절, 집 앞 눈에 덮인 이웃 빈 콩밭에 꿩코를 놓던 그 풍경이 떠올랐다. 펑펑 내려 쌓인 백설(白雪)이 제 먹이를 덮어버린 세상, 배고픈 꿩꿩 장서방은 혹시나 하고 지난가을 콩밭을 헤맴직 한 것이다. 눈치코치 어깨 너머 동네 형아들에게서 듣고 배운 대로 아이는 철사줄로 코를 여럿 만들었다. 눈에 푹푹 빠지면서 밭담 둘레를 돌아가며 꿩코를 두던 그 시절 두린아이 자파리꾼이 나였다. 물론 꿩코 사이사이 미끼로 콩방울을 그럴 듯이 떨구었다. 결과는? '꽝코'였다. 어린 마음은 대실망이었지만, 어쩌랴! 꿩대가리보다 못했던 두리고 어린 자파리였으니. 백설분분(白雪紛紛) 고은 아침!


​□ 게난 '자파리'는 무신 뜻?

​서울말로는 개구진 '장난' 또는 '군짓(쓸데없는 일)'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하지만 제주어 특유의 뉘앙스를 살리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포함한다.

◇ ​생산적이지 않은 일에 몰두하는 행위: 생업과는 상관없는 일에 정성을 쏟는 것.

◇ ​호기심 어린 장난: 어린아이가 이것저것 만지며 노는 모습.

◇ ​손재주를 부리는 일: 무언가를 꼼꼼하게 만들거나 만지작거리는 행위.


°사용​예: "느 자파리 그만 허고 밥이니 먹으라!" (너 장난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라!)


​□ 어원 및 유래는? 고라보라!

​'자파리'의 정확한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흥미로운 가설이 존재한다.

​① '잡(雜) + 하리' 설

​한자어 '섞일 잡(雜)'에 '~을 하는 사람' 또는 '행위'를 뜻하는 접미사가 붙어 형성되었다는 견해다. 즉, '잡스러운 일을 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분석이다.

​② 좀녀(潛女) 문화와의 연관성

​좀녀들이 물질을 할 때, 전복이나 구쟁이(뿔소라) 같은 '돈이 되는' 것을 채취하지 않고 조개껍데기나 쓸모없는 바닷풀을 만지작거리며 노는 것을 '자파리한다'고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 유래해 생업 외의 딴짓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③ '잡다'의 변형

​무언가를 자꾸 손으로 잡고 만지는 행위에서 '잡'이 '자ㅍ'로 변형되어 굳어졌다는 언어학적 추론도 있다.

※ 어차피 썰(說)이라, 나는 ​①번에 한 표!


​□ 현대적 해석: '창조적 자파리'

​과거 척박한 제주 환경에서 '자파리'는 일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놀기나 하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이 단어가 '예술 창작'이나 '창의적인 취미 활동'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자파리 예술가: 버려진 물건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아티스트를 '자파리꾼'이라 부르기도 한다.


※ 제주 설경은 구엄리 후배 송인혁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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