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說]로 푸는 제주사투리
할락산 북쪽(山北) 서편 해안 촌락 출신인 나는, 어려서 호주머니를 '게쏙'으로 알고 자랐다. 알고 보니 이는 '게와+속'(주머니 속)의 줄임말이었다.
제주어 '게와'는 제주어 중에서 한자어가 일상 언어로 녹아들어 토착화된 사례[說] 가운데 하나다.
1. 어원과 유래: 한자의 흔적
'게와'의 어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학설이 존재하지만, 한자어 유래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 한자어 개와(蓋窩) 유래설: 덮을 개(蓋) + 움집/구멍 와(窩)-직역하면 '덮개가 있는 구멍'이라는 뜻이다.
과거의 주머니는 지금처럼 옷에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별도로 차고 다니는 것이 많았다(주멩기). 이후 옷 안쪽이나 겉에 구멍을 내고 덮개를 만든 형태가 등장하면서, 이를 '개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기와(瓦) 관련설 (민간 어원): 주머니의 모양이 기와(瓦)처럼 둥글고 단단하게 물건을 담고 있다고 해서 '기와'가 '게와'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학술적으로는 '개와(蓋窩)'가 더 설득력이 높다.
2. 변천 과정: 어떻게 '게와'가 되었나?
한자어 '개와'가 제주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토착어로 변한 과정은 제주어의 음운 변화 특성을 잘 보여준다.
□ 도입기(개와, 蓋窩): 한자어 명칭이 제주에 들어와 호주머니를 지칭하는 전문 용어로 쓰임.
□ 음운 변화: 제주어는 이중모음 'ㅐ'가 'ㅔ'로 단순화되거나, 발음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 모음이 수축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개와] → [게와]로 발음이 굳어졌다.
□ 정착기: '호주머니'라는 표준어보다 '게와'라는 단어가 제주의 거친 바람을 막아주는 옷(갈옷 등)의 구조와 결합하며 생활어가 되었다.
3. 사용 예와 뉘앙스
제주에서 '게와'는 단순히 물건을 넣는 공간만을 뜻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다.
① 일상적인 대화
가장 흔하게는 옷에 달린 호주머니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이 게와에 무신 거 들어이시냐?" (이 호주머니에 무엇이 들어있니?)
"게와가 터져부런 쇠돈 다 새부렀져." (호주머니가 터져버려서 동전이 다 새 버렸네.)
② 경고나 훈계의 표현
제주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것을 위험하다고 여겨 자주 경고했다.
"게와에 손 넣고 댕기지 말라! 넘어지민 코 깨진다!" (호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지 마라! 넘어지면 코 깨진다!)
③ 비유적 표현 (욕심)
자기 실속만 차리는 사람을 비유할 때도 쓰인다.
"자왈(덤불) 속에서 일허멍 제 게와만 채렴시냐?" (일은 안 하고 제 주머니(속셈)만 채우고 있느냐?)
°호주머니는 '게와'
°주머니는 '주멩기'
※ <사단법인 제주어연구소>의 '아름다운 제주어' 참조.